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Nov 14. 2024
천년초 그대 사랑 ㅡ 시인 한솔 김정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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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초 그대 사랑
시인 한솔 김 정 희
천년초에서 처음 본 그대
살아가면서 그대에게
나를 보여주고 싶 었 다
그대에게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고
만날 때마다
예쁜 치마를 입고
화장도 했다
그대는 왕자
나는 공주였다
혼자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혼자였으면 얼마나 사랑했을까
그대는 타인으로
그대는 남의 것이라
영적인 사랑만 해야 할까
아니야
그건 더 나빠
아빠도 알았고
엄마도 알았다
이 생生에서는
그대는 남에 것이라
그대가 남의 것이라
우리는 사랑 하나를
바다에 보냈고
우리는 사랑 하나를
하늘로 보냈다
그런 사랑은 불타서
다음 생生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다음 생에선
내가 남자로 태어날거야
그대는 여자로 태어나
어디에 있던지
내가 찾으러 갈 거야
내가 찾으러 갈 거야
핸드폰이 강릉항 스타호
배낚시를 하러 갔다가
바닷속으로 빠트려 버려
가장 아쉬운 전화번호는
그대 내 사랑이었어
반드시 전화번호
찾기 전에 전화 통화를 하고 싶어
명륜성곽마을에 피어있는
천년초에게 속삭이며
말했다
그대 사랑은
천년 사랑이라고
그대 사랑은
천년 사랑이라고
한번 더 만나지 못해도
그대는 내 사랑
그대는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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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ㅡ
한솔 김정희 시인의 시 ‘천년초 그대 사랑’은 불완전한 사랑을 품고 살아가는 시인의 내면을 섬세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인연이 쉽게 이어질 수 없는 운명임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애틋한 마음을 천년초와 같은 강렬하고도 끈질긴 생명력에 비유한다. 이 시는 천년 동안 이어질 사랑을 꿈꾸며 현실의 한계를 넘어 영원한 사랑의 가능성을 염원하는 시인의 간절한 바람을 표현하고 있다.
첫 연에서 시인은 천년초에서 처음 마주한 사랑에 대한 떨림을 고백한다. ‘살아가면서 그대에게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라는 구절은 진실한 감정을 상대방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며, 시적 화자가 사랑을 위해 치장하는 모습은 순수한 동경과 기대를 담고 있다. 왕자와 공주로 비유되는 관계 속에서 시인은 상대방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지만, 곧이어 현실의 벽을 인식한다.
이어지는 연에서는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혼자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구절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을 나타내며, 서로 다른 현실 속에서 사랑의 불가능성을 인식하는 시인의 안타까움을 담고 있다. ‘영적인 사랑’으로 자신을 위로하려는 시도는 더욱 고통스럽게 느껴지며, 부모님마저 이 사랑의 불가능성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느끼는 절망감을 극대화한다.
‘바다에 보내고 하늘에 보냈다’는 구절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바다와 하늘에 맡겨버리는 비유로 감정의 해방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 사랑이 불타오르며 새로운 생에 대한 약속으로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이 사랑이 단순한 포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생에 대한 희망으로 전환되고 있다. 시인은 다음 생에 남자로 태어나 사랑을 찾겠다는 다짐을 통해 끊임없이 이어질 사랑을 꿈꾸고 있다.
후반부에서 시인은 바다에 빠져버린 전화번호를 아쉬워한다. 이 번호는 사랑의 상징으로 남아있으며, ‘천년초에게 속삭이며’ 그 사랑의 영원함을 다짐하는 모습은 다시금 그 사랑의 의미를 되새긴다. ‘천년 사랑’이라는 표현은 그 사랑이 얼마나 깊고 강렬한지를 잘 보여준다.
이 시는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초월적이고 영원한 것으로 승화시키려는 시인의 내면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인은 불가능한 사랑의 아픔을 천년초의 강인한 생명력과 연결해 독특한 이미지로 풀어내며, 사랑에 대한 절대적 순수성과 헌신을 담아냈다.
요컨대, 김정희 시인의 시 철학은 깊이 있는 감정과 영혼을 담아내는 데 있다. 그의 시 세계는 사랑, 고통, 희망과 같은 인간 본연의 감정을 다루면서도, 그것을 현실적 제약 속에서 탐구하고, 이를 초월적인 의미로 확장하려는 특징을 지닌다. 그는 쉽게 얻어지지 않는 사랑과 이루어질 수 없는 인연에서 오히려 영원한 사랑의 가능성을 발견하며, 그러한 사랑을 천년초와 같은 강렬한 이미지로 표현한다.
현실의 한계가 그를 좌절시키더라도, 시인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불씨를 놓지 않고, 다음 생에 대한 약속과 같은 희망을 통해 그 사랑을 영원히 지속하고자 한다. 이러한 시적 탐구는 김정희 시인의 시가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 영혼의 탐색이자, 초월적 의미를 향한 진지한 열망을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