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서른다섯, 마흔다섯 수의 상처
스물다섯, 서른다섯, 마흔다섯 수의 상처
부모님이 고향으로 내려가시고 난 이후의 아들과의 삶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살림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빨래도 음식도 학원일도 다 해야 하는 상황은 나에게 전쟁과도 같았다.
나에겐 살아야 하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나의 아들은 내가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잡아준 아픈 손가락이었고 내가 없음 나의 아들은 고아란 걸 알기 때문에 돈이라는 권력 앞에서 자존심도 다 내던질 수 있었다. 남들의 이야기도 필요 없었다. 겉으론 ‘죄송합니다 미안해요’라고 말했지만 속으론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이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내 던진다고 버려질 자존심이던가? 화가 너무 났고 차 안이나 혼자 있는 공간에서 엉엉 우는 일이 허다했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목이 메이고 가슴 끝이 아파 견딜 수가 없다.
코로나가 급습하기 직전 돈에 시달리는게 버거워질 때면 몇 시간 이후면 볼 아들이 많이도 그리워졌다.
먹고사느라 제대로 살펴주지 못하는 마음에 집 앞에 작은 교습소를 하고 학원을 정리해야겠다 마음을 먹었지만 가르치던 아이들을 어쩌나? 하는 마음에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맘을 단단히 먹고 학원 중개업자에게 연락을 했다.
수익이 있는 학원이기에 학원을 다른 원장에게 넘기는 과정에 나는 또다시 호구가 잡혔다.
권리금을 많이 받게 해 주겠다는 말에 또 다른 권리금을 주고 학원을 이전시켰다. 이전을 하고 알게 되었다. 이전한 자리가 기존 자리보다 권리금을 더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학원중개업자에게 조차 나는 호구였던 것이다.
또다시 돈을 날린 것이다. 어쩌나? 하며 다른 중개업자에게 연락을 했다.
알고 보니 10년 전 얼굴을 알고 있던 원장님이셨다. 나의 상황을 들은 원장님은 안타까워하며 그 당시 학원사업을 진행 중이던 기업에 소개를 시켜 주셨다. 너무나도 간절했다. 중고등 학원은 인수가 될 수 없던 조건이었는데~ 솔직 하게 적은 매출금액은 신뢰를 주었던 것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큰 금액으로 인수가 되고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구나!!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하는~
권리금도 받고 걱정되던 아이들도 가르치고 급여도 받게 되는 행운이 나에게 찾아온 것이다.
우는 나에게 엄마는 “사람이 착한 끝은 있는 거야!”라고 말했다. 나의 엄마는 딸을 착하다 이야기하는 고슴도치 엄마니까!!
현명한 호구가 되어보겠습니다.
1년의 계약이 끝나고 할 줄 아는 일은 학원밖에 없었다. 코로나 한복판에 마지막으로 제대로 학원을 운영해보고 싶은 마음에 겁도 없이 새로운 지역에 학원을 오픈하는 일을 벌였다.
쉽지 않았다. 어릴 적 처음 뛰어다니며 학원을 오픈하던 때와는 달리 어떤 연고도 없는 곳에 0명에서 출발한다는 게 생각처럼 되질 않았다.
국, 영, 수 학원으로 오픈을 했지만 나는 운영해 본 적 없는 국어에 자신이 없었다. 모르면서 학부모님들에게 아는 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인을 선생님으로 모시고 잘못된 계약을 구두로 진행하게 되었다. 멀리서 오는 걸 미안하게 생각하며 나는 맞춰달라는 조건에 모두 맞춰주며 어느 순간 호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도대체 학원의 주인이 누구인지? 싫은 말을 못 하는 나를 넘 잘 알고 있던 선생님은 어느 순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터지는 순간이 되고 부딪히는 걸 싫어하는 나의 전문분야 도망가고 숨는 삶의 태도가 또다시 발휘되기 시작했다. 진짜 학원에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하며 지금은 해결하기에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책 읽기와 필사를 시작하며 나는 마음먹었다. 배에 힘을 꽉 주고 말하는 법, 힘과 용기를 얻는 법,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로!!
현재 나는 삶의 기회를 다시 한번 얻어 현명한 호구가 되어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