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패션으로 읽는 미술 전시
패션으로 읽는 미술에서 주목하는 2024년 첫 번째 달인 1월에 볼 만한 전시를 소개하겠습니다.
패션의 관점으로 읽을 수 있고 바라볼 수 있는 전시들을 선정하여 소개합니다.
첫 번째 추천 전시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입니다. 전시는 크리스마스와 겨울 분위기에 잘 어울립니다. 따뜻하면서도 아름답게 연출된 전시는 관람 내내 작품 하나하나의 디테일에 빠져들게 합니다.
특히 작품 속에는 작가 미셸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며 파리의 시대적 이미지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작가가 포착한 파리의 풍경은 단순한 시대적 재현이 아닙니다. 작가의 아버지가 들려주고 또 어린 시절 작가의 경험을 이야기 삼아 표현된 것입니다.
작가가 그려낸 사람들의 옷에서는 당대의 패션 스타일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람객들은 옷을 통해 파리의 벨 에포크 시대를 쉽게 읽어 낼 가 수 있습니다. 전시장에서 촬영 자체가 일부 섹션만 가능하기에 모든 작품을 사진으로 담을 수는 없었지만, 일부의 그림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을 만큼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은 벨 에포크 시대의 스타일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작가가 그리는 벨 에포크의 시대는 좋은 시절이라는 의미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평화로운 시기를 말합니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자본주의 사회가 진전되고, 또 근대 시민사회가 성립된 이 시기는 안정과 풍요로움이 넘치는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 새로운 예술양식인 아르누보가 등장했습니다. 이 아르누보양식은 복식에도 나타났습니다. 모래시계처럼 생긴 실루엣으로 가슴과 힙을 강조하고,
Leg of mutton이라고 불렸던 큰 소매가 다시 등장하였습니다. 1900년경으로 접어들어서는 소매가 줄어들고 관심의 초점이 힙으로 옮겨 갔는데, 미셸의 그림에서 이를 반영한 S자 형태를 보이는 복식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경제적 부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당시에는 레이스, 모피, 러플 등 화려한 소재가 주를 이루었는데, 이 또한 그림에서 쉽게 관찰됩니다.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관람하면서 따뜻한 한 해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기간 : 2023. 12. 16 - 2024. 03. 31
예술의전당/서울(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1층 한가람디자인미술관)
화-일 10:00~19:00(월 휴무)
성인 20,000원
두 번째 추천전시 역시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빅토르 바자렐리: 반응하는 눈>입니다. 빅토르 바자렐리는 옵아트의 선구자로 알려진 예술가입니다.
그래픽적인 이런 디자인들 아마 많이들 보셨을 겁니다. 바로 이러한 패턴을 옵아트라고 합니다. 그런데 착시효과로서도 많이 응용되는 이 옵아트의 패턴은 미술 작품으로서보다 패션이나 광고 디자인에서 더욱 익숙하게 보셨을 겁니다.
이는 옵아트가 동시대 공존하였던 팝아트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도 있겠지만요, 시각적 측면이 강조됨에 따라 옵아트 자체가 장식적인 형식으로 바뀌면서 주류 미술에서 사라진 탓도 있습니다.
특히 평면의 천을 이용해 신체라는 입체에 구현해야 하고, 또 움직임까지 고려해야 하는 패션의 영역에서는 이러한 옵아트의 조형적 특성이 영감으로 작용했습니다.
또한 바자렐리가 옵아트를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개척해 새로운 시각예술로서 주목을 받았던 1955년에서 60년대 즈음에는 패션과 예술이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맺는 시기였고, 이에 예술작품을 차용한 패션이 큰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입생로랑의 몬드리안 드레스가 있죠.
그래서 옵아트는 그 시대를 연상하는 레트로 디자인에서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전시는 우리에게 디자인적으로 익숙한 옵아트를 미술사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바자렐리의 초기 작업부터 옵아트의 탄생까지 전시하면서 말이죠.
또한 최근의 미술관은 관람객과의 소통을 중시하며 체험을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는데요. 옵아트의 작품은 관람 그 자체만으로도 관람객에게 체험의 경험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요즘 다운 전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기간 : 2023. 12. 21 - 2024. 04. 21
예술의전당/서울(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1층 한가람디자인미술관)
화-일 10:00~19:00(월 휴무)
성인 20,000원
패션으로 읽는 미술에서 추천하는 세 번째 전시는 독일 조각가 <스테판 발켄홀>의 개인전입니다. 전시가 열리는 쾨니히 갤러리는 청담동에 위치한 MCM 플래그쉽스토어 3층에 있습니다.
트렌디한 이곳에서 열리는 조각가 스테판 발켄홀의 전시는 그의 시그니처 모티브인 검은색 바지와 흰색 셔츠를 입은 남자 3점을 포함해 총 12점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발켄홀 조각의 남성들은 하나같이 모두 슈트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현대미술에서 남성용 슈트는 젠더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남성의 권력을 나타내거나 혹은 이를 거부하고자 하는 상징으로서 수트라는 매체를 사용하곤 합니다.
