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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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우물
울지 않는 날이 있다
그날의 눈은
마른 우물처럼 깊다
말라 있음은
없음이 아니다
안쪽으로 더 깊어지는 일이다
나는 웃으며 걸어가지만
발밑에서는
작은 물소리가 따라온다
사람들은 모른다
젖지 않은 얼굴이
가장 많이 젖어 있다는 것을
낮은 햇빛이
골목의 끝까지 비치고
나는 그 끝에서
내 그림자를 다시 만난다
그림자는
나보다 먼저 도착해
내가 올 자리를 비운다
마른 우물은
물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물을 잊지 않는다
내가 잊지 못한 것들이
우물의 바닥처럼 남아
하루를 받친다
나는 내려다보지 않는다
대신 오늘을
조용히 끌어올린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