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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Feb 22. 2024

나의 의지로 마침표 찍기

「소풍」, 2024


예고편만 봤는데도 가슴이 아린다. 본편을 보고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뽑아낼 나의 모습이 그려졌다. 큰 각오 끝에 시사회 참여 등록을 한 이 영화, '소풍'이다. 소풍은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들뜨는데, 이제는 먹먹하고 슬프다. 이게 바로 영화의 힘인가? 앞으로도 나는 꽤나 오래 소풍이라는 단어를 슬프게 들을 것만 같다.


노년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보곤 한다. 지금까지 건강하지 않았던 적이 거의 없지만, 혹시라도 나이가 들어 크게 상심하는 일이 생길까 봐 문득 두려워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모든 걱정을 제치는 건, 부모님이 아플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이다. 방어 기제가 나와 회피하고만 싶어 진다. 평생 오지 않을 일이었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이 영화를 보고 회피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힘인가.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고향이 주는 힘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마음 둘 곳 있다는 게 정말 부러워졌다. '은심'과 '금순'의 고향인 남해가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부러운 마음은 뒤로하고, 생각보다 남해의 풍경은 현실적인 요소들이 많았다. 재개발을 막기 위한 시위와 은근한 텃세. 현실은 너무나도 날카로운 법이다.


그래도 그리웠던 집밥을 먹고, 잊고 지내던 첫사랑 '태호'를 다시 만나고, 마음 편히 지낸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어릴 적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세 명을 보고 있으니 내 마음이 저절로 따스해졌다. 역시 맑게 빛날 수 있을 때는 우정이 있을 때인가 보다. 문득 친구들이 보고 싶어 진다.


이 영화는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태호'의 죽음은 받아들이기에 너무 벅찼다. 지병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를 혼자서만 안고 가고 싶다는 것. 어른이 되면 혼자서 끌어안아야 하는 일이 이렇게나 커지는 것일까, 그럼 남은 사람들의 마음은 누가 챙겨줄까. 나는 아직 남겨지는 사람들의 마음이 더 신경 쓰인다. 아직은 어른이 되기에 모자란 것 같다.


'금순'도 '은심'도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가기 시작할 정도로 커진 병들은 행복했던 마음을 삼켜버린다. 자식들은 알아주지도 않는다. 너무 분하지만, 나도 혹시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깊은 굴레에 빠진다. 그리고 둘이 소풍을 떠났을 때, 그렇게 영화가 끝날 때, 아름다우면서도 지나치게 잔인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슬퍼졌다. 그냥 기대줄 수는 없는 걸까, 조금이라도 더 오래 곁에 남아있어 줄 수는 없는 건가.


아무리 아프고 병들었다고 한들, 짐이 되지 않는다. 일 분이라도 더 곁에 있어줬으면 하는 게 자식으로서 부릴 수 있는 큰 욕심이다. 아름다운 이별이지만, 남겨져있을 그 시간들이 싫다. 돌아올 수 있는 소풍이었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고 엄마랑 얘기를 나눴다. 아파서 내 생활을 살아갈 수 없을 때, 그때는 정말 소풍을 떠나는 게 차라리 나을 거라고. 잔인하지만 맞는 말일 수도 있다. 나는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 때가 살아있는 시간일 테니까.


글을 쓰기 위해 영화를 떠올리는 이 순간도 슬픈 감정이 밀려온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다시 보고 싶어 진다. 떠날 사람들을 위해,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영화다. 인생의 후반전을 영화로나마 상상하고 그려본다.


202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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