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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윤희 Mar 31. 2024

교포 교사가 버려야 할 것

둘. 일 중독

 육아휴직을 하기 전 저는 지독한 일 중독이었습니다. 뭔가 일이 없으면 불안하고 걱정이 되며 여유가 있는 날이면 마음 편하게 쉬지를 못했습니다. 그다음 일이 무엇인지 찾아내려 하고 앞으로 많이 남겨진 일도 미리 당겨서 해 놓아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렇다고 불안하거나 초조하지는 않았습니다. 학기 초 수많은 일이 쌓여 있을 때 오히려 즐거운 마음이 들었답니다.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기쁨, 일을 처리해 나가며 마무리하는 희열을 느낄 때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따라오는 남들의 칭찬은 저를 춤추게 했습니다.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고 내가 무언가를 해 내었다는 성취감에 또 일을 찾아 나서곤 했습니다. 


  교사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 담임 업무를 하는 것 외에 한 가지씩 학교 운영에 관계된 일을 맡게 됩니다. 그것을 우리는 담당업무라고 표현합니다. 교사의 주된 업무는 수업이고 아동 지도이지만 이렇게 수업과 관련 없는 일들을 하나씩은 맡고 있습니다. 지금 일하는 학교에 전입해 오던 해, 저는 업무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기존에 계시던 선생님들이 하던 일 외에 남은 일 중 선택을 해야 했는데 그나마 제가 해 볼 수 있는 일이 정보 쪽 일이었습니다. 컴퓨터 켜고 끄기 밖에 못하던 제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일단은 뭐라도 해야 하니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정보 담당 업무를 받았으나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교실에서 컴퓨터, 전자칠판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전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일단은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그 교실로 달려갑니다. 전원에 불이 안 들어온다, 컴퓨터가 꺼진다 등등 여러 민원이 접수됩니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 저는 일단, 전자기계가 이상이 생기면 제일 먼저 전원을 꼈다가 켜보라는 남편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전원을 껐다 켜 봅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하면 다시 켜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되지 않는다면 기기에 연결된 모든 전기선을 확인합니다. 간혹 헐렁하거나 전선이 반쯤 빠진 경우 다시 기계는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정말 별 것도 아닌 경우에 기기가 제 기능을 찾으면 저를 불렀던 선생님들은 박수를 치며 기뻐합니다. 그리고 감사하다고 하지요. 겉으로는 별거 아니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제가 뭔가 도움이 된 것 같아 뿌듯한 맘이 듭니다. 문제는 블루 스크린이 뜨는 날인데, 이런 날은 어김없이 학교로 오는 컴퓨터 관리 사장님께 전화를 합니다. 그러면 또 출동하셔서 해결해 주십니다. 이러다 보니 생각보다 이 업무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이 다 쉬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교육청에서는 학생들에게 1인 1 스마트 기기를 배부합니다. 처음 기기를 배부하는 해에는 정말 저도 힘들었습니다. 기기 인증작업부터 등록까지 하루는 몇 번을 해도 해결되지 않는 오류로 인해 집에까지 노트북 몇십대를 싸들고 와서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밤새 사투를 벌였는데 다음 날 전체적인 시스템 오류였다며 쉽게 해결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의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스마트 기기와의 전쟁은 몇 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매년 변하는 인증과정과 등록과정이 매번 새롭게 저의 뇌에 업데이트되지만 그래도 하나씩 해결해 나갈 때 드는 기쁨이 과거의 스트레스를 잊게 합니다. 네, 저는 일 중독이 맞습니다. 


 이렇게 일에 쫓기며 사는데도 저는 왜 더 많은 일이 하고 싶을까요? 다른 분들이 하는 일들을 보며 내가 해도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내가 받아야 할 일을 늦게 해 주면 그냥 제가 받아와서 하고 맙니다. 이게 그 상대를 도와주는 일이 아닌데도 답답함에 기다리지 못하는 제 성격 때문이겠지요. 뭐든 시켜만 주면 잘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늘 굴뚝같은데 이제는 제 연차에, 제 나이에 더 이상 많은 일을 주지 않습니다. 많은 일을 하고 싶다는 것 역시 제 욕심이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하지 않아도 그 일을 필요로 하는 목적으로 하는 후배들이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까요. 그들이 해야 그들의 목표에 도달하는 점수가 되는 일들이니까요. 교포 교사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니까요. 


 가끔은 그게 섭섭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후배 교사들을 위해 내놓을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 중독에서 나를 내려놓을 때도 되었습니다. 세월이 변해서 젊은 후배들은 훨씬 능력이 뛰어나고 우수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세대는 새로운 세대를 위해 물러나 주어야 할 때를 알아야 합니다. 조금씩 마음에서 몸에서 일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왔구나 싶습니다. 내가 맡은 업무에 충실하고 더 일하고 싶은 다른 욕심은 교실 아이들에게 돌려서 내 것을 더 충실하게 쌓아야겠구나 싶습니다. 해 보았던 일이라 알고 있는 일이라 어쩌면 소홀할 수 있는 우리 반 아이들 지도에 더 집중하라고 공공의 일에서는 멀어지나 봅니다. 조금은 마음을 내려놓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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