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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쥐 May 09. 2024

[국밥로드] 종로 무교동 북어국집

서울 중구 을지로1길 38 1층

오래오래 있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에서 유명하다는 회사의 고층 건물들이 즐비한 종로에서 좁은 골목에 자리 잡은 단층집이 유명하다. 오늘 소개하는 무교동 북어국집이다.

거나하게 취한 후 맞은 아침은 늘 괴롭다.

왜 그렇게 많이 마셨지?라는 후회와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라는 다짐을 새기며 쓰린 속을 부여잡는다. 이때,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얼큰하고 빨간 국물이 생각나는 사람과 맑고 하얀 국물이 생각나는 사람. 나는 전다. 역시 해장에는 짬뽕이나 땡초를 듬뿍 넣은 해장국 같은 것이 최고다.

이런 이유로 북엇국을 잘 먹지 않는다.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해장을 위해서가 아니면 딱히 생각나지 않고, 막상 해장이 필요할 때는 정반대의 음식을 찾게 되니 도통 먹을 기회가 없다. 무교동 북어국집도 해장이 아니라 아이에게 늦은 아침을 먹이기 위해 갔었다.


웨이팅이 많다고 들었는데 평일 10시 30분쯤 방문하니 절반 정도가 차있었다. 입구에서 이 집의 맛을 신뢰하게 되는 사람을 만났다. 회사원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급하게 뛰어가는데 마주 오던 사람이 어디 가냐 묻는다. "어제 너무 많이 마셔서 해장하러 가!!"

그렇구나. 숙취에 응급처치가 가능할 정도로 믿음이 가는 집이구나.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구석자리에 앉았다. 아이의 것은 따로 드릴 테니 두 사람 것만 주문해도 된다고 했다. 30개월 정도 된 사내아이라 나누어 먹어도 되는데, 마침 가족들이 다 배가 고픈 상태여서 정겨운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푸짐한 한 그릇이다. 재료 본연의 맛으로 만들어낸 맛. 너무 깊지 않아 부드럽고 나무 얕지 않아 허하지 않은 적절한 국물의 맛. 세심하게 손질해 얼마나 오래 삶았는지 알 수 있는 보들보들한 북어, 그리고 북엇국의 맛을 방해하지 않는 연하고 부드러운 두부. 게다가 아이를 위해 따로 준비해 주신 것도 양이 크게 다르지 않다.

감사하고 정스럽고 푸짐한 맛이다.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국물맛이 조금 맹숭맹숭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이때 새우젓을 넣으면 좋다. 무슨 맛인지 모르겠는 김치찌개에 다시다를 한 꼬집 첨가했을 때처럼 풍미가 터진다.


식탁 중간에 반찬통 세 개를 열면 각각 부추무침, 김치, 오이지가 있다. 세 가지 모두 특별한 맛은 아니다. 다만 신기한 것은 간이 세지 않아 자꾸 먹게 되고, 북어국물의 맛과 묘하게 궁합이 잘 맞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의 평범한 찬이 특별하고 유별나게 느껴진다. 물김치는 설명이 필요 없는 후식이다. 중국음식을 먹은 후에 마시는 우롱차처럼 국과 찬의 흔적을 씻어내 준다.


알고 보니 500원을 추가하면 계란프라이를 해주신다. 완숙과 반숙도 선택이 가능하다. 국물과 건더기의 양을 조절할 수 있고, 남기지 않는 다면 리필도 해준다. 기본 양이 많아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국과 찬만으로도 든든한 한 끼를 먹여보 내려는 사장님의 마음이 담겨있다.


북엇국 한 그릇에 1만 원이 너무 비싼 것 아니냐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음식값은 재료비, 인건비, 임대료 등으로 추산하지만, 나는 국밥은 '시간'으로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국물을 내기 위해 요리사가 쏟은 시간이 반드시 음식값으로 환산돼야 한다. 북어와 야채만으로 이런 맛을 내기 위해 꽤 오래 정성 들였을 노력과 시간. 얼마가 적정값이라 확언할 수 없지만, 1만 원은 이 집 북엇국에 아깝지 않은 값이다.


무교동북엇국집을 검색하다가 인상 깊은 리뷰를 보았다. 먹고 나니 나도 그 말에 동감한다.

<서울미래유산>이라는 입구 현판에 꼭 어울리는 말이었다.


"오래오래 장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글쓴이의 신간, 지친 어른들을 위한 위로 에세이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754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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