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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저 May 17. 2024

식민지 이민자 생활

이제는 잊힌 과거, 또는 역사에는 ‘식민지’가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 일제강점기는 절대 잊히지 않은 역사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나라의 식민지 역사에 대해서는 무지한 경우가 많다. 떠올리려 해 봐야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지, 정도만 기억해 내곤 한다.


베트남도 사실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해가 지지 않는 땅, 영국 이외에도 당시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아프리카를 포함해 동남아시아를 식민지 삼았다. 베트남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은 베트남도 프랑스의 식민지 생활을 청산했지만, 프랑스의 문화는 베트남 곳곳에 남아있다. 가장 대표적인 잔재는 거주지에 있다.


베트남은 모든 아파트들에 ‘로비’가 있다. 호텔로비처럼 아파트에도 1층에 상주하는 직원들이 있고, 벨보이와 같은 짐꾼들이 있으며, 약속시간을 기다리며 앉아서 쉴 수 있는 소파와 공간이 있는 것이다. 아직 베트남의 아파트들은 구축이 많아, 비밀번호를 키패드에 치는 것이 아닌, 열쇠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더욱 그렇다. 아파트 로비에 열쇠키를 맡기기도 하고, 택시를 불러달라고 요청하기도 하고, 해외여행을 다녀와 새벽에 귀가할 때 짐을 들어주기도 하는 용으로 로비를 사용한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이런 로비 없이, 그저 엘리베이터만 있는 좁은 공간과 맞닥뜨렸을 때 ‘혹시 우리 집 망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또, 호칭이 다르다. 남성들에게는 monsieur, 여성들에게는 madam이라는 호칭이 일상적이다. 백화점이나 아파트에서는 모두 엄마를 마담이라고 불렀었는데, 그 호칭이 한국에서는 이상하다는 걸 영화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 외에도 베트남의 로컬 학교들은 제2외국어로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를 가르친다. 그렇기 때문에 베트남에는 프랑스 학교도 굉장히 많았다. 국제학교에서 영어로 수업을 하듯이, 프랑스학교에서는 프랑스어만 사용했고, 유학도 프랑스로 가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프랑스 병원도 성행했다. 프랑스 병원은 병원비가 정말 비쌌다. 만약 감기에 걸려서 프랑스 병원에 간다면, 병원비 청구서는 30만 원을 넘을 것이다. 미국과 비슷하게, 프랑스의 의료 시스템은 굉장히 비싸고, 내가 쓴 휴지 하나, 소독약 하나에 모두 비용이 청구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병원을 가는 경우는 있었다. 상태가 매우 심각할 때.


보통의 한인들은 가벼운 감기나 응급상황에서는 한국 병원을 갔다. 사실 한국 병원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게, 베트남 병원에서 한국인 의사가 진료를 하는 것이었다. KOICA와 같은 단체에서 파견 나온 의사 선생님들이 한 분씩은 늘 상주해 계셨기에, 다행히 큰 불편함이나 어려움 없이 진료를 볼 수는 있었다. 다만, 의료 시스템이나 장비 자체가 많이 낡았다 보니, 심각한 지병인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프랑스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나 또한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배운 적이 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는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했지만, 초등학교 때는 제2외국어로 베트남어와 프랑스어 수업만 개설이 되어 있었다. 그때 잠깐 배운 프랑스어는 아직까지도 유용하게 써먹고 있다. 나름 프랑스 영화를 볼 때 자막이 필요 없어, 자막이 제공되지 않는 고전 영화들도 즐겨볼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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