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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언니 May 23. 2024

동급 ‘끌림의 법칙’

끼리끼리 만난다.


회사에 본인은 괜찮아 보이는데 결혼을 잘 못한 것 같은 남자 과장님이 있다. 처음 봤을 때 키는 작았지만 부드러운 성격에 조곤 조곤 부드럽게 말을 잘해서 인상이 좋았다. 책임감도 강하고 꼼꼼한 데다 일도 제법 잘해서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거부감이 드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던 중 일상적인 대화를 하다가 알게 되었는데 결혼한 지 3년이 채 안 된 그의 30대 초반 아내는 결혼 전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고 한다. 그는 결혼할 때 서로의 재정 상황을 잘 알아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내가 결혼할 때 500만 원만 들고 와서 놀랐다고 했다. 게다가 아내의 부모님 중 투병 중인 분이 계시는데 국가에 신청만 하면 보조금이 나오는 질병을 지난 10여 년 간 3형제 중 아무도 알아보지 않아서 보조금을 받지 못하고 있었단다. 결혼하며 사위가 보조금을 신청해 주어 이제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며 그가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녀의 언니가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직장의 계약기간이 만료되면서 퇴직금을 받게 되었는데 그걸로 자매가 제주도 여행을 일주일 간 다녀왔다고 한다. 듣기로는 언니의 형편도 수도권에 위치한 공공의 지원을 받아 거주하는 작은 투 룸에 사는 과장님 부부를 잘 산다고 질투할 만큼 안 좋은 것으로 아는데 자매는 오래간만에 생긴 목돈을 쉽게 썼다.




그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난 원래 인정머리 없이 이성적인 스타일이라 사랑이라는 감성적 전제를 빼고 봤을 때 그 과장님이 평범한 외모의 악조건을 가진 배우자와 불합리한 조건을 참아가며 결혼할 정도는 아니라고 봤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익숙해진 과장님은 같은 팀의 아래 직원에게 담배를 꾸어 폈다.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내가 코로나에 확진되며 2일을 쉬었던 그는 병원도 가지 않은 채 콜록거리는 모습으로 마스크 없이 사무실에 나타났다. 쉬거나 재택을 하지 않고 그때부터 계속 나오더라. 끝까지 병원은 가지 않았다. 조심스레 마스크를 끼는 팀원들과 회의실에서 이야기하며 당당하게 마스크를 벗었다. 그리고 돈이 없다며 빈익빈 부익부의 세상을 질타하던 그는 성과급을 받자마자 명품 시계를 사고 연 2회 이상 해외여행을 갔다.  




누구나 자유롭게 저축하거나 소비하며 경제 기준을 달리할 수 있다. 하지만 세금을 열심히 내며 여행도 안 가고 절약하는 내가 보기에 세금으로 다양한 지원을 받아가며 소비 생활을 즐기고 자랑하는 그는 우리 사회의 공정함이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씁쓸한 요소이다. 미래보다는 당장의 욕구에 힘들게 번 돈을 내주는 것이 내 가치관에는 맞지 않는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그들 부부는 서로 비슷해서 결혼한 것 같다. 부족한 살림에 생긴 목돈을 여행이나 명품에 손쉽게 써버리는 것에 서로 동의를 한 것이다. 어차피 그는 모르는 나 혼자만의 끄적거림이지만 둘은 동급의 끌림을 서로 느껴 함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보기에 나도 구질구질하게 사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뭐 어쩔 수 없지. 각자 편한 대로 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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