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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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으으으으’ 입을 막고 콧구멍을 열어 개구리 울음주머니 부풀리듯 나의 작은 몸통을 거대하게 부풀렸다가 ‘읍-!’ 곧 숨이 턱 하고 막힐 때쯤 밀도 높은 단단한 호흡을 짧지만 강하게 '파!' 내뱉는다.
그리고선 앉아있던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일단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 본다. 현관으로 곧장 뛰어나가기 전, 잠시 멈춰 챙겨야 할 준비물을 점검해 본다. 왼쪽 주머니에 핸드폰 오케이, 오른쪽에 노트와 연필 오케이, 그리고 몇 주 전 동생한테 구매한 중고이어폰까지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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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생에게 구입한 중고 기기가 제법 된다. 동생은 성능 좋은 최신 기기를 들여와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반년 정도 쓰다 중고로 전부 팔아버린다. 언제든 기기를 다시 되팔 경우를 염두에 둬 그러는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성격이 유난스러웠던 건지 매일같이 소독용 알코올 티슈로 기기들을 닦아낸다.
그의 방에 가면 수고로움 없이도 성능 좋고 디자인 좋은 기기를 손쉽게, 그것도 새 제품과 다름없는 최상급 S상태의 기기들을 제법 할인된 가격으로 만나볼 수 있다. 게다가 체험 기간 3일도 준다. 뭐, 대부분 체험 2일째 입금하게 되지만 말이다.
한 번은 내가 꽤 빈번한 구매를 했는지 언제는 나에게 혹시 자기 팬 아니냐고 놀려먹은 적까지 있다. 나는 그게 무슨 개소리니 하고 조용히 읊어줬지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도 나처럼 뭘 하나 얻으려면 검색창 1페이지부터 10페이지까지 꼼꼼히 살펴보고, 거기서 추려진 몇 개의 키워드를 가지고 다시 또 검증의 과정을 확실하게 거쳐야만, 겨우 원하는 것 하나를 얻을 수 있다면, 혹시 이 징글징글한 수고를 매번 감내하는 근본적 원인이 우리 공통 유전자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건 일리가 있는 헛소리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본다.
다른 분야라면 나도 그와 동일하지만 쇼핑 분야에 있어서 만큼은 나에게 있어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수고다. 그러나 그에게는 카타르시스로 작용되는 듯하다. 기꺼이 수고를 감내하는 그의 취미 생활에 나도 같이 덕을 좀 본다.
아무튼 말이지 그렇게 구매한 이어폰까지 챙겨 들고 현관을 나선다. 고층으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준비물을 다시 확인해 본다.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대부분 비슷한 범주에 웃돈다. 그 요소는 다음과 같다.
마음에 품은 요소들: 아이러니, 답답, 벅참, 오만, 태만, 간사함, 고독, 좌절, 애통, 분노.
정신에 품은 요소들: 현재 진행 중인 연구 주제, 원인 규명, 관계 설정, 독립, 나를 속박하는 기억.
부산스럽게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공동 현관문 1층에 도착해 있다. 밖으로 나와 몸을 틀어 오른쪽 방향으로 2분 남짓 걸어가면 마주하게 되는 길이 있다. 나는 푹 눌러쓴 모자를 매만지며 중랑천 뚝방길로 진입한다.
자, 중랑천 산책길 초입이다. 그런데 사실을 고백하자면 나는 이곳이 과연 길의 초입인지, 중간 지점인지, 아니면 되돌아갈 타이밍만 엿보게 하는 길의 끝 지점인지 잘 모른다. 중랑천은 나의 상상보다 훨씬 더 긴 하천이었음을 이전에 건대 사는 친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깨달은 바 있기에, 그 길이와 크기가 잘 가늠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애써 중랑천의 발원지가 어디인지 굳이 찾아보지는 않았으나 막연히 추측해 보건대, 내가 사는 동네가 서울 북부 끝자락에 위치해 있고, 물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게 자연스러우니, 대충 뭐 이곳이 길의 초입이지 않을까 싶다. 사실적 정보가 무엇이든 간에 나에게 있어서는 내가 서 있는 이곳이 곧 시작점이니, 뭐든 이곳으로 영점 조절을 맞춰본다.
