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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쥐 Sep 10. 2024

[1화] 리더, 이끄는 자에 대하여

JOB담(談); 열두 달의 에피소드

픽션입니다.

겪은 듯한, 들은 듯한 이야기라면 모두 우연입니다.


1월 첫째주

"존경하는 직원 여러분…"

거짓말이다. 사장은 새해 첫날 시무식에 참석한 직원 대부분의 이름을 모른다. 아니, 측근을 제외하고는 아는 사람도 몇 없을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니, 그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 턱이 없다. 게다가 지난 1년간 사장 전달사항이라며 전해진 내용은 모두 쓴소리와 채근뿐이었다. 그러므로 직원을 존경한다는 그의 첫인사는 틀림없는 거짓말이다.

이후로 뻔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덕담이라기에는 딱딱하고 연설이라기에는 요점이 없는 지루한 스피치.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전사가 합심하여 어쩌고저쩌고…' 이런 얘기다. 그러다 말미에 쓴소리가 나왔다. 고개를 숙이고 읽지 않는 걸 보니, 여기서부터가 진짜 사장의 생각이다. 이전의 것은 비서실 혹은 기획실의 누군가가 적어준 어느 직원의 생각이었다.


요약하자면 임원을 비롯한 간부들이 리더십을 발휘해 달라는 말이었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아랫 직원에게 본보기가 되라고. 후배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 애사심이 떨어지는 건 모두 리더십이 부족한 탓이니 적극적인 이끔이가 되어 달라는 당부였다. 연초부터 뭔가 쓸데없는 액션이 난무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무실에 돌아와서 티타임을 가졌다. 명목은 새해 덕담을 나누자는 것. 하지만 실상은 실 회의에 참석했던 팀장의 지시사항 전달이었다.

"실장님께서 팀장들에게 도전적인 목표달성과 적극적인 팀원관리를 지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실 직원들은 주 단위 업무 계획표를 제출하고 매주 월요일 10시에 개인의 한 주 실적을 점검하는 회의를 개최하겠습니다. 실장님께도 보고할 거니까 철저히 관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 특히 각 업무의 파트장, 그러니까 차·과장님들께서 파트원을 적극적으로 독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회의가 끝났고 담타(담배타임)가 이어졌다. 가급적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은 착한척 과장이 나를 불렀다.

"차·과장들끼리 담배 하나 피자. 너도 이제 과장승진했으니까 끼워줄게!"

챙겨주듯 말하지만 나쁜 놈이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착한 척하는 놈. 하지만 실상은 자기를 돋보이게 하려고 위아래로 험담을 뿌리는 이간질러. 아마도 막내 과장인 나를 갈구려는 심산이 확실하다. 나를 단속해서 사원·대리를 관리하고, 팀장에게는 마치 자기가 애쓰고 있는 것처럼 포장할 검은 속내.


아니나 다를까 뒷담화를 쏟아냈다.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다른 팀에서 말이 많더라고. 우리 팀 애들 열심히 안 한다고. 요즘 말로 뭐라더라? 월급루팡? 아무튼, 성과가 나려면 실무자 차원에서 받쳐줘야 하는데 애들이 느슨하게 일하니까 차·과장들이 업무를 치고 나갈 수가 없어요. 성과가 좋아야 여기 계신 선배님도 진급하고 그래야 애들에게도 승진할 기회가 주어지는 거 아니겠어? 그러니까 네가 후배들 관리 좀 타이트하게 해라. 맨날 허허 거리지만 말고!"

"그래! 말 잘했다. 작년에 추진하기로 한 그 사업도 기한이 결국 늦어서 엎어졌잖아. 내가 그렇게 빨리 진행하라고 계속 얘기했는데 말이야."

말로만 차장이 거들었다. 말로만 일하는 인간. 작년에도 그랬다. 조금 도와주면 쉬워질 일을 요리피하고 저리 피하면서 일하는 후배들에게 참견과 지적만 해댔다.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수긍하지 않는 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사장이 리더십을 강조했고, 실장이 팀장에게 팀장이 차·과장에게, 그리고 차·과장이 대리와 사원에게 책임을 넘겼다. 내리갈굼이다. 거꾸로 갈궈보자면 후배들이 일을 못한 건 일 안 하는 차·과장 때문이고, 그들을 관리하지 않은 건 팀장의 책임, 그리고 팀장을 관리하지 못한 건 실장과 임원, 결국은 사장의 리더십 부족이다. 하지만 회사라는 조직은 상위 계층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


리더(Leader)의 뜻은 'lead + er', 이끄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Leadership은 한 배를 탄 선원들을 이끌어 가는 능력. 즉, 선장 한 명이면 족한 일이다. 그런데 이 능력을 발휘해야 할 선장이 항해사 탓을 하고, 항해사는 노꾼 탓을 하니 배가 제대로 갈 턱이 있나. 누군가는 이끌어야 하는데 말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은 원래 간섭하는 사람이 많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조금 다른 뜻인 것 같다. 사공이 노질을 다른 사람들에게 미루니 배가 산으로 간다. 백날천날 야근해도 회사가 왜 제자리걸음인지 느낌이 온다.



작가의 순한 맛 에세이《단어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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