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일기
1.
10월 22일.
복도 끝,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이 송도 오피스텔 주택담보대출 연장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연장 조건 6810만 원을 입금해야 한다는 것을, 아버지가 구하신다고 했던 그 돈이 궁금해서.
신호음이 세 번 울렸다.
"응."
"아버지, 오늘 송도 오피스텔 대출 연장 마지막 날인데요. 6810만 원 구하셨어요?"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차분하고 냉정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어쩔 수가 없다. 너도 개인회생해라."
나는 벽에 등을 기댔다. 아버지는 이미 나 몰래 개인회생을 준비하고 있었다. 10년 동안 나는 2억 2천 7백만 원의 이자를 갚아왔다. 한 번도 연체하지 않았다. 월세는 단 한 번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먼저 도망치고 있었다.
배신감이 밀려왔다.
그날 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연락처를 수신 차단했다. 오늘은 아버지의 생신이었다.
2.
조퇴를 하고 집으로 달려갔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지쳐 돌아온 아내를 차에 태웠다. 우리는 신한은행 개봉동 지점으로 향했다.
"저희도 피해자예요. 실제 주인은 아버지입니다."
은행 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은행 밖.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 한복판에서, 우리는 그냥 서서 울었다.
부랴부랴 찾아간 변호사 사무실. "개인회생 신청하시면 됩니다." 3년. 신용카드 정지. 체크카드만. 서류 목록을 받았다. 인감증명서 20장. 주민등록초본. 가족관계증명서. 신용카드사별, 은행별 1년 치 거래내역서.
상담을 마치고 개봉동에서 의정부로 향하는 길, 배가 고파 들어간 갈비도락. 따뜻한 갈비탕 한 숟가락에 눈물이 났다. '개인회생하면 이제 이런 건 못 먹겠지.' 옆 테이블 꼬마 아이가 부모님과 웃고 있었다. '좋은 부모 만나서 행복하겠다.'
그날 밤, 나는 공무원이었다. 사무실 민원팀에 요청하면 서류는 바로 나온다. 하지만 창피해서 다른 동네 주민센터로 갔다. 서류 봉투를 가방 깊숙이 숨겼다.
오후 4시 37분, 신한은행에서 전화가 왔다. "송도 오피스텔 담보대출 2억 2천 7백만 원 연체 1일 차입니다." 심장이 덜덜 떨렸다. 연체 1일 차. 이제 시작이구나.
3.
10월 25일 토요일 저녁, TV를 켰다. 51년 만에 아버지를 찾은 딸의 이야기였다. 화면 속에서 두 사람이 포옹하며 울고 있었다. "새로운 시작이에요." 나는 42년을 함께한 아버지와의 인연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다음날, 대학생 때 자주 가던 멍텅구리 떡볶이집. 테이블마다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혹시 내 대학 동기들일까?' 우리는 무자녀를 선언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었다. 선택이었다. 하지만 후회 아닌 후회가 가슴 한편에 남아 있었다.
10월 27일, 정신과. "아버지가 정상이 아니네요. 사기꾼의 정형입니다." 제3자한테 듣는 그 말. 충격이었다. "아버지하고 연을 끊어도 전혀 이상한 상황이 아닙니다." 진단서: 악성 민원인으로부터 시달림, 갑질 상사로 인해 중증 우울.
4.
독촉이 시작됐다.
10월 31일. 하나카드. 지쳐 보이는 목소리.
11월 1일. 토스뱅크. 시험장 주차장에서 받은 전화. 토요일인데도.
11월 2일. 기한 이익 상실 안내.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
11월 3일. 케이뱅크. 너무 친절해서 오히려 더 불편한.
그날 오후, 이마트. 팀장님이 주신 추석 선물 상품권으로 장을 봤다. 키친타월을 담았다. 아내가 웃었다. "고마워. 이거 필요했는데." 그 작은 것에도 기뻐하는 아내를 보니 더 슬펐다.
11월 4일 화요일 오전 10시 59분. 삼성카드 추심팀. "가압류 신청 들어갑니다." 문자: 결제대금 연체 관련 방문 및 법적절차 착수 예정 안내. 4,281,514원. 손이 떨렸다.
11월 5일 수요일 오후 6시 3분. 퇴근길. 문자가 왔다. "[삼성카드] 법적절차 착수 완료 안내. 의정부지방법원으로 가압류 접수되었습니다. (사건번호 25가단20000)" 진짜로 접수했구나. 내 인생에 법원 사건번호가 생겼다.
5.
