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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일 블루 Nov 16. 2023

바텐더의 일기(3)

처음이라는 낯선 설렘.


처음부터 읽으시려면

https://brunch.co.kr/@paleb1ue/8



바에서 일하면 처음이라는 단어에서 느낄 수 있는 낯선 설렘을 접할 때가 있다. 세 번째로 출근 한 오늘, 나의 처음과 어느 손님의 처음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바에서 일하기 전에도 칵테일과 위스키라는 장르는 손님으로 접할 수 있었지만 깊이는 없었던 것 같다. 이 술은 어떤 술인지에 대한 정보는 현저히 부족했다. 바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생겨난 건 다름 아닌 욕심이다. 내가 이 술을 좀 더 잘 알고,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욕심. 이런 욕심이 생길 때면 배움의 기회가 찾아올 때가 있다. 앞으로도 자주 쓰게 될 주제인 것 같다. 오늘 배운 것은 독립 병입 위스키에 관한 것이다.


출근을 하자마자 선배님이 나누어 마시라며 한 잔을 나눠주었다. 아드벡 25년 독병이라고 말씀해 주었는데 아드벡이라는 위스키는 알고 있었지만 독병이라는 이야기는 의아했다. 독병이 뭘까. 뉘앙스만 느낄 수 있을 만큼 적은 양, 마셔 본 바로는 내가 알고 있는 아드벡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술이었다. 질감, 목 넘김, 피트 위스키가 주는 특유의 느낌이 없었다. 그리하여 찾아보게 된 독병은 모양새가 익숙한 보틀도 있었고, 보틀은 낯설지만 이름이 익숙한 종류도 있었다.


독병은 위스키 독립병입자(Independent Bottle)의 줄임말이었는데, 증류소 오피셜 라인이 아닌 위스키를 말한다고 한다. 오피셜 보틀들은 증류소에서 생산해서 병입까지 모두 이루어지는 보틀로 우리가 한 번쯤 들어 본 글렌피딕, 발베니, 맥켈란 등의 예시를 들 수 있다. 하지만 독립병입자 위스키는 제삼자가 증류소에서 위스키를 구매한 후 제삼자의 브랜드로 병입 해서 판매하는 위스키를 말한다. 독립 병입의 특징으로는 첫 번째, 위스키를 직접 만들지 않는다. 두 번째, 증류소 오피셜 보틀과는 다른. 특별하거나 독특한 맛을 가지고 있다. 세 번째, 일부 증류소(글렌피딕, 발베니, 글렌 파클라스)는 독병에 자사 브랜드의 이름을 넣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려운 설명들을 축약하자면 독립 병입이란 결국 증류소에서 나온 보틀이 아니라 개인 혹은 회사가 원액을 구매하여 자체적인 브랜드로 다시 만들었다고 이해했다. 그러다 보니 원액들끼리 섞이기도 하고 다른 방식으로 숙성하기도 하면서 개성 있는 보틀들이 나온다는 것. 그러니까 안동 소주를 만드는 지역 장인에게 원액만 구매한 후 가공과 병입을 걸쳐 새롭게 만드는 술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자세한 공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노트에 이런저런 것들을 적었다. 처음 알게 되는 독립 병입은 생각보다 재미있는 세계관이다. 완성된 보틀을 하나의 세계로 봤을 때 이런 세상이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느낌이었다.


“ 술의 세계는 정말 넓네요. ”

“ 그리고 다양하고요. ”


덤덤하게 손님께서 나눠주셨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준 선배님은 다시 일을 시작했고 나는 서브를 하기 위해 새로운 손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손님은 전에도 방문한 적이 있지만 오늘은 위스키를 먹어보기로 했다는 말과 함께 첫 잔으로 탈리스커 10년을 주문했다. 탈리스커는 스카이 섬에서 생산되는 싱글 몰트 위스키로 스카이 섬의 유일한 위스키 증류소에서 나왔다. 입문용으로 좋은 위스키라는 평이 많으며 이마트에서도 구하기 쉽다. 아까 받았던 아드벡이라는 위스키처럼 *피트(위스키를 만드는 맥아를 훈연하여 얻어지는 특이한 향을 더하는 것)한 위스키의 한 종류인데 입문용이라고 하지만 위스키를 접해보지 않은 상태로 마시게 된다면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손님은 위스키를 먹어보기 위해 유튜브에서 추천 리스트를 보고 찾아왔다는 말과 함께 이어서 싱글 몰트 위스키의 종류인 글렌피딕 12년 마지막 잔으로는 버번위스키 종류인 와일드 터키 8년을 연달아 시켜 비교하며 시음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격차가 큰 위스키 종류 3가지를 비교해 보고 취향을 찾아가는 것을 볼 때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낯선 설렘에 대해 한번 더 생각했다.


“ 어쩌다 위스키를 드셔보시려고 하셨어요? ”

“ 친구들이랑 같이 있는데 걔네는 뭘 많이 알더라고요. 그리고 나서부터 궁금했다가 유튜브를 보면서 직접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 그전까지는 관심은 없으셨어요? ”

“ 너무 종류가 방대하다 보니까 엄두가 안 났어요. 그래도 시작해 보니까 좋네요. 저는 맨 처음에 마신 게 취향인 것 같아요. ”


사실 처음이 설레는 이유는 내가 이것을 접해도 될까? 하고 고민하는 지점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닐까. 역시 옛말이 틀린 것이 하나 없다고 시작이 반이고, 막상 시작해 보면 어떤 것에 대해서든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오늘 내가 독립 병입 위스키를 접하고 손님이 입문용 위스키를 접한 것처럼. 손님에게서 늘 배우는 것들이 많다. 여전히 모든 것이 신기하고, 알고 싶어 진다는 생각과 함께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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