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털모자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엄마의 털모자





여름에도 털모자를 쓴 엄마가 있다.
햇빛이 가장 잔인한 계절에, 엄마는 가장 두꺼운 계절을 머리에 얹는다.

여섯 살 달수는 그 이유를 묻지 않는다. 아이는 다만 엄마의 모자를 쓰담는다. 까슬한 털 사이로 체온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좋다. 손끝에 닿는 것은 모자이지만, 아이가 만지는 것은 엄마다.

엄마는 말이 없다.
말 대신 하늘을 본다. 눈물은 위로 흘러가 삼켜진다. 울음은 소리가 되지 못하고 가슴에서 접힌다. 남편은 공사장에서 실족사했다. ‘사고’라는 두 글자는 너무 가볍고, ‘사망’이라는 단어는 너무 차갑다.

그날 이후 엄마의 시간은 갑자기 얇아졌다.
하루가 아니라, 한숨 단위로 흘러간다.
달수를 품에 안은 채 엄마는 유방암 4기 말기라는 문장을 들었다. 수십 차례 항암 치료가 머리카락을 먼저 데려갔다. 머리는 빠졌지만, 엄마는 무너지지 않았다. 머리 대신 마음을 단단히 묶었다. 모자는 그 매듭이다. 부서지지 않기 위해 덮는 보호막이다.

유치원 소풍 가는 날,
엄마는 긴 가발을 쓴다. 입술에 빨간 립스틱을 바른다. 거울 앞에서 오래 서지 않는다. 오래 서면 흔들리기 때문이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다. 달수는 마냥 좋다. 엄마가 웃고, 엄마가 걷고, 엄마가 자기 옆에 있다는 사실 하나면 세상은 충분하다. 아이에게 행복은 설명이 아니라 동행이다.

통증이 온다.
파도처럼 밀려와 이를 악물게 한다. 엄마는 멈추지 않는다. 멈추면 아이가 손을 놓칠까 봐,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하늘을 본다. 기도는 소리보다 자세다. 버티는 몸이 곧 기도다.

“나 오래 살고 싶어요.”
이 기도에는 욕심이 없다.

“달수 홀로 세상에 남길 수 없으니.”
이 기도에는 자신이 없다.

“달수가 홀로 살 수 있을 때까지만 살게 해 주세요.”
이 기도에는 사랑만 있다.

엄마는 자신의 생을 계산하지 않는다. 아이의 자립을 기준으로 시간을 나눈다. 하루를 더 살면 아이의 하루가 한 겹 두꺼워진다고 믿는다. 오늘을 견디면 달수의 내일이 한 칸 넓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엄마는 오늘을 산다. 오늘만큼은 꼭 산다.

달수는 모자를 쓰담는다.
아이의 손길은 질문이 없다. 그 무심한 애정 앞에서 엄마의 눈물은 다시 삼켜진다.
여름의 햇빛 아래서, 털모자는 가장 따뜻한 진실이 된다. 사랑은 때로 머리카락보다 먼저 빠져야 할 것을 대신 덮어준다. 그리고 그 덮임 속에서, 아이는 엄마를 기억할 방법을 배운다.
곁에 있었던 체온, 손을 놓지 않았던 걸음,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하루.
그것이면 충분하다.

ㅡ청람


작가의 이전글얼어붙은 새해를 미는 사람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