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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Nov 21. 2024

어느 예술가의 방백

김왕식






                  어느 예술가의 방백





"나는 예술가다."

이 짧은 말이 내 존재의 무게를 대신할 수 있을까.
어딘가에서 이 말을 토로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종종 뻔하다.
“아, 쉬고 있구나.”
혹은 “놀고 있구나.”
그들의 입가엔 미소가 떠오르고, 그 미소에는 의심 아닌 확신이 묻어난다.

 그들은 생각한다.
 예술은 노동이 아니라고, 예술은 단지 한가로운 자들의 취미라고. 그렇다면 나는 물어야 한다. 쉰다는 것, 논다는 것은 무엇인가. 살아간다는 것과 과연 얼마나 다른가.

나는 혼을 담아 작업한다.
물감이 마르는 시간, 한 붓 한 붓 새겨지는 화폭 속에는 내 살과 피가 녹아들어 있다. 내 예술은 내가 걸어온 길이요, 내가 지키고 싶은 가치의 반영이다.

허나
세상은 그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누군가의 눈에 내 작업은 아무 의미 없는 낙서로 보일지도 모른다. 혹은 그저 화려한 장식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멈추지 않는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 안의 세계는 멈추지 않고 흐른다. 그것이 예술이다.

예술가는 늘 묻는다.
" 살아 숨 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단지 먹고 자고 숨 쉬는 것으로 충분할까. 존재의 가치란 어디서 오는가. 남들이 알아주는 삶, 타인의 박수와 인정을 받는 삶이 과연 온전한 삶일까. 예술가는 그 답을 찾기 위해 무수한 시간을 고독 속에서 보낸다. 홀로 머리를 싸매며, 홀로 길을 걸으며, 홀로 자기 자신과 싸운다. 이 과정에서 그는 종종 무시받고, 오해받고, 때로는 외면당한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더욱 순수하게 정제해 가는 것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는 내 세계를 열어간다. 내 세계는 남들의 세계와 섞이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이 없다 해도, 내 눈은 언제나 내 작업을 바라본다. 누군가가 나의 작품을 좋아해 주길 바라는 마음은 있지만, 그것이 나의 예술의 전부일 수는 없다. 나는 그저 내 세계를 더 깊고 넓게 만들어갈 뿐이다. 때로는 혼란스럽고, 때로는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감정 역시 내 작업의 일부가 된다. 예술은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불완전한 존재가 완전한 표현을 향해 걸어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쉼 없이 살아간다. 쉬는 것은 단순히 몸을 멈추는 것이 아니다. 논다는 것은 단순히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예술가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표현하며, 내 안의 세계를 향해 손을 뻗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매일 새롭게 태어난다. 어제보다 조금 더 진솔한 나로, 어제보다 조금 더 치열한 나로. 예술가는 결코 놀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그의 손은, 그의 영혼은 늘 움직이고 있다.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예술가는 타인을 위해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위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창작한다. 그것이 그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렇기에 그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나온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 목소리를 세상에 내보낸다. 그것이 외로울지라도, 그는 멈추지 않는다.

살아 숨 쉰다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누구도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나를 알아간다. 나는 나의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예술은 단지 작품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며, 존재의 증명이다. 나는 나의 길을 걷는다. 남들이 놀고 있다고 말할지라도, 남들이 쉬고 있다고 생각할지라도, 나는 나만의 언어로 쉼 없는 삶을 써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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