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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Jan 30. 2024

우리 숲에 드라큘라가 산다

Episode 04. 때까치

나는 공포물이나 스릴러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괜한 호기심으로 남의 일에 끼어들어 쓸데없는 고생을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일절 찾아보는 일이 없는데, 30년 전 요맘때 <드라큘라 Bram Stoker's Dracula>를 보러 갔었다. 그것도 여자친구와 함께.


유명한 영화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연출이라서... 기보다, 뭔가 기대하는 바는 따로 있었지만... 지금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기다란 창에 꿰어져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시체로 가득한 전장이다. 붉은 석양을 배경으로 그림자극처럼 연출되어 공기마저도 피비린내로 가득 찬 듯한 무시무시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다행히 여자친구와는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습니다!)


브램 스토커가 흡혈귀를 주인공 삼아 이야기를 쓰고 나서 처음 붙인 제목은 <왐피르 공작 Prince Wampyr>이었다. 너무 노골적으로 뱀파이어 Vampire를 연상시킨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만들어 붙인 제목이 <언-데드 the Un-Dead>. 이 참신한 단어를 만들어 낸 기쁨도 잠시. 이야기의 배경과 스토리까지 바꾸는 인물, 드라큘라에 대해 알게 된다. 당시 흡혈귀소설의 대명사 <카르밀라 Carmila>에 필적할만한 강력한 캐릭터를 마침내 찾아낸 것이었다.


동유럽의 변방 왈라키아 공국의 군주는 블라드 2세 Vlad II.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지기스문트 Sigismund의 용기사단 Order of the Dragon의 일원이 되면서 '용 Dracul'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를 이은 후계자는 장남이 아닌 차남으로 일생을 전쟁터에서 보냈는데, 그가 바로 '용의 아들 Dracula'. 그러나 전장에서 보여준 잔혹함 때문에 본명보다는 Vlad III the Impaler (창으로 꿰뚫는 자)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당시 사람들도 자극적인 소재를 좋아했던지 그에 대한 이야기는 뜬소문을 밑천 삼아 갈수록 불어났다. 창에 꿴 시체 옆에서 밥을 먹고, 커다란 솥에 사람을 넣어 삶고, 피를 마시고..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삽화까지 더해져 유럽 곳곳으로 퍼져나갔던 모양이다. 그렇게 시공간을 뛰어넘어 유럽의 서쪽 끝 영국의 브램 스토커에게까지 전해졌고. 이교도에 맞서 싸운 왈라키아의 영웅에서 피를 마시는 언-데드, 흡혈귀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우리 숲에도 드라큘라에 견줄만한 Impaler가 살고 있다. 작고 귀여운 외모의 때까치. 마스크를 쓴 얼굴로 꼬리를 천천히 까딱거리며 먼 곳을 주시하는 모습이 꽤 멋있다. 때까치는 곤충부터 양서류, 파충류, 설치류, 같은 조류까지도 사냥하는데, 어째서인지 먹이를 가지에 꿰어놓고 방치하기도 한다.


숲해설가님은 '꼬치요리의 달인'이라고 소개하셨지만, 대개 요리는 갓 만들어 먹을 때가 제일 맛있는 법. 곤줄박이나 어치처럼 나중에 먹으려고 도토리를 숨겨두는 것도 아니고, 반건조 개구리나 장지도마뱀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 것 같으니. 일종의 영역표시라고 생각한다.


'어이~ 여러분, 여기는 내 구역이야. 내가 작다고 만만하게 보는 모양인데, 원한다면 너희들 중 누구라도 언제든지 이렇게 만들어 줄 수 있어. 그러니까 내 눈에 띄지 말라고...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나무 끝에 앉아 천천히 꼬리를 돌리면서 숨바꼭질 놀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 우리 숲에도 드라큘라가 산다고 생각하니 왠지 소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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