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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속선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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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Oct 27. 2024

나의 열등감

요새는 자주 못 가지만, 전에 살던 곳은 열차 요금이 저렴해서 동해 바다를 종종 보러 갔다.

이 얘기는 그 때 당시의 얘기이다.


해변 우측에는 벼랑으로 오르는 산길이 있고, 거기에는 폐쇄된 군인 초소가 하나 있었다.

그러면 안 되지만, '군사제한구역' 어쩌구해서 민간인은 못 들어 가게 하는 그런 곳이었다.

굳이 거기를 가려고 하는 이유는, 단순히 거기가 인근 해변에서 지대가 높고, 탁 트여서 전망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초소 외에도 레이더 장비 같은 것이라던가, 감시 카메라도 있었다.

나는 혼자서 카메라 사각지대에 서서 탁 트인 바다를 바라 보곤 했다.


나는 바다를 향해 나 혼자서 외쳤다.

구체적인 내용은 몇 년이 지나 버려서 기억이 안 나지만, 그 것은 필시, 내 가슴 안에 늘 자리하고 있던 묵은 생각이었다.

간략하게 설명을 하자면, 사람이 어떤 시대에 태어 나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숙명'이란 것이 있다.

혼란스럽고 격동의 시대에 태어 나서 살아 가는 사람들일 수록, 거기서 주도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일 수록, 그렇지 않은 시대에 태어 난 사람들과 질적으로 다르다.

믿거나 말거나의 얘기겠지만.


나는 늘 그런 세대들에 대한 동경도 간직하고 있었지만, 나는 왜 그런 세대들하고 같은 시대에 태어 나지 못 했는 지, 그렇다면 나는 열등하게 태어 난 사람이란 말인가, 뭐 이런 식의.

무슨 말 끝에 그런 얘기가 나왔는 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무튼 벼랑 위에서 바다를 향해 그렇게 외쳤던 것이다.

그 것은 '열등감'이었다.


나는 부자를 그렇게 부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권력자 또한 부럽게 보지 않는다.

그런데, 능력에 대한 욕심은 있는가 보다.

내가 잘 한다고 여기는 영역, 내가 최고의 자리에 서야 한다는 무의식적 열망, 그런 것은 다른 이에게 양보하기 싫었나 보다, 그랬나 보다.

그래서 나는 아니라고 여겼지만, 나도 모르게 시기하고, 나보다 뛰어 난 이를 닮고 싶었고, 그렇게 이기고 싶었나 보다.


울컥한 심정으로 목소리가 메어 오더니, 눈이 젖어 버렸다.

쾌청한 날이었고, 바다는 섬 한 점 없이 드넓고 푸르렀다.

이따금 큰 선박들 따위, 비둘기 떼들만이 푸른 도화지 위의 그림처럼 아른거릴 뿐이다.

벼랑 위 초소 위에 홀로 서 있는 자는 왜 그 자리에 서 있었으며, 어디서 왔다, 또 어디로 갈 것인가.


"이 게 뭐지? 나는 아닌 듯 했던 모습이, 결국 튀어 나왔네. 나는 아니라고 믿고 싶었지, 정말 아닌 게 아니었구나."


바다는 그런 곳인 것 같다.

산은 품어 주고 보살펴 주지만, 바다는 잠재되어 있는 묵은 기운을 이끌어 내서 풀어 버리는.

나는 그렇게 그 바다에 빠져 버렸다.


그래서 나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다.

개 중에는 포기하는 것도 많지만, 그 것은 다른 쟁취를 위한 포기였지, 그 것은 그보다 더 큰 것을 쟁취하면 종속되어 획득할 것이라 여기고 다른 우회로를 택하는 것이었다.

다른 길을 택하는 것은 있어도, 멈추는 법은 절대 없다.

그러다 함정에 빠져 버리는 나의 어리석은 모습에 또 의기소침해 할 때도 있지만, 큰 후회는 않는다.

아무 것도 안 하고 그 자리서 멈추는 것보다 훨씬 낫기에.

절뚝거릴 지언정, 반드시 끝을 봐야 하는 성미이다.

이런 삶이 고달플 때가 많지만, 그래도 나를 알게 모르게 돕는 분들이 많기에, 또 기력을 차려서 앞을 나아 간다.


열등감을 극복하는 것은 두 가지 약이 없다.

상대방을 아예 인정을 해 버리던지, 아니면, 아예 능가를 해 버리던지.

물론, 저마다 존중해야 될 분들이지만, 양보 불가한 가치에 대해서는 인정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힘들더라도 나는 후자를 택한 것이다.

그래서, 늘 남들이 안 다니는 지도없는 길을 도전했고, 늦은 감이 있지만, 법학 공부도 뛰어 든 것이다.

내 삶의 모든 것을 바쳐 벼르고 또 벼르고, 칼을 갈고 또 갈고 있다.

적대감은 없다.

단지, 내 스스로가 풀지 못 해서일 뿐.


나에게는 '열등감'이 있다.

그 것을 많은 이들이 누릴 수 있는 기쁨으로 '승화'시키려 한다.

나는 그렇게 살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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