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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니김 Apr 25. 2024

오늘도 밥배보다 꽃배를 채우는 중

세월엔 꽃배타령

오늘처럼 아름다운 날이 열릴 줄 몰랐다. 누구에게나 그런 날은 있겠지. 창문너머로 아침 햇살이 안녕하며 다정하게 웃어준다.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아침햇살에 비친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눈앞에는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어제와 똑같은 마당, 똑같은 꽃나무들, 그런데도 어제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유난히도 햇살이 담벼락 넝쿨 사이로 야생의 노란색을 더욱 빛내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감동의 물결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오늘 하루란 게 이런 거였어. 인생에서 뭘 기대했던 거지? 여태까지 왜 몰랐을까? 삶의 하루는 늘 다르면서, 늘 새로운 반복일 뿐이란 걸...” 놀라운 것은 다름 아니다. 당연한 이치라지만, 아침 이슬을 먹고 자라는 풀꽃과 함께, 또 다른 아침이 열린다는 사실이다. 

 또다시 좋은 날이 열렸다. 오늘 이 순간을 오롯이 온몸으로 감지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하루는 벌써 시작된 셈이다. 오늘은 또 무슨 좋은 일이 펼쳐질까, 기대만땅이다. “혹시 아직도 어제의 걱정이 남아있을까? 그렇다면 그건 어제로 돌려놓고, 오늘의 시간을 그려봐야지.” 여하튼 똑같은 오늘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오늘은 어제의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요즘 난 시골에 살고 있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유유하게 즐기며 살고자 몸부림친다. 어떤 날은 아내와 함께 정원에서 꽃을 가꾸거나, 잔디 마당의 테라스에 앉아서 책을 읽으며 풀잎소리에 취하면서 말이다. 나는 가끔 정원에서 나누는 대화 속에 좋은 하루를 맞이하면서, 시위적거리며 밥배보다 꽃배를 채우는 중이다.

 어느새 여름은 가고 가을이 오는 길목이었던가? 한바탕 소나기가 내리더니 산골짜기에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풀꽃향기가 퍼져 나왔다. 그때 뜰 안으로 걸어 나오던 아내가 생긋 미소를 띄우면서 말했다. 

 "가을바람 탓인가? 오늘따라 바람도 맛있고, 하늘의 구름도 참 예쁘네. 저기 코스모스도 춤을 추니 나도 덩달아 즐겁네요.” 

 아내의 감성 넘치는 센스가 아니었다면 어찌 가을을 이토록 맛있게 맞이하겠는가? 나도 뭉실뭉실 가을향기를 마음속에 담고 싶었다. 그래서 맞장구치며 말했다. 

 "그렇지. 가을을 마시니 마음속까지 편해지는 것 같지? 어때, 행복이란 게 말이야. 이런 소소한 것들의 울림 아니겠어?”

 하늘이 예쁜 건지, 구름이 예쁜 건지 잘 모르겠지만, 항상 아내가 옆에 있기에 쓸쓸했을 가을도 아름답게 맞이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고, 이래저래 심란했던 마음을 달랠 수 있었던 것이리라. “미안하오, 고맙소이다!”마음속으로 속삭일 뿐이다. 

 코스모스 한들거리는 가을이면 뒷동산 오솔길 따라 숲산책에 나섰다가 피톤치드를 마시고 돌아오곤 했다. 황혼녁엔 다시금 마당에서 아내와 마주 앉아 커피 한잔에 낭만을 마시기도 했다. 나에게 뜰안은 추억을 새기는 곳이자, 삶의 먼지를 털어주는 치유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하루하루 살다보면, 커피처럼 쓴맛과 단맛 사이를 넘나들겠지. 그날의 걱정일랑 어제로 넘겨버리고, 지금은 오늘만을 생각하자. 그땐 그랬을 뿐이다. 금여시고여시 오늘처럼 이 순간을 계속해서 사는 것이니까.

 일찍이 고대 로마시대의 철학자 세네카도 말했지. “과거는 망각의 손에 맡기고, 미래는 신의 손에 맡겨라. 우리의 손에 있는 것은 오직 현재 뿐이다.”(출처: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 루키우스 세네카)

 뭐니 뭐니 해도 하루를 살지라도 또바기 나다웁게 사는 것이다. 어차피 인생이란 죽음전의 앞날만을 살다가는 한바탕 쇼일 뿐이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 설렘과 울림사이, 혹은 열정과 냉정사이에서 알콩달콩하면서, 조마조마하면서, 애면글면하면서...... 나만의 길을 가련다. 

 어쨌든 남들과 똑같이 산다면, 그건 게미없이 서서히 죽어가는 평범한 인생일 뿐이다. 만약 남들과 다르게 산다면, 나만의 꿈오라기 속에 나만의 특별한 인생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인생의 나비가 아닌 애벌레같은 여정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없이 똑같은 길을 걷는 것처럼 보여도, 평범한 길이야말로 사실 매일처럼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다. 어쩌면 평범하면서도 때로는 평범하지 않은 순간들이 바로 인생의 제호미일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의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에서 “오늘 뭘 해야 하나? 산책이나 가볼까... 오늘 아침도 여느 날처럼 모든 게 평소와 다를 바 없군.”주인공 어부 요한네스를 통해 일상적인 인생의 원형은 별 차이 없음을 이야기했다. 

 내가 이렇게 에세이를 쓰는 것도 나름대로 산다는 것의 새로운 의미, 혹은 뭔가 가치를 찾아가는 인생 여행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게 세상사는 연습일지도 모른다.

 이제서야 비로소 인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것일까? 이런 까닭에 나는 미네르바의 올빼미처럼 여여한 인생길을 되새기며, 허공에 외치고 싶은 심정으로 소리쳐 본다. "앗싸! 오늘도 참 좋은 날이었어.(“ Wow! Today was a great day too.)”아무튼 오늘처럼 평범하지만, 언제나 밥배보다 꽃배를 채우는 날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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