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빠른 시간 안에 엄청난 경제적 비약을 이룬 나라예요. 6·25전쟁이 끝난 직후 구석기 시대로 되돌아갔다던 우리나라는 무려 1960년대까지 보릿고개가 존재했어요. 먹을 게 없어 진흙이나 나무껍질을 먹다가 변비에 걸려 똥구멍이 찢어질 정도로 가난했다고 해요. 그랬던 한국이 어느새 풍요의 나라가 되었어요. 먹고, 입고, 보고, 듣고, 쓰는 모든 것이 과거와 달리 이제는 차고 넘치고 있지요. 이제는 배불리 먹기보단 살을 빼기 위해 일부러 끼니를 거르기도 하고, 인터넷을 통해 옛날 영화나 드라마도 언제든 다시 볼 수 있으며, 갖고 싶은 물건을 주문하면 집 앞까지 배송받을 수 있어요. 가난했던 과거 한국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풍요를 우리는 지금 누리고 있지요. 그런데, 우리는 과거 세대보다 더 불행을 느끼며 살고 있어요. 국내 자살률과 우울증 환자 수가 해마다 늘고 있지요. 전에 비하면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데 왜 전보다 더 행복을 느끼지 못할까요?
행복은 만족에서 시작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먹고 사는 문제가 최소한으로 해결된 상태에서는 지금 내가 갖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에 만족할 줄 알면 그 순간 행복해질 수 있는 수많은 길이 열리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갖고 있는지보다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더 많이’ 갖고 있는지를 따져요. 내가 전보다 더 많이 풍요로워졌더라도 주위 사람들이 나보다 더 많이 갖고 있으면 즉시 그들을 부러워하며 더 많이 갖기를 바라지요. ‘욕심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말라진다’는 말이 있어요. 풍요의 시대 속에서 내가 행복해지려면 내가 얼마큼에 만족하는지를 알고, 그 이상은 절제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해요.
일본의 저명한 운명학자 미즈노 남보쿠는 자신의 저서 <절제의 성공학>에서 절제에 대해 말한 바 있어요.
절제, 즉 스스로 멈출 줄 아는 것이 최고의 선이며, 만물을 다스리는 근본 이치입니다. 절제하지 않는 모든 것은 악의 근원이며 그 종말은 만물에 해롭습니다. 절제하지 못한 삶은 비록 좋은 운명을 타고났더라도 하늘의 운을 받지 못합니다. 천운은 무절제한 사람에게는 전달되지 않습니다. 자연의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나무나 돌보다도 못한 사람입니다.*
현재 내 상황에 불만을 갖고 있다면 잠시 시간을 갖고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살펴보세요. 우리는 요청하지 않아도 사방에서 끝없는 도움을 받고 있어요. 태양은 자신의 몸을 불태워 지구를 따뜻하게 지켜주고, 땅은 나를 포함한 모든 생명들을 키워주며, 군대가 우리의 안위를 지켜주고, 농민들은 곡식을 생산해 우리를 먹여주고, 기술자는 내가 필요한 것을 만들어주어요. 하늘부터 보통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나를 도와주며 지켜주고 있지요. 우리가 얼마나 많이 누리고 있는지를 알면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길 거예요. 그런데 왜 우리가 불행해해야 하나요?
풍요의 시대에서 더 많이 가지지 못해 불행을 느끼는 것은 물속의 물고기가 목마르다고 하는 것과 같아요. 가난한 마음 때문에 물질에 욕심을 부리면 부릴수록 내 마음은 더욱더 가난과 불행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만족을 알고 절제할 줄 알면 나는 언제든 행복해질 수 있어요.
자본주의는 불만족을 먹고 산다는 표현이 있어요. 전세계 기업들은 하루에도 수백, 수천 개의 신제품을 쏟아내며 자신들의 신제품을 가져야만 내가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끊임없이 유혹해와요. 우리의 불만족을 조장하고 화려한 제품에 눈이 멀게 해 지갑을 열게 하지요. 이러한 세상 속에서 행복할 수 있는 나만의 기준을 세워두지 않으면 우리는 바닷물을 마시며 점점 더 커지는 갈증을 느낄 뿐이에요.
나는 얼마큼에 만족하는 사람인가요? 이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 생각해보세요. 답을 찾지 않고 생각 없이 살다간 눈 뜨고 코 베이는 삶을 살다 갈 수도 있어요. 나만의 확고한 기준을 가져야 내 옆에서 누가 떠들어대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답니다.
*출처: 미즈노 남보쿠, <성공의 절제학> 133p, 바람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