아무튼, 그새 옆길로 샌 나의 정신을 다시 붙잡아 이곳으로 가져와본다. 주섬주섬 아까 챙겨 온 준비물들을 하나씩 꺼낸다. 먼저 이어폰을 양쪽 귀에 착착 장착한다. 그리고 눈치껏 사람 수가 몇이나 되는지 주변을 파악해 본다. 그 수가 많을 땐 노이즈 캔슬링을 켜 두고, 그렇지 않을 때는 꺼두는 편이다. 이제 핸드폰을 깨워 화면 첫 째줄 오른쪽에 있는 유튜브 앱을 켠다. 저장된 플레이 리스트를 살피며 내가 오늘 담아온 내적 요소들과 유심히 비교해 본다. 오케이! 그렇게 음악까지 완료되면 앞으로 한 걸음씩 발을 움직인다. 앞선 준비 과정을 마치면, 이제 내가 의도적으로 조작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부터는 계속 걷고, 걷고, 걷고, 잠시 멈췄다가 다시 걷고, 걷고, 걷는다. 걷고 걷다 보면 의자에 앉아 온갖 물리적 힘을 다해 보아도 분해되지도, 뭉쳐지지도, 심지어 미동조차 하지 않던 내적 요소들이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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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가 단단히 결속되어 있어 작은 간섭도 허락지 않던 곳에 하나둘 금이 생기기 시작한다. 옅게 그어진 금은 점차 더 큰 틈을 만들어 내고, 서서히 느슨한 관계를 형성하다 결국 자신과 맞지 않는 모든 관계를 전부 끊어 내버린다. 그렇게 스스로 정제 과정을 거칠 때면 이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문제의 순수 원인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때때로 ‘아, 이거였구나!’ 짜릿한 쾌감이 동반되기도 하고, ‘아, 이거였구나.’ 저릿한 감정이 동반되기도 한다.
부스러기로 사방팔방 흩어져 있어 한 곳으로 모으기가 여간 쉽지 않은 것들도 스스로 뭉쳐지기 시작한다. 그때 포착되는 움직임이 너무 기이하다든가 또는 너무 아름답게 느껴질 때면 준비해 온 노트와 연필을 꺼내 그 습성과 구조를 기록해 보려 애쓴다. 그러나 대체로 내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재결정화되어 버린다. 그럴 때면 어렴풋이 남아 있는 잔상이라도 애써 휘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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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참 기이하다. 난제로 남겨진 요소들을 단지 마음에 품고 걷기만 했을 뿐인데, 이런 신비한 체험을 한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 요소들이 원활히 본연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환경만 조성해 둘 뿐이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운동에너지를 가동할 뿐이다. 그 이후부터는 나는 단순한 관찰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 화학활동을 하는 그 신비 현상을 감탄으로 관조할 뿐이다. 그렇게 자기들끼리 유희활동을 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나도 내 일이 하고 싶어 질 때가 온다. 그럴 때면 재빨리 몸을 돌려 다시 원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산책길 초입으로, 현관 1층으로, 박차고 일어났던 의자로. 그리고, 의자에 앉아 경험한 기이 현상을 머릿속에 다시 떠올려 복기를 해본다. 마음 같아서는 마주했던 모든 것들을 세세하게 기록해두고 싶지만, 기억은 분명 명석한데 판명하지가 않다. 최대한 모든 이성, 감성, 상상력을 동원해 본다. 그 복기 과정은 하루 안에 끝나기도 하고, 일주일의 시간이 소요되기도 하고, 심지어 몇 달이 걸리기도 하다. 그 과정은 분명 징글징글한 수고가 동반되지만, 이번만큼은 나에게 있어 카타르시스가 동반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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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매번 동일하게 그래왔듯 분해되지도, 뭉쳐지지도, 심지어 미동도 하지 않는 난제를 다시 마주하게 되면, 나는 또 입을 막고 개구리처럼 울어본다. 그리고 어김없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일단 상황을 벗어나 본다. 이번에는 모자를 턱 끝까지 내려쓰고 뚝방길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