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사유가 뭐예요?
최근 만난 지인이 나에게 물었다
“면접 때 퇴사 사유 어떻게 말하셨어요?"
난 스타트업에 있다보니, 인력부족으로 겪는 아쉬움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데이터 분석 담당자의 부재로 원하는 데이터를 볼 수 없거나 꾸준한 관리가 어려운 점을 이야기했어요'
”그거 말고 진짜 퇴사 사유는요?"
회사가 나를 책임져주지 않구나
열심히 하는 것과는 별개로 넘을 수 없는 산이 있구나
“그게 뭔가요?”
경력
'저의 디자인이 어떠한 협의도 없이 시니어 개발자에 의해 갈아엎어졌걸랑요 ~'
그때의 나는 신입 UXUI디자이너였다.
사람을 대하는 법도, 누군가와 협업하는 것도, 그리고 나의 의견이 가지는 힘도
미숙한 신입이었다.
(기획 + 디자인 + PM = 스타트업 디자이너)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하나의 기능을 설계할 때 어디까지 기획하고 고려해야 할지 막막했었다.
기획을 여러 번 보고 수정해도 기능의 범위를 산정하기 어려웠고, 엣지케이스를 모두 대비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공부하기 시작했었다. 사이드프로젝트로 외부 개발자 8명과 프로젝트하고, 기획 강의도 듣고, 디자이너들과 프로젝트도 하며 배운 내용을 회사에 적용했었죠.
그러다 찾은 방법이 작업 시작 전, 개발자와 기능범위를 정리하기였다.
유저들이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최소한의 기능으로 제작해 보자!
-게시글 작성 : 글 작성, 수정, 삭제
-게시글 작성방식 : 텍스트, 이미지, 음성
-게시글 반응 : 조회수, 좋아요 버튼, 좋아요 수, 공유, 공유 수
-댓글 : 댓글 작성, 수정, 삭제, 대댓글, 신고
등등
.
.
.
리서치를 통해 커뮤니티 기능을 나열하고
커뮤니티 목적에 맞춰 이번 프로젝트에 포함할 기능의 우선순위를 정했다.
협의된 기능 및 레퍼런스를 정리하면 기능이 늘어나지도, 엣지케이스를 대비하기도 좋았다.
'이런 걸 기능명세서라고들 하더라고요!'
이 방식으로 업무를 하니 디자인 수정이 줄고, 디자인 일정이 줄어드니 개발 속도도 빨라졌다.
그 분과의 첫 프로젝트는 커뮤니티를 고도화하는 작업이었다. 저는 그전과 같은 방식으로 개발자와 기능명세서를 제작했다. 어떤 기능을 넣을지 디자인 레퍼런스와 방향을 공유했죠. 그리고 완성된 디자인을 전달드렸다.
한 달이 지나고
한 달 반쯤 되었을 때
마주한 커뮤니티는 굉장히 생소했다.
제가 전달했던 디자인과 전혀 달랐거든요.
흔히들 사용하는 특정 SNS와 거의 흡사하게 생긴 커뮤니티가 눈앞에 있었다.
충격을 받은 3가지 이유는
-1주일에 2~3개 기능이 제작되어야 하는 스타트업에서 한 달 만에 기능이 나왔다는 것
-그 기능이 협의된 내용과 달랐다는 것
-디자인이 개발자를 통해 갈아엎어졌다는 것
기능이 개발되는 한 달 동안 제가 생각한 건
'기능이 오래 걸리나보다.'
'야근을 많이 하시니 어려운 부분이 있나 보다.'
그러다 새로운 업무가 쏟아지면서 커뮤니티를 거의 신경 쓰지 못했고, 그 사이에 커뮤니티는 전혀 처음보는 디자인으로 완성되었다.
한 번이라도 개발 진행상황을 봤더라면,
기간이 늦어지기 전에 확인을 했더라면,
내가 챙겼어야 했는데..
자책을 하다가 너무 어이없는 상황에 화가 나기 시작했었다.
결국 대표님과 공동창업자분께 개별 면담을 요청했죠. 그리고 그 개발자분과도 면담을 했다.
면담을 요약하면
“그분이 잘 못하셨어요. 이건 회사에서 바로 잡아볼게요”
그 일이 있고 나서 한동안 공허했다. 대학을 다니고, 새벽까지 사이드프로젝트를 하고, 강의를 들으며 지식을 쌓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고, 그리고 나서야 나의 주장에 근거가 실렸는데...
'이 방법 효율적이에요! 이렇게 해봐요!'
고객 리서치, 벤치마크를 통해 이 기능을 넣어야 하는 이유, 기획 의도, 기대효과, 가설을 정리했었다.
그동안 문서를 쓰고, 제안하기 위해 쓰던 노력과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시니어의 '직감+디자인+개발' 능력을 갖춘 그분은 기획서 없이도 기능을 만들었다.
디자인과 개발을 동시에 해버리니 고객의 반응을 바로 볼 수 있도록 구현도 완료되었죠.
그 모습 앞에서 글자만 빼곡한 저의 기획서가 초라해 보였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 경험이라도 신입보다는 시니어에게 힘이 실린다는 점.
관련 학과를 나오고, 관련 대외활동, 경력을 쌓아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느껴졌다.
이 기분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그 분과 함께하는 모든 회의에서 스파크가 튀었고, 결국 반대의 상황이 되어 대표님과 면담하게 되었다.
회사의 분위기를 안 좋게 하는 주범으로요.
실제로 그 커뮤니티 기능은 시니어분이 제작한 방향으로 배포되었고,
고객들의 커뮤니티 활동이 증가해 성과도 나왔죠.
그 결과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낮아졌다.
나는 이 일을 왜 하는걸까?
내가 이 회사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디자인을 공부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여러 질문이 머리속을 휘집고 다녔고, 결국 회사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
그때부터 제 마음의 불꽃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회사가 아닌 회사 밖으로
이직하자. 내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자.
결국 그 분노가 원동력이 되어
이직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
첫 회사라서 특별했고, 제가 제작한 디자인을 실제 고객이 사용하며 성과를 측정하는 게 재미있었다.
이루지 못할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갱신하며 성장하는 회사였다.
사실 이 회사가 커지면 초기멤버로 자회사를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품으며 다녔었는데,
그로 기대로 인해 실망감이 더욱 컸던 것 같다.
초기멤버라도 경험과 능력에 대한 힘이 없다면 부속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회사에서 나를 지켜주는 건 능력일까..?
회사에서 신뢰를 얻지 못했기에 이런 결과로 이어졌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간이 지나 과거의 내가 어떻게 행동을 하면 좋았을지 고민을 해봤다.
신뢰는 화려한 언변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결국은 상대에게 어떠한 결과를 보여주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신입이었던 나와 시니어분의 차이점은
입증할만한 결과의 유무였다.
오늘의 꿀팁
신입이 회사에서 신뢰를 얻는 방법
회사 밖이 아닌, 현재 회사 안에서 성과를 내야한다.
당사자에게 직접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기능에 대한 성과를 보여주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면
상사에게 나의 미흡한 점, 강점에 대한 피드백을 요청하라.
아쉬운점은 개선하고, 강점은 강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