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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저 Nov 20. 2023

엄마는 도시락을 싸지 않아

타지 생활, 그것도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5시간이나 걸리는 이국에서의 생활은 그 누구에게도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야 언어의 장벽도 조기교육으로 인해 많이 무너지고, 한국의 문화가 전 세계 곳곳으로 전파되면서 한국인의 정체성과 동양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만큼 따갑지는 않다. 그러나 어느 곳에 가든, 여전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그 텅 빈 공허함만은 여전할 것이다.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 간다는 건 그런 것이다. 외로움과 싸울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 무려 30년도 전부터 해외 생활을 시작하셨다. 이민이라고 말하기에는 언제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나, 돌아갈 기회가 생길 때마다 꿋꿋이 해외에서 이룬 것들을 지켜내느라 돌아가지 않으셨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파견된 주재원으로, 이후에는 그곳에서 사업체를 차려 안정된 생활을 하셨다. 앞서 말했듯이, 지금은 해외생활이 이전보다는 많이 쉬워졌다. 해외 어디를 한국 마트를 찾아볼 수 있고,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으며, 한국인 혹은 동양인을 대하는 이방인들의 태도가 따뜻하다. 하물며 뜨문뜨문하게 영어로 대화를 할 수 도 있다.


그러나 30년 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하물며 영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동남아 땅에서는. 그들은 이방인을 대하는 태도가 마치 동물원의 동물도 아닌, 아예 환상 속의 동물을 보는 것처럼 대했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기에 대화가 되지 않았고, 그들이 쓰는 독한 향신료는 늘 우리 엄마를 고생시켰다. 식당 밖에서도 향신료 냄새를 맡고 구역질을 하는 이방인을, 그들은 좋게 볼 리 없었다. 당시에는 그 흔한 자동차도 몇 대 없어, 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길에서 알아봤다고 했다. ‘어 6XX1 저거 김실장네 차네, 어 3XX8 저건 이 회장이네’처럼, 자동차는 소떼와 함께 비포장도로를 질주했다.


그렇게 꾸역꾸역 낯선 생활에 익숙해진 지도 10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당시 한국은 다른 동남아시아 나라들보다 잘 사는 나라였다. 선진국의 사람이 후진국에서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부모님은 차별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욱이 아빠는 한 사업체의 사장이었으니 말이다. 우리 가족은 당시에 호텔에서 살았는데, 만나는 이방인이라고는 운전기사 아저씨와 청소, 빨래를 해주러 오는 호텔 직원들, 호텔 식당과 바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이 전부였다. 풍요로운 삶 속에서 언짢은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차별을 처음 겪은 것은 오히려 나였다.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이야기지만, 이 날 엄마는 정말 많이 울었다고 했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국제학교를 다녔는데, 입학 당시에는 ABC 노래만 간신히 외운 상태였다. 영어가 모국어인 학생들, 선생님들과는 아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입학 첫날, 어찌어찌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의 책가방 속에는 여러 가지 프린트물이 들어 있었다. 특이했던 것은, 아침에 싸준 도시락이 그대로 있었다는 거다. 엄마는 나에게 물었다고 했다. 도시락은 왜 안 먹었냐고. 나는 그때 아무렇지도 않게 무덤덤히 이야기했다.


“선생님이 반 친구들이랑 다 같이 줄을 서라고 해서 섰어. 그러고 나서 계단을 빙글빙글 내려가서 운동장으로 내려갔어. 거기서 애들은 밥을 먹었어. 나는 줄 서라고 해서 그냥 섰어. 밥은 교실에 있었어”

“그래서 밥을 안 먹었어?”

“응. 영훈이가 선생님한테 나 밥 없다고 했는데 선생님이 화냈어. 그래서 다시 반에 못 갔어”


입학 첫날, 나는 그렇게 점심을 먹지 못했다. 엄마가 아침부터 싸 준 도시락은 책가방 안에서 식어가고 있었고, 엄마는 그다음 날부터 도시락을 싸지 않았다. 학교에서 주는 급식을 신청한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아이가 배는 곪지 않겠지, 선생님한테 혼나지 않겠지. 우리 아이가 영어를 잘했어도 그런 대우를 받았을까? 그래도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생각이 끊이질 않는 밤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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