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부문화
첫째 아이가 이제 10살이지만 어쩌다보니 그동안 한국의 사립학교와 공립학교를 거쳤고 그리고 이제는 미국 공립학교까지 경험 중이다. 엄마인 나도 마찬가지로 한국의 사립학교 선생님과 부모들 그리고 공립학교의 선생님과 부모들, 이제는 미국 공립학교의 선생님과 부모들을 만나고 있다. 이곳에 오기 전에 SNS나 미디어를 통해 미국의 공립 초등학교 분위기는 어떤지 주섬주섬 듣고 왔지만 막상 겪으니 한국과 미국 학교는 정말이지 달라도 너무 달라 놀라고 있다.
첫째로는 기부문화. 개학 초부터 올해가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60주년이라며 학부모 기부금으로 6만달러를 모으고 있다는 이메일이 날아왔다. 그런가보다 했는데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학교에서 오는 메일에는 꼭 그 기부금 관련 소식이 끼어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링크를 눌러봤더니 더욱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자녀의 이름으로 부모와 친척, 이웃들에게 모금을 받는 페이지가 나오는데 3명에게 기부금 링크 보내기, SNS에 기부금 관련 공유하기, 7명에게 이메일 보내기, 10명에게 이메일 보내기 등 미션들이 주루룩 있고, 아이가 얼마를 모으면 어떤 선물(낮은 금액대는 아주 조잡한 장난감류이고 200달러 정도 되면 야광 글러브랄지 조금 값어치가 있어보이는 상품)을 받을 수 있는지 등이 적혀있는 것이었다. 개인 별로 할당량(?) 같아보이는 것도 있었는데 꼭 반드시 해야하는 건 아닌 것 같지만 아이 이름 아래 그래프가 있어서 기부금을 모으면 bar가 점점 길어진다. 그리고 또 하나, 학교 전체를 통틀어서 어느 반이 가장 많은 금액을 모았는지가 뜬다! 현재까지 1등인 반은 1학년 모 선생님 반으로 3080달러를 모았고 우리 아이가 있는 반은 1995달러를 모아 5위이다. 오 마이 갓.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각종 행사도 하는데, 하루는 학교 교정에서 방과후에 파티를 연다기에 참여했다. 그냥 참여만 한 게 아니라 이런 행사는 도대체 누가 어떻게 준비하는지 궁금해서 자원봉사도 하기로 했다. block party라고 부르던데 입장 티켓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10달러에 미리 판 뒤 수익금은 학교에 기부하는 형태인 것 같았다. 음식은 케이터링으로 햄버거와 쿠키 등이 마련돼있었고 평소 주차장이던 공간에 테이블을 깔아 앉아서 먹게끔 했다. 자원봉사자로서 내 역할은 묵직한 나무테이블과 의자를 깔아 배치하는 것이었는데 어른 자원봉사자는 단 3명. 그런데 학생 봉사자들이 열댓 명 가까이 와있었다. 중학생 정도로 돼보였는데 어떻게 알고 이렇게 봉사에 참여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자신들은 이 학교 졸업생으로 중학교에서 1년에 15시간 정도(?) 봉사활동을 반드시 해야하는데 그 시간을 채우기 위해 지원했다고 했다. 굳이 학부모들이 다수가 참여하지 않아도 이런 수요와 공급이 있기에 행사가 치러지는구나 싶었다.
테이블 수십개에 한 테이블당 의자를 10개씩 뒀지만 학교 자체가 꽤 큰 학교라 혹시나 부족하지 않을까 싶었다. 기우였다. 나는 말하자면 전학생 학부모고 미국 학교가 처음이고 아이의 학교생활도 궁금하다보니 불참할 생각은 못했지만, 전교생 대부분이 참여하는 파티는 아닌 듯 보였다. 파티가 진행되는 동안 담임 선생님 등도 볼 수 없었다. 교장선생님 정도만 학교에 남아 테이블을 돌아다니면서 부모들과 small talk을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부금 목표액 달성을 위해 티셔츠와 후드티도 판다. spirit wear라고 하던데 학교의 로고와 이름 등이 적힌 옷으로, 학년별로 색깔이 달랐다. 또 어느 날은 아이들이 모두 목에 카드가 달린 줄을 메고 나왔는데 아이의 첫 마디가 "엄마! 선생님이 이거 사인받아 오래요!"다. 뭔가 하고 봤더니 grand parents, parents, relatives, neighbors 등과 함께 $35 가 적혀있었다. 기부 약속과 사인을 받아오라는 것이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초등 공교육은 무료지만 그렇다고 학교 자체적으로 기부금을 받거나 하는 것도 없다보니 이런 일련의 분위기와 행사가 낯설고도 낯설었다. 하지만 의식하는 건 나뿐인 것 같고, 다른 학부모들은 학교의 계속되는 기부 권유를 딱히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뭐 그런가보다' 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저 형편에 닿는대로 기부하고 싶은 사람은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하는 것 같았다. 비단 학교뿐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적으로 어디서든 기부를 권하고 장려하니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듯했다.
기부를 하지 않았다고 아니면 덜 했다고 딱히 아이를 차별하거나 하진 않겠지만 실제로 어떤지까지는 잘 모르겠다. 반별 랭킹까지 다 공개하는 마당에 담임 선생님이나 학교 측에서 아이 개인별 모금액 리스트를 갖고 있지 않을 리 없단 생각이 든다. 하나 더 궁금한 건 모금 행사가 이번 주말로 끝나는데 만약 목표액을 채우지 못한다면? 교장 선생님이 어떤 코멘트를 보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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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상황을 덧붙여보자면, 학교 측으로부터의 여러 유무형의 독려(?) 끝에 모금 목표액이 달성됐고 교장은 축하와 감사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기부금 액수에 따른 기념품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직접 받아왔는데 내가 예상한 것 중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담임 선생님이 직접 아이 한 명 한 명을 호명하며 앞으로 불러 기부금액대에 맞는 선물을 나눠주셨는데, 10개쯤 받아서 기뻐하는 아이부터 호명되지 않고 아무 기념품을 받지 못한 아이까지 있었다. 물론 내 아이는 자신이 받은 몇 개의 기념품에 정신이 팔려서 다른 아이들이 뭘 얼마나 받고, 못 받았는지는 잘 알지 못하고 가장 많이 받은 아이를 부러워할 뿐이었지만. 그 얘기를 전해들은 나는... 그 호명되는 속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은 아이, 불렸지만 아주 작은 기념품 한두 개만 받은 아이들이 혹시 받았을지 모를 박탈감에 마음이 쓰였다. 왜, 꼭 이렇게 해야만 하는 걸까? 다음에는 엄마 아빠 졸라서 기부 많이 하시게 해 라는 무언의 압박으로밖에 보이지 않아서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