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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저 Nov 15. 2023

모범생이 아니야

내가 다닌 학교는 국제학교 중에서도 IB, International Baccalaureate이라는 교육과정을 가진 학교였다. IB는 스위스에서 시작된 교육과정인데, 초/중/고 12년을 모두 같은 국제학교에서 이 IB라는 교육과정 아래에서 교육을 받았다. 스위스에서 시작된 교육과정인만큼, 전 세계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이 교육과정을 거쳤고, 북한의 김정은도 학창 시절 IB 커리큘럼을 통해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오늘은 IB 교육과정 자체보다는, 그 뒷이야기들에 대해 공개해보려고 한다.


우선, IB는 흔히 초등학교의 PYP, 중학교의 MYP, 그리고 고등학교의 IB Diploma 단계로 나뉘어 있다. 그렇지만 이 세 단계를 모두 수용하는 학교는 많지 않고, 주로 보통 고등학교 2년 동안의 IB Diploma만 제공되는 학교들이 더 많다. 이 2년의 IB Diploma는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2학년, 3학년 과정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하고도 힘든 시기가 된다.


IB에서는 총 6개의 과목이 있다. 언어 1, 언어 2, 과학, 사회과학, 수학, 그리고 예체능이다. 이 큰 분류 안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수업을 자유롭게 선택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학에서는 물리를, 사회과학에서는 경제학을 선택한다면, 그 학생은 2년 동안 물리와 경제학에만 집중하여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그 외 과학과목인 생물학이나 화학은 수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언어 1과 언어 2는 보통 영어와 제2외국어를 선택하게끔 되어 있으며, 예체능의 경우 과학이나 사회과학으로 대체할 수 있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 선택은 이러하였다.


언어 1: 영어, 언어 2: 한국어, 과학: 화학, 사회과학: 경제학, 수학, 예체능: 생물학으로 대체.


이렇게 과목을 고르고 나면, 그다음에는 난이도를 설정한다. 고급반인 HL, High Level, 그리고 보통반인 SL, Standard Level로 크게 나뉜다. 세부 level들도 존재하나, 가장 큰 두 난이도는 HL과 SL이다. 과목이 총 6개니, 3과목은 HL로, 3과목은 SL로 들어야 한다. (참고로 나는 HL을 4개 들었다). 이 중, 가장 악명 높은 과목은 수학 HL이다. 수학 HL은 선택한다고 들을 수 있는 과목이 아니었다. 학교 선생님들이 고등학교 시절 수학 성적을 보고 평가를 거친 후에야 수학 HL을 수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이러한 이유는, 수학 HL이 너무나도 악명 높아, 그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배려하여 선공지를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10학년 (고등학교 1학년)들은 내년과 내후년에 자신이 들을 수업을 정한다. 이후 학교에서 모든 학생의 선택지를 수합하여, 최적의 시간표를 짜주는 것이다. 그러나, 빈틈은 늘 생기기 마련이다. 수학같이 악명 높은 수업 이외에 모든 과목에서 SL반과 HL반은 우선 같이 수업을 듣게 된다. 그러다 HL반을 위한 심화과정이 나오면, 그때 SL 학생들에게는 공강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공강시간에 일삼은 소소한 일탈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대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고등학생들에게 공강은 정말 비어 있는 시간이다. 대학생 때야 공강이 워낙 흔하기에 친구도 만나고, 동아리방도 놀러 가지만, 고등학생 때의 공강은 순간적인 이벤트이기에 함께할 대상도, 할 수 있는 일도 제한적이다. 특히 공강이 가장 첫 교시나 가장 마지막 교시에 있을 때 더욱 그렇다.


첫 교시 전에는 조회와 출석체크를 하기에 일단 학교를 가긴 해야 한다. 그러나 10분간의 간단한 출석 이후에는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붕 떠버린다. 이때는 아직 지각생들을 위해 닫지 않은 후문으로 향한다. 자연스럽게 후문을 나가 5분만 걸으면 바로 카페 겸 식당이 나온다. 이 카페 겸 식당은 우리 집 바로 아래 1층에 있었는데, 아침 공강이 생기면 늘 친구들과 그곳에서 팬케이크와 브런치를 시켜 먹었다. 한가로이 앉아있으면 외국인 아줌마들이 무리를 지어 내려온다. 한 손에는 아예 식탁보를 들고 내려와 우리 옆에 앉아 포커판을 연다.


가장 마지막 교시가 공강인 경우에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대학생들의 경우 일찍 집에 가면 되지만, 우리는 학교 정문을 걸어 잠가, 일찍 집에 가지 못하게 한다. 이때는 운동장 쪽으로 나가 펜스를 뛰어넘어야 한다. 사실 뛰어넘는 다기보다는 아래에서 밀어주고 위에서 잡아주며 펜스를 타는 것이 더 옳은 말일 것이다. 펜스 건너편에는 친구들의 오토바이가 대기 중이다.


학창 시절 소소한 일탈은 이렇게 공강시간에 잠깐 학교 밖으로 나가 숨을 돌리는 것, 점심시간에 당시 한창 유행하던 버블티를 배달로 시켜 먹는 것, 공부하라고 학교에서 준 태블릿으로 수업시간에 게임을 하는 것… 모범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범생이는 아닌 나의 학창 시절은 그렇게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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