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유리 한 장이 깨졌다.
깨진 유리 파편들을 다시 깨진 모양대로 맞추면, 그래도 온전한 형태를 이룰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연상된 하나의 단어가 있으니, 그 것은 바로 '천생연분'이었다.
한 번 쯤은 다들 궁금해 하기 마련이고, 그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100% 완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나의 부족한 점을 완전히 채워 줄 수 있는, 그가 뭘 해도 아깝지 않고, 정말 내 마음에 모든 면에서 쏙 들고, 서로 싸우지 않고 항상 잘 맞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 정말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있다면 어디에 있는, 어떻게 생긴 사람일까, 뭐 이런.
그런데, 한 편으로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그런 생각, '천생연분'을 기대하는 것처럼, 다른 이들도 다들 그런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내가 그 사람에게 '천생연분'이 되어 줄 수 있을런 지.
바라는 것만 많고 오히려 내가 상대방에게 부합한 사람이 되려는 노력은 등한시한 것은 아닌 지.
뭐 상상은 누구나 자유 아니겠는가.
방구석에서 혼자 상상만 한다면 누가 나한테 뭐라 하겠는가.
그렇지만, 현실 속에서의 내가 '천생연분'을 고대하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에게 '천생연분'이 되어 줄 수 있는 지를 스스로 자문한다면, 창피할 수도 있겠다.
파편들의 모양은 각자 제 각각들이다.
지구 상의 인구가 얼마인 지 검색해 보니, 무려 80억이 넘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의 파편 모양도 80억 가지가 넘을 것이다.
어느 하나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없다.
겉으로 똑같아 보일 지라도, 미세하게 들여다 보면 그래도 다 다르다.
나와 파편 모양이 비슷한 상대방은 나와 너무 비슷해서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지 못 한다.
나와 파편 모양이 너무 다르면, 상대방과 맞추기 어렵고, 이해하기도 힘들다.
내가 튀어 나왔으면 상대방은 들어 가 있어야 하고, 내가 들어 가 있으면 상대방은 튀어 나와야 한다.
그래야 상호 보완이 되고, 서로 기운이 돌면서 상생의 작용이 일어 난다.
그렇다면, 정말 이런 애초의 원래 한 장의 유리였던 것처럼 애초에 완벽한 '천생연분'이 있을까?
난 전 세계를 뒤져도, 온 우주를 뒤져도 애초에 그런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또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이제는 너무 많은 세월을 지나면서 서로 다르게 파편의 모습이 변형되었다.
막연한 '천생연분'을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기 보다, 차라리 현재 내 삶에 잘 맞는 사람을 물색하는 게 더욱 현실적이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정말 원래의 한 장의 유리였던 것처럼 서로가 100% 잘 맞을 수는 없을 것이다.
각자가 살아 온 환경이 다르고, 그에 따라 형성된 가치관과 성격, 여러 가지들이 다 다르다.
어떤 때는 상호보완이 잘 돼서 잘 맞는 것 같다가도, 어떨 때 보면 어쩜 이렇게 서로 판이하게 다른 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 튀어 나온 파편이 상배방의 움푹 들어 간 파편을 다 채워 주지 못 하고, 역으로 바꿔도 마찬가지이다.
내 들어 간 파편을 상대방이 채워 줘야 하는데 상대방이 채워 주지 않는다고 싸우고, 서로 튀어 나온 파편으로 아집, 요구, 주장을 하면서 싸운다.
다 서로서로 부족한 부분이 있고, 모든 면에서 맞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상태로 그냥 서로 살아 간다면, 서로 탓만 하면서 헤어 질 날짜만 받아 두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맞추면서 살아 가는 '양보'와 '배려'가 필요하다.
시작은 서로가 서로에 잘 맞는 파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에 내 튀어 나온 파편이 상대의 들어 간 파편을 100% 다 채워 주지 못 했지만, 노력으로 상대방의 들어 간 모양에 맞게 자신의 튀어 나온 파편을 키워야 한다.
역으로, 내 들어 간 파편을 상대방이 채워 주지 못 한다면, 내 파편을 키워서 상대방의 파편에 맞춰 줄 수 있어야 한다.
그 것이 진정한 서로를 위한 '노력'이자 '양보'와 '배려'가 아닐런 지.
그제야 비로소 상대방을 위한 노력의 결실이 나한테 되돌아 오고, 그 좋은 기운을 받아 더 크게 키워 상대방에게 다시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이 것은 무한상승의 효과를 낳는다.
서로가 서로의 파편 모양을 맞추는 후천적 노력.
나는 그 것을 '현생연분'이라 명명하기로 했다.
'현생연분'은 그 대상이 이성적 반려자에 국한해서 생각하기 십상인데, 실은 이성 뿐이 아니고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적용된다.
부모, 자식 간에도 파편의 조각을 맞춰야 하고, 사제 간, 친구, 선후배, 상급자와 하급자, 모든 인간관계에도 상호 간의 파편의 조각을 맞춰야 한다.
만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와 같은 조각이 다 맞춰 진다면, 깨진 유리 파편들이 모양대로 다 들어 맞아, 결국은 하나의 온전한 유리 한 장이 완성될 것이다.
즉, 하나의 퍼즐을 완성해서 멋진 그림을 감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 그림은 온 인류 평화시대의 도래, 갈등과 전쟁의 영구적 종식, 세계적 화합과 문명의 대통합의 선언을 표현할 것이라 단언한다.
우리는 그 그림이 완성되기 전, 하나의 '파편 조각'으로 살아 간다.
오직, 서로를 위해 노력하고 양보하는 '현생연분'의 정신으로 하나하나 통합되어 갈 때,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