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2 DAY1
눈을 뜨니 아침 7시. 평소 같다면 출근준비를 할 시간이지만, 이 날만은 달랐다. 아침에 샤워를 하는 것도, 화장을 하고 머리를 빗는 일상은 동일했지만, 나의 목적지는 회사가 아니라 공항이었기 때문이다. 아침 8시 즈음 집을 나서서 도심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잡았다. 도심공항 타워는 출근을 하는 직장인들로 북적였고, 나는 그들을 가로질러 공항버스 매표소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만큼은 이동시간이 긴 것을 감안하여 편한 트레이닝복 바지를 입었는데, 너무 눈에 띄나 조심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에이 뭐, 나만 편하면 됐지’라는 생각이 들어, 남들 눈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 제1국제공항에 내려 출국수속과 짐 검사를 모두 마치니 어느새 오전 10시 30분. 출국까지 1시간 반가량이 남아 있었다. 살 건 없지만 구경이나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면세점을 이곳저곳 살펴보다 마땅히 건진 거 없이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에서는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간단하게라도 식사를 해야 했다. 12시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도착하면 3시. 이후 삿포로 숙소까지 가면 대략 4시 반이 될 터였다. 그때까지 배를 곯은 수는 없었다.
다행히 들어간 카페는 굉장히 많은 베이커리를 판매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갓 구운 빵 냄새가 내 후각을 자극했고, 토마토, 크림치즈, 바질 등 빵 속 여러 속재료들을 보며 뭘 먹어야 할지 행복한 고민이 시작될 터였다. 다행히 마음을 부여잡고, 가장 기본적인 바질 베이글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나 주문했다. 데운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얹어 찬찬히 먹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신혼여행을 가는 커플이 각자 부모님에게 전화를 하는 것도 보였고, 단체로 출장을 가는 직장인들도 보였다. 모두 어떠한 이유 때문에 이곳에 모였을까, 각자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하는 생각들이 자연스레 피어올랐다. 어머니에게 잠시 주말 동안 여행을 다녀온다고 전화를 하고, 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게이트로 내려갔다.
비행기에서는 정말 잠만 잤다. 애매한 12시 비행기라서 잠을 잘 수 있을까, 걱정이 무색해질 만큼 나는 비행기 좌석에 내 온몸을 맡긴 채 잠에 빠져들었고, 비행기가 일본 신치토세(New-Chitose) 공항에 내렸을 때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이후 삿포로 시내에 숙소까지 가는 공항버스를 탔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현금을 그렇게 많이 사용한다는데, 그걸 처음 체감한 순간이었다. 버스표를 구매할 때 현금만 사용할 수 있었고, 버스에서 내릴 때 기사님에게 직접 종이표를 전달하는 아날로그 방식이었다. 버스나 차량의 문은 자동으로 열리면서, 이런 데에서는 아직도 아날로그 한 사회를 가졌다는 게 귀엽게 느껴졌다.
버스를 타고 삿포로 시내로 이동을 하는 와중에도, 일본의 가정집들과 자동차들의 미니 한 사이즈에 귀여움을 느꼈다. 어쩌면 일본인들의 왠지 모를 귀여움은 아기자기한 환경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숙소에 도착해서는 간단하게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 메뉴에 대해 한참 고민하다, ‘야끼니꾸’ 즉, 일본의 꼬치요리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다찌석으로만 되어 있는 선술집에 두 명이 들어가니 선뜻 룸자리를 내어 주셨고, 일본맥주와 닭고기 꼬치를 여러 종류 주문했다. 닭고기 꼬치들은 모두 양념간이 세고, 굉장히 짰다. 아무래도 맥주 한잔과 술안주로 먹는 용도라 그런 것 같았다. 이런 소소한 선술집에서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맥주 한잔과 꼬치를 먹으면서 주인장과 대화하고, 옆자리 사람과 함께 푸념하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모두의 고단한 하루 끝에는 이런 소소한 행복이 있구나를 느낀 순간이었다.
꼬치로 가볍게 배만 채운 후, 타코야끼와 맥주를 더 사서 숙소로 다시 들어갔다. 숙소에서 창문 너머로 보이는 TV타워와 야경을 바라보며 편안하게 야식을 먹으며 첫날이 그렇게 마무리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