하지만 발겐홀의 조각에서 표현된 슈트는 그저 중립적인 가치의 대상일 뿐입니다.
무색인 흰색과 검은색의 슈트, 감정을 알 수 없는 표정 그리고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 포즈. 관람객들은 오히려 이 순수한 조각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똑같은 사물을 보아도 자신의 관점과 경험에 따라 다르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에 이렇게 중립적인 가치를 지닌 조각상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게 만듭니다.
일부 색상이 있는 작품들도 보이지만, 오랜 시간 동안 우리에게 친근했던 단순한 색일 뿐입니다.
최근에는 미술의 문턱을 낮추고자 많은 아트갤러리들은 다양한 분야와 협업을 시도하고, 또 그 일환으로서 패션브랜드의 매장에 전시장을 오픈하기도 합니다. 쾨니히 서울은 이의 대표적인 사례로 가장 동시대적인 예술을 관람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러한 트렌디한 공간에서 선보이는 요즘의 미술을 관람해 보시길 바랍니다.
기간 : 2023. 12. 16 - 2024. 02. 03
쾨니히 갤러리 /서울(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412
화-일 11:00~19:00 (월 휴관)
무료
네 번째 추천전시는 이유진갤러리에서 열리는 <전병구: 베를린, 캔디, 히잡을 쓴 여자>입니다. 베를린, 캔디, 히잡 뭔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입니다. 이들은 전병구 작가의 회화작품 제목입니다. 즉 전병구 작가가 그린 대상들입니다. 작가는 주로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물이나 장면 그리고 사람을 자신의 회화로 해석합니다. 베를린, 캔디, 히잡은 모두 작가가 세계 곳곳에서 만난 대상들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바로 신체를 표현한 이 작품들입니다. 미술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아마도 이 작가를 바로 떠올리셨을 것입니다.
루이스부르주아입니다. 루이스부르주아는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미술가로 신체나 섬유 그리고 옷이나 바느질 같은 여성적 매개를 통해 어릴 적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작업들을 주로 선보였습니다. 전병구 작가는 자신이 미술관에서 본 루이스부르주아의 작품을 회화화한 것입니다. 이로써 관람객들은 무엇을 관람해야 할지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우리는 전병구의 작품을 보는 것일까요 아니면 루이스부르주아의 작품을 보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루이스부르주아의 작품을 그대로 옮겨 놓은 이 작품은 진짜라고 해야 할까요 가짜라고 해야 할까요?
관람객들은 작품을 통해 또 다른 상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히잡을 쓴 여자 많은 상상거리를 던져줍니다.
히잡은 특정 국가 혹은 종교를 상징하는 복식이기도 하지만, 인권, 성, 문화, 억압, 자유 등 많은 사회적 이슈와 관련된 매체이기도 합니다.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2살의 어린 여성이 사망하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 이 히잡은 911 테러를 떠올리게 하는 공포의 대상으로 간주된다며 벗을 것을 강요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작가의 유희적이고 독특한 관점을 따라가면서 우리 일상 주변에 있는 사물들이 지닌 여러 가지 측면들을 상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간 : 2023. 12. 07 - 2024. 01.12
이유진갤러리 /서울(서울 강남구 청담동 116-7)
월-토 11:00~18:00(일, 공휴일 휴관)
무료
패션으로 읽는 미술에서 추천하는 마지막 전시는 한남동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열리는 <컨템퍼러리 미디어&퍼포먼스 아트의 원형 >입니다. 전시는 현대미술의 영역을 확장시킨 미디어와 퍼포먼스 예술의 기록물을 다룹니다.
대표적으로 네온사인, 신체, 대중매체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브루스 나우먼과 신체, 섹슈얼리티, 젠더를 다루는 캐롤리 슈니먼 그리고 개념미술의 대가 요셉 보이스와 비디오 아트 선구자 백남준의 작품 등이 있습니다.
1950년대 후반부터 행위 자체가 예술품이라는 논리를 바탕으로 탈장르적인 미술운동이 등장하였고, 예술과 삶을 결합하고자 하는 시도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 미술계에서는 회화의 중요성이 줄어들고 퍼포먼스가 주요 매체로 장악했습니다.
전시는 크게 4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소개합니다. 패션으로 읽는 미술에서 주목한 섹션은 두 번째와 세 번째입니다.
두 번째 섹션에서는 행위와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신체를 통해 실험을 하는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섹션에서는 여성의 신체와 역할에 대한 여성작가들의 개인적 경험을 탐구합니다.
이렇게 신체를 활용한 작업들은 패션이 예술에 등장하게 되는 커다란 발판을 마련하기도 하였 습니다. 옷은 제2의 피부로 신체의 대용물로써 종종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현대미술의 영역을 확장시키소 또 미술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품들을 관람하면서 미술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기간 : 2023. 12. 08 - 2024. 02. 04
현대카드 스토리지/서울(서울 용산구 한남동 683-131)
화-일 12:00~21:00 (월 휴관/일, 공휴일 18시까지)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