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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멘탈 Jan 23. 2024

새로운 해, 새로운 시작, 새로운 맥북

하루, 이틀, 한주, 두 주, 한 달, 두 달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브런치를 시작할 때 한주에 한 번씩은 글을 써서 올리리라 다짐했건만 

한번 뒤쳐지기 시작하니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갔고 

나에게서 한번 멀어지기 시작한 글쓰기는 

서서히 더 멀어져 갔다.

다시 글을 쓰려니까 새삼 너무 민망하고 난감했다.

그렇게 글 쓰는 것을 멈췄다.


매일 울리는 브런치 알람을 외면하고

넌지시 요즘에는 글 안 쓰냐는 오빠의 물음도 외면하고

시작만 하고 끝도 못 내는 바보 멍청이라고 비난하는 내 내면의 소리를 외면했다.


사람은 할 수 있는 것을 안 하고 있을 때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어리석게도 나는 이걸 알면서도 외면했다.




처음 시작은 이랬다.


막 열다섯 생일을 보낸 내 할아버지 강아지가 

야밤에 잔뜩 신이 나서 생호들갑을 떨면서 

우다다다다 소파에 올라가다가 

세상 큰 비명을 질렀다.


소파에 올라가다가 다친 적은 있지만

아이가 그때는 어렸고

뭔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이제는 다치면 진짜 답도 없는데 

내 품에 안겨서 아프다고 구슬프게 끙끙 거리는 아이를 보며 

너무 흥분한 아이를 컨트롤하지 못한 

내 잘못이라는 죄책감이 나를 덮쳤다.


한해 한해 나이 들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매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며 다짐함에도

허구안날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 나다.


최대한 편하게 지켜줘도 모자랄 판에

내가 정신 빼고 있다 애가 다쳐서 

애를 고생시킨다는 죄책감은 나를 한없이 슬프게 했다. 


아이들 이야기도 쓰고 있었는데 

글을 쓰려 생각만 해도 눈물부터 죽죽 났다.


'에라이 못하겠다. 당분간 하지 말자.'


아이는 나아졌다가 또 괜찮을만하면 신나서 뛰어놀다가 또 삐끗하고

또 못 뛰게 해서 괜찮아 질만 하면 다치고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내 마음도 들쑥날쑥 나아졌다 나락으로 떨어졌다 반복되었다.




십 년 가까이 간호사로 살았다.

그렇게 서른이 되었다.

시집은 갔지만 아이를 낳을 계획은 없었다.

뭔가 조급해졌다.

이렇게 있다간 아무것도 못하고 늙을 거 같았다.

그래서 무작정 석사 공부를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문이 열렸다.

그렇게 나는 간호사가 아닌 대학교에서 일하는 연구원이 되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다.


세상은 미궁에 빠졌고

대학교는 문을 닫았고

태어나 처음으로 재택근무라는 것을 시작했다.


내가 너무 존경하는 교수님 밑에서 

코로나 기간 동안 너무 편하게 일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대학교 연구직은 연구비에 따라 

있다가도 없어지는 파리목숨 신세였고.

내 파리 목숨이 작년 12월 부로 끝나가고 있었다. 


5년을 편하게 있다가 다른 직장을 찾을 생각을 하니

(이력서를 고치고 커버레터 쓰고 인터뷰를 하고)

공황 상태가 왔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은 알고 있었지만

진짜 눈앞에 닥치니까 도망치고 싶었다.

어디 땅끝까지 사라져 숨고 싶었다.


그래서 애가 다친 거에 엎친데 겹친 격으로 

내 심란함은 하늘을 찔러

글은커녕 내 삶에 집중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새로운 해가 시작 되었다.


우리 할아버지 강아지는 고관절을 다치셨지만

어째 어째 잘 회복하시고 있다.

여전히 까불고 여전히 잘 먹고 여전히 잘 자고 여전히 시끄럽다.


나는 다른 연구팀으로 옮겨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아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오늘

번쩍번쩍 새 맥북을 픽업했다.

글쓰기로 돌아가는 데에 

이보다 더 좋은 핑곗거리가 없을 거 같았다.


그래서 새 맥북 키보드 테스트로 할 겸

주절주절 글을 써본다.


또 어느 날 글쓰기가 민망해진다 하더라도

그래도 이렇게 다시 돌아오면 된다는 생각으로.


다시 한번 더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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