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청람 김왕식 시인의 '바람의 노래'
ㅡ외국에 발표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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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
김왕식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멀리 간다
바람은 그 증거였다
형체 없이 세상을 돌며
꽃잎을 흔들고 눈물을 말렸다
그 이름조차 남기지 않았다
바람은 지나가며 흔적이 되었다
그 흔적 속에 향기가 남았다
사람은 그 노래를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들었다
고요 속에도 바람은 있었다
보이지 않음으로
세상을 잇는 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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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 총평 ― 보이지 않는 사랑의 윤리와 ‘숨의 미학’
문학평론가 김준현
청람 김왕식 시인의 「바람의 노래」는 단순한 자연 서정시가 아니라, 보이지 않음이 어떻게 세상을 잇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에 대한 깊은 응답이다. 이 작품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번역으로도 소개되었는데, 언어권이 달라져도 독자들에게 울림을 남긴 이유는 바람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과 삶의 근원적 정서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의 첫 행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멀리 간다”는 이 작품의 핵심 사유이자 시인의 문학적 태도 전체를 압축한 선언이다. 눈에 보이는 성취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기억·사랑·온기가 인간을 끝까지 붙잡는다는 이 진술은 곧 김왕식 문학의 기초이기도 하다. 시인은 작품을 통해 존재의 지속성을 외형과 소유가 아닌 무형의 마음에서 찾는다. 바람은 그 상징으로 선택되었다.
둘째 연에서 바람은 “꽃잎을 흔들고 눈물을 말렸다 / 그 이름조차 남기지 않았다”라는 구절을 통해 은밀한 위로자, 비가시적 치유의 존재로 등장한다. 다가가고, 어루만지고, 돕고, 지나가지만,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삶의 태도—선(善)을 행하되 소음을 남기지 않는 윤리—는 작가가 일관되게 지켜온 인간관과 연결된다. 그는 화려한 자기 과시보다 묵묵한 헌신을 더 고귀한 가치로 바라본다. 그 철학이 바람이라는 이미지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셋째 연에서 “사람은 그 노래를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들었다”라는 문장은 감각의 전환을 넘어 예술 인식론에 관한 선언이다. 듣는다는 행위는 청각으로 이뤄지지만, 감동은 마음에서 일어난다. 결국 진짜 울림은 지각이 아니라 감수성의 깊이에서 발생한다는 시인의 미학적 관점을 제시한다. 이 대목은 특히 시·수필·평론·소설을 넘나들며 활동해 온 작가의 정체성과도 맞닿는다. 그는 장르가 바뀌어도 본질적으로는 인간의 마음에 닿는 언어를 지향한다.
마지막 연 “보이지 않음으로 / 세상을 잇는 숨이었다”는 이 시가 도달한 최종 결론이다. 바람은 결국 숨으로 귀결된다. 숨은 생명을 지탱하는 가장 조용한 실체이며, 존재하되 드러나지 않는다. 김왕식 시인이 작가로서 살아온 궤적—시보다 평론가로 먼저 널리 알려지고, 외부의 명광보다 문학적 신념을 지켜온 과정—역시 외형의 화려함보다 보이지 않는 본질을 지키는 자세와 맞물린다.
실제로 그는 시·수필·평론·소설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창작하지만, 어느 한 장르에 정체를 고정시키려 하지 않는다. 이는 “언어로 직업을 나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고 다가가는 방향이 중요한 것”이라는 그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문단에서 평론가로 먼저 알려졌음에도 시를 포기하지 않았고, ‘분야 구분’의 테두리보다 표현해야 할 인간의 진실을 우선시해 왔다. 「바람의 노래」는 그가 추구해 온 문학적 정체성을 가장 투명하게 드러낸 작품이라 할 만하다.
이 시는 바람을 보고 듣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에 대한 은유이다. 누군가의 삶을 흔들고 위로하고 지지하면서도, 이름을 남기려 하지 않는 바람의 윤리는 곧 시인의 삶의 태도이자 문학의 방향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곳까지 닿는 것은 힘·과시·속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선의 마음, 조용한 숨결 같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시는 잊히지 않는 울림으로 남긴다.
이 작품은 독자에게 말하지 않고 머물러 주거나 스쳐 지나가는 방식으로 감동을 남긴다. 그리고 오래 지나서야 깨닫게 한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서 향기가 남는 것처럼, 사람도 누군가의 마음 안에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진실을.
청람 김왕식의 시는 오늘도 화려함보다 고요함을 선택하고, 외면보다 내면을 붙들고, 흔적의 소유가 아니라 숨의 공유로 세상을 잇고 있다.
그래서 그의 바람은 소리가 없지만, 멀리 간다.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남는다.
ㅡ 김준현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