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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Dec 06. 2024

외대 중동문화연구회 팔레스타인 강연 후기


안녕하세요. 지난 11월 24일에 외대 중동문화연구회의 요청으로 강연을 하고 왔습니다. 참, 재미난 인연의 연속으로 생긴 강의인데요. 3월 강연을 들은 학생이 친구에게 소개했고, 그 친구는 6월 서울국제도서전 강연을 들었습니다. 이후, 그 친구가 자신이 속한 학회에 추천하여 이번 강연이 성사되었습니다.


11월 24일은... 눈이 매우 많이 왔던 바로 그날입니다. 설레는 날씨랑 늦은 시각(오후 6시 반부터 9시까지) 때문에 참석자가 적을 줄 알았더니 모든 학생들이 다 모여서 열심히 강의를 들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부탁드리기도 전에 사진을 촬영하고 공유해주신 학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강의는 두 가지 측면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만족스러웠습니다. 하나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1차 사료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이 설명을 할 수 있었던 점이고, 다른 하나는 학생들이 가장 수준 높은 질문들을 던져서 강의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바로 실감할 수 있었던  점입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학생들이 1학기 자율적으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공부했고, 강의 일주일 뒤에 팔레스타인을 주제로 한 모의 유엔을 앞두고 있어서 이모저모를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강의 제안을 받고 나서 난이도를 어떻게 할까 고민했습니다. 그래도 조금 공부를 했다고 하니 기초보다는 좀 더 어려운 내용을 다룰까 했는데, 막상 퀴즈를 내보니 역시나 대부분 틀리더군요. 팔레스타인 역사의 핵심이자 기초 중의 기초적인 질문인데, 여러분은 맞추실 수 있나요?


1. 유대인들은 고대에 팔레스타인에서 추방당해서 이산 생활을 시작했다. (O, X)

2. 영국은 밸포어 선언으로 유대 국가를 약속했다. (O, X)

3. 밸포어 선언은 유대인들로부터 전쟁자금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O, X)

4. 팔레스타인 난민은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으로 발생했다. (O, X)






정답은 모두 X입니다. 아마 저나 단국대 홍미정 교수님이 쓰신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면, 다들 두세 개쯤은 틀리셨을 겁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는 팔레스타인 역사가 잘못 알려졌기 때문에 비전문가가 쓴 책이나 강의를 들어봐야 앞뒤가 맞지도 않는 왜곡된 역사를 배우기 마련입니다. 학생들한테 이 점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 이번 강의는 <1차 사료로 직접 검증하는 이-팔 분쟁의 역사적 진실>을 주제로 잡았습니다.



간혹 이런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역사는 오래된 일이라서 누가 옳은지 모르는 거 아닌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역사학계, 고고학계 등이 오랫동안 연구한 끝에 수천 전의 일들도 이제는 거의 다 명확하게 밝혀졌고, 더군다나, 이-팔 분쟁은 끽해야 100~150년의 역사를 지녔기 때문에 당시의 기록들이 온전히 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1차 사료만 공부해도 세세한 전말까지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학계의 연구 결과가 대중에 전달이 잘 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보통 사람들은 진실을 다룬 전문가의 서적은 멀리하고, 비전문가들이 재밌는 내용 위주로 상상력을 동원해 가공의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흔히 유대인의 고향이 성경의 가나안, 혹은 팔레스타인 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첫째로, 오늘날 다수의 유대인은 유럽에서 개종을 해서 유대인이 되었으며, 둘째로, 20세기 초까지 유럽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태어나 자란 유럽 땅을 고향으로 불렀습니다.


이는 팔레스타인 태생이 아닌데도 유대교로 개종하면 유대인으로 부르고 그 수가 많았다는 고대의 기록이나, 19-20세기 초에 유대인들이 언론, 일기, 편지 등에서 유럽을 고향 땅으로 부른 에서 명쾌하게 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나 이산을 시작했다고 알려졌으나, 그 어떤 역사적 순간에도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서 없었던 적은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다신교 로마와 기독교 비잔틴, 십자군 시기에 오직 '예루살렘'에서만 쫓겨났습니다.


이는 이산이 시작되고도 한참이 지난 뒤에 팔레스타인 북부에서 예루살렘 탈무드가 편찬된 사실을 비롯해, 이집트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의 유대인과 주고받은 편지, 유럽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여행을 가서 만난 유대인들의 이야기 등 무수하게 많은 사료가 존재합니다.


이처럼 1차 사료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을 확고하게 바로잡을 수 있는 무기입니다. 앞으로도 이번 강의처럼 시간이 조금 넉넉하게 주어져 1차 사료를 최대한 많이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학생들 질문을 소개하려고 후기를 적기 시작한 건데, 여담만 잔뜩 늘어놔버렸네요. 이런... 신간  마무리 작업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질문은 딱 하나만 소개할게요.


조금 전 설명했듯이 20세기 초까지 유럽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을 고향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고향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니 유럽을 고향으로 인지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학생 분께서 이렇게 질문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고려인들이 한반도를 고향으로 인식하듯이, 비록 태어나고 자란 땅이 아닐지라도 고향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맞습니다. 고향이라는 개념은 결국 추상적,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땅을 고향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을 조상들이 살았던 '역사적 고향'이라 부르며 친근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땅이 고향인지를 추상적 영역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로 가져오면 달라지게 됩니다. 우리는 고향에서 살아온 사람들, 토착민이 고향 땅에서 주인으로서 권리를 누리고 살아갈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 지배를 거부하고 비난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고요. 그런데 팔레스타인에서 살지 않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팔레스타인을 고향으로 부르며 자신들만의 국가를 세우겠다고 토착민을 내쫓는 걸 용인할 수 있을까요?


누구도 이런 일이 옳다고 생각지 않고, 그건 19-20세기 초의 유대인들도 똑같았습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의 건국을 주도한 유대 민족주의자, 즉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을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버려진 땅'으로 거짓 선전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직전까지도 상당수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 아랍인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제대로 된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곧 사람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람은 사악하지 않습니다. 단지 몰라서 저지르는 잘못이 많을 뿐이지요. 누군가에게 속거나 무관심으로 생겨나는 무지는 우리를 필연적으로 잘못으로 이끕니다.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고 싶다면, 진실을 공부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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