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코로나의 유행이 끝난 줄 알았는데, 그 끝은 없나 봅니다. 결국 돌고 돌아, 재유행이 재유행이 되고, 또 재유행이 되어야 끝나나 봅니다. 우리를 2년 넘게 괴롭혔던 코로나는 이제 사그라 들어, 격리기간도 짧아지고 마스크 의무도 해제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코로나 환자들을 대면하고, 팍스로비드를 내보냅니다. 어제도 코로나 환자가 20명이 넘게 다녀갔습니다.
내가 있는 약국은 대학병원 근처도 아니고, 마트 옆에 있는 작은 약국입니다. 마트 위에는 내과와 정형외과, 치과가 있고, 마트에 장을 보러 오는 분들이 한 번씩 들리는, 그런 작은 동네의 약국입니다. 우리 약국에는 많은 사람들이 옵니다만,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 근처도 아니고, 근처에 큰 병원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새로운 유동인구보다는 주로 동네 단골 분들이 자주 찾아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일하는 저도, 몇몇 분을 알아볼 정도니까요.
이렇게 동네에 있는 약국이, 많은 분들이 ‘약국’, 그리고 ‘약사’ 하면 가장 처음 떠오르는 이미지일 것입니다. 작은 약국 안에서 하얀 가운을 입고 코로나 키트나 마스크를 파는 사람들. 최근에는 그렇게 약사를 모두들 접하셨을 거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약사는 ‘약국’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약사는 병원에도 있고, 회사에도 있고, 공장에도 있고, 변호사사무실에도 있고, 학교에도 있습니다.
사실 그 외에도 굉장히 많은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위에 말씀드린 몇 가지는 정말 대표적인 장소들이니까요.
병원에서 약사는 주로 조제실에 있을 수 있지만, 그 외에도 어린이병동, 암센터, 입원실, 원내약국 등 다양한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입원하신 환자분들의 약을 챙기는 것도, 응급실에서 사용되는 주사제와 링거팩을 챙기는 것도, 암센터에서 항암제를 조제하는 것도 모두 병원약사의 업무니까요. 병원은 입원환자들, 그리고 응급실이 있기 때문에 24시간 돌아가야 합니다. 흔히 말하는 3교대까지는 아니지만, 야간에도 약사는 늘 상주해야 합니다. 병원에서 약사로 지내는 것은, 정말 혹독합니다. 병원 간호사들의 ‘태움’ 문화나 ‘3교대’와 관련한 고된 업무는 많이 알려졌지만, 아직 약사의 하루는, 밝혀지지 않은 만큼 더욱 처참합니다. 간호사보다 더 적은 인원으로, 지하 조제실의 공간에서는 정말 총알 없는 전쟁이 매일 지속됩니다. 사람을 갈아 넣어 사람을 살리는 곳을 병원이라고 할 정도니까요.
약사는 회사에도 있습니다. 제약회사에서도 다양한 직무를 할 수 있습니다. 제약회사에서는 주로 임상업무나 허가업무에 약사 면허 소지자를 우대로 하고 있고, 그만큼 다른 분야보다는 해당 분야에서 더 많은 약사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저런 업무만 하는 건 아니지만요. 임상의 경우에는 임상시험 전반을 관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늘 새로운 약이 나오기 전에, 그것이 안전한지, 그리고 효과가 있는지를 미리 테스트하죠. 그런 테스트를 임상시험이라고 하며, 임상시험 전반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합니다. 몇 명의 대상자가, 어느 병원에서, 어떤 스케줄로 약을 투약받는지 확인하고, 부작용은 없는지, 효과는 어떤지 등을 분석하죠. 허가업무의 경우에는 임상시험을 시작하거나, 혹은 임상시험이 끝나서 약을 식약처나 FDA 같은 규제기관에 허가를 받을 때 하는 업무를 의미합니다. 규제기관에 수많은 허가관련한 자료를 내고, 이 약이 실제로 팔릴 수 있도록,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죠. 그 누구보다 식약처나 FDA의 규제 그리고 법령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제약회사에서 임상, 허가 업무도 아닌 ‘약물감시’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임상시험에서 사용되는 약이나, 현재 회사에서 팔고 있는 약에 대한 부작용을 모니터링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이번 코로나 백신과 관련해서 많은 부작용들이 발생했었죠. 그런 부작용에 대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의학적인 판단을 통해 인과관계를 구분하고, 이를 식약처에 보고하는 역할입니다. 이 업무를 통해서 임상시험에서 사용되는 약이나, 심지어 임상시험을 통과했지만, 시판 후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부작용들에 대해서 제가 지켜보고 있고, 약이 안전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이외에도 제약회사의 공장에는 관리약사가 필수적입니다.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약들의 품질을 확인하고, 관리하는 약사는 꼭 필요로 합니다. 다른 신발이나 가방공장처럼 약은 그저 찍어내듯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여러 시험을 진행해, 약 한 알 한 알에 대해 품질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약사는 변호사 사무실에도 있습니다. 변호사, 또는 변리사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데, 이는 의료분쟁이나 의약품 관련된 허가 및 특허에 약에 대한 전문가가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의약품 관련 허가, 특허는 다른 신규발명품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이 나오면 주로 5~10년간 독점판매기간을 주기도 하고, 그 허가 기간이 끝나면 이와 ‘유사한’ 약을 만들 수 있게도 하고 하는 등, 굉장히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는 약학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의대, 치대 등 타 의료 분야의 대학교를 가는 약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길을 개척하는 이유는, 모두가 같은 일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겠죠? 각자가 가진 특성과 성향, 관심사가 다르기에 같은 약사라 하더라도 수많은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곁에 있는 동네약국의 약사님들은 아마도 사람을 좋아하고, 친절을 베풀 줄 알고, 그 누구보다 환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소통하고 싶어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팍스로비드가 더 이상 나가지 않는 날을 기다리며, 이만 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