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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윤희 Jun 28. 2024

교포 교사가 버려야 할 것

여덟. 자식사랑

 자식을 셋 낳고 키우면서 결심한 것이 있습니다. 절대 나의 승진 포기는 자식 때문은 아니라는 전제입니다. 아이를 키운다고 5년 육아휴직을 하면서 경력의 일부분을 잃었고 그 후에도 가정을 위해 나를 잠시 접어두기로 했습니다. 일을 하고 돌아와서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공부를 살펴봐주고 엄마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은 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휴직 후 몇 년이 지나다 보니 이제 아이들도 자라고 시간적 여유가 조금은 생겼습니다. 이제야 무언가를 시작해 보려고 하니 나이가 앞을 막아 시작도 끝도 낼 수 없는 어중간한 시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할 일은 내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뿐이구나 생각하며 현실에 안주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아이가 중3, 사춘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사춘기 남자아이 치고는 엄마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어깨동무하며 걸어가 줄 만큼 격동의 시기는 아직 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나마 사이좋은 우리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시기가 있는데 바로 시험기간입니다. 공부를 하기 바라는 엄마와 공부는 다 했다는 아들 사이에 끝없는 신경전이 오가는 시기입니다. 어느 날 주말 아침, 휴대폰을 잡고 있는 아들에게 시험공부를 하게 휴대폰을 엄마에게 넘기라는 요구로 전쟁은 발발되었습니다. 휴대폰 회수에 민감한 아들은 바로 화를 내며 아직도 내가 초등학생인 줄 아냐며 짜증을 부렸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게 간섭하지 말라고 합니다. 감정을 빼고 나름 아주 나이스하게 말했다고 생각한 저는 아들의 반응에 망연자실했습니다. 이 전쟁에서 늘 상처를 받는 것은 엄마인 듯합니다. 마음이 울렁거려 빼앗은 휴대폰을 건네며 네 마음대로 하라는 말을 남기고 아들방을 나왔습니다. 


 거실로 나와 식탁에 앉았는데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어릴 적 내가 엄마 속을 썩이면 우리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식 키워봤자 아무 소용없다.


 갑자기 그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선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우리 엄마가, 자식 키워봤자 아무 소용없다고 하던데 정말이야. 내가 왜 그 고생을 했을까. 그냥 어린이집에 집어던지고 나도 내 인생 살 걸!"

제 입에서 마구 쏟아져 나오는 말이 멈추기도 전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엉엉 울었습니다. 마주 앉아있던 남편이 놀래서 안아줍니다. 


 그 순간 저는 제 결심을 처음으로 후회하는 말을 했습니다. 지난 제 시간을 원망하는 말을 쏟아놓고 말았습니다. 정성으로 키운 내 아이들이 내 인생의 결과물이었는데, 그래서 승진도 포기하고 살 만큼 가치 있다고 여겼었는데 아들의 말 한마디에 그 모든 시간을 부정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날이 오지 않을까 걱정했던 순간이 결국 오고야 말았습니다. 아주 잠깐, 나의 지난 시간을 후회했습니다. 한바탕 울음 후 마음이 꽁해졌으나 저녁즈음 아들의 사과로 이날의 싸움은 일단락되었습니다. 


  마음이 풀어지고 나니 다시 한번 제 모습이 돌아봐졌습니다. 그렇게 경계하던 일인데, 몇 번을 다짐하고 이런 후회는 가지지 말자고 여겼던 일인데 이렇게 쉽게 무너졌구나 싶었습니다. 그 원인이 뭘까 생각해 보니 지나친 자식사랑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제가 생각하고 원하는 아이로 만들어 시험도 잘 치고 공부도 잘하게 하고 싶어 잔소리를 한 탓이었습니다. 내 인생을 갈아 넣었으니 내가 원하는 데로 너는 자라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 교포의 삶을 아들로 보상받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육아에 올인했던 내 지난 시간이 조금이라도 덜 후회될 거라고 말입니다. 그게 내 사랑에 대한 보답이라고 여겼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 무엇보다 깊고 넓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내 삶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 어리석어질 수가 있구나, 이게 시작인가 싶습니다. 여기서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자식에 대한 사랑을 조금은 내려놓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은 내 것, 네 인생은 네 것이라는 마음을 잊지 않고 아이들 마음에서 승진하고 싶은 욕심을 버려야겠습니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늘 신입사원이 아니겠습니까. 자식들이 원할 때 달려가는, 그리고 서툴지만 내 몫을 찾아 하는, 부지런하지만 과하지 않은. 아이가 스무 살이 되면 나도 처음 스무 살을 둔 엄마가 되고 아이가 서른 살일 때 또 처음 서른 살을 둔 엄마가 되듯. 매년 신입 엄마의 마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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