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ㅡ류시화 시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어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어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시인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류시화의 시는 늘 “말의 성냥”을 켜기보다, 침묵의 온도를 먼저 건네는 방식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역시 그러하다. 이 시의 핵심은 사랑의 과장이나 감정의 폭발이 아니다. 외려 사랑의 가장 조용한 모순, 곁에 있음에도 비어 있는 그리움의 결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그리움은 부재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존재를 더 깊게 바라보려는 마음의 방식이라는 사실을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절제된 언어로 증명한다.


첫 연의 진술은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문장은 세계를 구성하는 층위를 말한다. 사물은 언제나 자기 자신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그 안에 다른 결을 품는다. 물 속에는 흐름이 있고, 기억이 있고, 비친 얼굴이 있다. 하늘에는 공기만이 아니라 빛의 사상(思想), 지나간 기도의 잔향이 있다. 류시화가 오래 붙들어 온 삶의 철학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그는 세계를 하나의 단단한 대상이 아니라 겹겹이 겹친 의미의 장으로 본다.

하여, 그의 시는 설명을 늘리기보다, 독자의 마음속에서 저절로 “다른 층”이 열리게 만든다.


이어지는 “그리고 내 안에는 /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에서 시는 사랑의 문제를 곧바로 존재론으로 옮긴다. 이 한 줄이 이 시의 품격을 결정한다. 인간의 내면은 자아라는 단일한 주체로 구성되지 않는다. 내 안에는 타인의 목소리가 들어와 살고, 지나간 시간의 그림자가 들어와 눕고, 사랑이라는 낯선 손길이 들어와 마음을 흔든다. 그러므로 ‘그리움’은 누군가를 향한 감정이라기보다, 내 안에서 계속 태어나는 타자성의 움직임이다.


류시화는 사랑을 심리의 영역에만 가두지 않는다. 사랑은 내 안에 살면서 내 안을 다시 낯설게 만드는 사건이다.

중심부에 놓인 호명, “내 안에 있는 이여 /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는 류시화 특유의 영적 미의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는 사랑을 소유나 관계의 성과로 말하지 않는다. 사랑은 나를 안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를 흔들어 깨우는 힘이다. 흔들림은 불안이면서 동시에 생명의 징후다. 살아 있는 것만이 떨린다. 이 떨림 속에서 시인은 자기 내부를 더 깊이 응시한다.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라는 표현은 그 흔들림의 방식이 격렬한 파괴가 아니라, 조용한 침투와 흐름임을 보여준다.


류시화의 사랑은 폭풍이 아니라, 오래 스며드는 비다.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에서 그리움은 더 이상 결핍의 감정이 아니다. 그리움은 꿈을 깨우는 열쇠다. 여기서 꿈은 욕망의 환상이 아니라, 존재의 가장 내밀한 소원이다. 타인을 향한 마음이 결국은 내 존재의 가장 깊은 자리와 만나게 한다는 것, 이것이 류시화의 가치철학이다. 그는 늘 삶의 본질을 바깥에서 찾지 않고, 사랑을 통과해 안쪽으로 더 들어가는 길을 제시해 왔다. 그래서 그의 시는 “사랑 이야기”로 읽히는 동시에 “자기 성찰의 기도”로도 읽힌다.


마지막 행 “그대가 곁에 있어도 /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이 시가 가진 가장 슬프고도 고요한 진실이다. 곁에 있다는 사실은 거리의 종결이 아니다. 인간은 서로 가까이 있어도 끝내 완전히 닿지 못한다.

그러나 류시화는 그 불가능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 틈이 있기에 사랑은 멈추지 않고, 그리움이 있기에 존재는 깊어진다.

즉, 이 문장은 관계의 실패가 아니라 관계의 성숙이다. 그리움은 사랑이 남아 있다는 증거이며, 사랑이 아직 살아 숨 쉰다는 표시다. 가까움의 완성이 아니라, 가까움 속의 무한을 받아들이는 태도, 그것이 이 시가 말하는 사랑의 품격이다.


이 작품은 “그대”라는 한 사람을 향한 노래이면서 동시에, 인간 안에 존재하는 깊은 타자를 향한 고백이다. 류시화는 삶을 빠르게 소모하지 않는다. 그는 사랑을 소비하지도 않는다. 그는 사랑을 통해 자신을 더 깊게 듣고, 세계를 더 조용히 바라보며, 그리움이라는 오래된 감정을 존재의 언어로 정련한다.

해서, 이 시는 짧지만 쉽게 닳지 않는다. 독자의 마음속에서 오래 남아, 곁에 있는 사람을 다시 그립게 만들고, 내 안의 나를 다시 낯설게 만든다. 그 낯섦이야말로, 사랑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가장 아름다운 증거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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