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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Nov 24. 2023

수상한 서점 02.
여행은 이별연습의 장

수상한 서점


02. 여행은 이별연습의 장


  서점 사장님이 여행으로 왔다가 제주에 정착하게 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겪기에 감당이 안될 것 같은 이혼과 죽음 등 여러 큰 이별을 소화해 온 인생이었다. 서점에 죽음과 삶, 인생의 허무에 대한 책이 깔려있던 것은 이 이야기의 복선이었나 보다.


일상에서는 만나는 사람만 만나니, 그것도 비슷한 사람만 만나니 하는 고민들이 다 거기서 거기다. 그런데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은 내가 그간 경험해 온 것들보다 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군상이 각자의 삶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여행 속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깨닫는다. ‘내가 힘들다고 말했던 것들은 한낱 작은 것에 불과하구나.'

  

나는 마음을 쏟으면, 그것이 빠져나간 후 그 빈자리가 너무 헛헛히 느껴져 관계에서 애써 마음을 주지 않으려 했다. 담담해지려고, 진심을 다하지 않으려고. 피어오르는 감정을 억눌렀다. 그런데 이 사장님은 자신을 쏟아내며 온 마음을 줘버린다. ‘우리 여행자들은 떠날 수밖에 없는데 이 사람 괜찮을까?’라는 걱정이 들 정도로. 우리 말고도 이런 경우가 자주 있냐고 물었다. 손님이 들어오면 찬찬히 살펴본 후 넘어올 것 같은 사람에게 한 잔 하겠냐고 묻는다 했다. 이제야 그녀의 의도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여행자와 깊이 만난다는 것은 예정된 이별을 감당하겠다는 뜻이다. 그녀는 이 짧은 만남과 이별들을 거듭해 겪어나가며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를 큰 이별에 대비한 면역력을 쌓고 있으리라. 나 또한 이 순수함에 물들어 여행에서 만난 이 인연들에게 내 마음을 다 내어주고 말았다. ‘그래. 여행은 작은 이별을 경험해 보기 좋은 연습의 장이다. 연습으로 삼지 뭐.’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지금 이 순간, 내 눈앞 현재에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그녀처럼. 그렇게 3차는 내가 쏘겠다고 외치며 술집으로 향했다.      


우리는 늦은 저녁으로 어묵탕을 들이켰다. 취하지 않을 것 같은 사장님이 취하셨고, 꼭 다시 오라고 했다. 자주 오라고 했다. 이별은 아무리 거듭 연습을 하더라도 힘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감정을 억누르는 것보다 마음껏 현재를 느끼고 누리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걸. 이 사장님.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앎이 멋져 보였다.       


술집에서는 우연히 만난 서점단골이라는 사진작가 연인이 합류되었다. 신기하게도 여자 작가는 게스트하우스 스텝 아가씨와 아는 사이였다. 포르투갈 여행에서 같은 도미토리를 썼던 사이라고 한다. 여행으로 만났던 인연이, 영원히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은 인연이, 또 다른 여행지에서 다시 이어지는 신기한 장면이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이런 우연을 보고 있으니 어쩌면 영원한 이별은 애초에 없는 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에 관한 생각과 여행 속 에피소드를 글로 풀어요.

<수상한 서점> 편은 다음 포스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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