11월 9일 일요일. 나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움직일 힘이 없었다. 아내가 다가왔다. "우리 바지락 칼국수 먹으러 갈래? 민생회복 소비쿠폰 아직 남았거든."
도봉구 전라도옛맛손팥칼국수. 그릇 가득 바지락이 담겨 있었다. 한 입 먹었다. 행복했다. 이렇게 작은 것에도 행복할 수 있구나. 계산할 때, 민생회복 소비쿠폰 2만 원. 우리 돈은 한 푼도 들지 않았다. 정부가 나를 잊지 않았다는 것. 누군가 내 편이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11월 11일. 변호사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신혼집 의정부 동원아파트 감정평가서를 준비하셔야 합니다." "비용은 얼마나 들까요?" "48만 원 정도 예상됩니다."
48만 원. 사흘 전, 2만 원짜리 칼국수에 행복했던 내가 이제 48만 원을 준비해야 한다. 문득 생각했다. 이런 힘든 일을 자식에게 시키는 부모.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걸.
11월 12일. 사무실로 우편물이 왔다. 삼성카드 법적 절차 착수 안내장. 총잔액: 15,077,347원. 나는 종이를 접어 서랍 깊숙이 넣었다. 회사로 온 독촉장. 동료들이 볼 수도 있었다.
11월 14일. 감정평가서 발급 완료. 48만 원 출금. 잔액: 127,450원. 다음 월급날까지 2주. 127,450원으로 버텨야 한다.
6.
11월 17일 일요일 오후 3시 31분. 하나은행에서 전화가 왔다. "개인회생 접수했습니다. 사건번호는 2025 회 210000입니다." "아, 네. 그럼 더 이상 독촉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법원에서 금지명령이 아직 저희 쪽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7일에 1번씩 추심 전화는 하겠습니다."
독촉은 안 한다. 하지만 추심 전화는 한다.
11월 19일 화요일 오후 5시 50분. 카톡 알림. 안종렬 법률사무소(최승우 사무장님). 의정부지방법원 결정. 사건: 2025 회 #24 개인회생. 추심 금지. 그 네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11월 21일. NH농협카드. "하이패스 자동충전도 신용거래로 인식되는구나." 꿈에도 몰랐다.
11월 22일. 장모님 생신. 용돈을 더 챙겨드리지 못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남원골 추어탕. 스타벅스. 감자탕. 베스킨라빈스. 계산은 형제 셋이 나눠냈다. 장모님은 내 상황을 알고 계셨다. "힘들지?" "괜찮습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7.
11월 24일 월요일 오후 4시. 신한저축은행 문자. "고객님, 개인회생 문서 도달 되어 추심금지 처리 완료 됐습니다."
자정. 하나카드 알림톡. "이용한도 조정 사전 안내. 업*용님, 아래와 같은 사유로 2025년 11월 25일부터 이용한도가 0만 원으로 조정될 예정입니다."
카드이용한도 0만 원.
단기카드대출한도 0만 원.
숫자가 사라졌다.
8.
기억은 물결처럼 밀려와 내 마음을 적신다.
"넌 공무원이라 대출 한도가 높아서 좋다."
아버지의 그 한마디가 10년 후, 3억 9천만 원의 빚이 되어 돌아왔다. 그 사이의 시간들. 10년간 1억 원의 이자. 한 번도 받지 못한 월세. 갈비탕에 흘린 눈물. 키친타월에 기뻐하는 아내. 2만원의 위로. 48만원의 무게. 그리고 이용한도 0원.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잉크처럼 번져 나간다. 누군가의 부재가 만들어내는 공백. 아버지라는 이름이 남긴 흔적.
창가에 걸린 낡은 사진첩처럼, 나는 10월 22일부터 11월 24일까지의 시간을 천천히 넘긴다. 페이지마다 먼지 섞인 추억이 아니라, 독촉장과 결정문과 영수증이 묻어 있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 아내의 손이 있었다. 바지락이 가득한 그릇이 있었다. 장모님의 "힘들지?"라는 물음이 있었다. 그리고 11월 19일 오후 5시 50분, 사무장님의 메시지가 있었다.
"추심 금지."
숫자들 사이에서 나는 숨을 쉰다.
아버지의 찬란한 빛은 내게 빚이 되어 돌아왔지만, 그 빚 너머로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독촉금지명령.
이용한도 0원.
그리고 내일.
봄날의 그림자처럼, 기억의 골목길에서 마주친 이 시간들은 언젠가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아니라, 끝까지 살아낸 증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