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저는 폐급입니다

[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문학동네 ]

[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문학동네 ] 


저는 폐급입니다.


 행복하고 싶다. 이 6글자의 쉬우면서도 지독히 어려운 목표는 내 삶의 지침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은 이든, 읽지 않은 이든 이것은 동시에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목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20여 년간의 내 인생을 '한국식 레일'을 밟으며, 이를 철저히 따라가려 노력했다. 초, 중, 고를 넘어 대학교까지 순탄하게 들어왔고 어느 정도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참으로 '올바른 아이'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21살 겨울, 나는 그 레일에서 튕겨 나와 메마른 땅을 구르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건장한 남성 누구나 가는 군대. 나 역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남성이었기에 육군으로 자원해 배치받았고, 2년간의 군 생활을 잘 마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아직 나를 모르는, 나의 착각이었다. '한심하게도' 군대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 한 나는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았고 과호흡 증세로 쓰러지는 일까지 벌어져, 끝내 의가사 제대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 어느새 4년이 지났다. 돌이켜보면 눈 깜짝할 새다. 나는 지금까지 약을 처방받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정신과 병원에 다니고 있다. 이런 내 상황이 발병 초기에는 지독히도 싫어 또 다른 우울의 늪에 빠졌지만, 지금은 그럭저럭 버텨나가고 있다. 


 나는 내가 이런 상태에 빠진 이유가 궁금해졌다. 나는 군대의 어떤 점을 버티지 못 한 것일까? 문유석 판사의 [ 개인주의자 선언 ]은, 내게 그 답을 조금이나마 가르쳐 준 책이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것은 내 참회록이며 반성문이다. 나는 마음 한복판에 다른 모든 군 복무를 한 남성분들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을 지니고 있고, 이것은 내가 죽을 때까지 가져가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서평은 결코 군대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찬찬히 분석해 보는 글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나는 군대의 '집단주의' 문화를 참지 못했다.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 아래 수많은 개성을 지닌 사람들을 하나의 색깔로 물들이고, 그것에 물들지 않으면 죄악시되는 행태를 견디지 못했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거기에 속하지 못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개인이 '폐급(군대의 비속어)', '특이한 놈'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 까닭 역시 집단주의 문화 때문일 것이다. [ 개인주의자 선언 ]은 그러한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에 반기를 드는, 문유석 판사의 담대한 선언이다.

 그는 이 책에서 모든 종류의 집단주의를 혐오하는 '개인주의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한국의 집단주의가 가져온 여러 가지 폐해들을, 자신이 판사로서 겪었던 여러 경험들을 통해 소개한다. 국제결혼한 아내를 무참히 살해한 남성, 아이들을 줄 세우는 교육, 진영 논리에 매몰된 정치, 마지막으로 세월호 참사까지. 각기 다른 동기로 발생한 것처럼 보이는 이 사건들의 밑바닥에는, 자신과 다른 이들을 배척하고 비난하는 집단주의가 있다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의 해결책으로 그는 '개인주의'를 주장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것이 '이기주의'를 뜻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개인주의를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함부로 간섭하지 않고 배려하는 성숙한 문화'라고 정의한다. 즉 집단의 압박에 무조건 굴하지 않고 각 개인의 소중함을 일깨울 때, 우리는 보다 나은 '공동체'가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니 문유석 판사가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처음 들 때만 해도 개인주의, 즉 자신을 중점에 두는 생활 방식만 그가 계속 주장할 줄 알았는데 책의 마지막에 이를수록 그는 개인주의자가 아닌 '공동체주의자'라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남을 인정하고 서로를 포용하는 따뜻한 공동체. 이것이 그가 꿈꾸는 사회였다. 처음부터 '공동체주의자 선언'이라고 제목을 짓지 않고 이렇게 우리에게 '반전 매력'을 안겨준 그의 재치가 놀랍고, 감사했다.

 이제 다시 나의 이야기로 마무리하자. 나는 부끄럽게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반드시 요구되는 의무를, 온전하게 이행하지 못했다.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집단주의 문화 때문이고, 나와 같은 '별종'들을 심지어는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에게, 더 나은 공동체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문유석 판사가 말한 '공동체주의'를 우리 사회에 좀 더 스며들게 하는 것이, 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리 군대가 전쟁을 대비하기 위한 조직이기에 강압적인 분위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이 구성원을 이루는, 인간을 위한 조직이다. 그러니 조금은 '인간적으로' 서로를 대한다면, 나 같은 놈은 줄어들지 않을까. 

 집단주의가 아닌 공동체주의, 그것이 우리가 나아갈 길이라고 문유석 판사는 말하고 있었다. 서로를 인정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진정한 '우리'를 이룰 수 있으리라, 나는 믿는다. 지금도 국방의 의무를 위해, 또 위했던 모든 분들께 감사와 사죄의 말씀을 드리며 [ 개인주의자 선언 ]의 리뷰를 마친다.


작가의 이전글 고삼이 집나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