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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Apr 23. 2024

나를 쓰게 하는 것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중에서

나는 왜 쓰는가?를 묻는 까다롭고 쓰기 꺼려지는 주제다. 당장 떠오르지 않아 반대로 내가 쓰지 않을 때는 언제인지 떠올려 보았다. 나는 성공의 순간, 질문이 없을 때, 실수하지 않을 때 쓰지 않는 편이다.

우리는 목표한 바를 이룬 후 뿌듯함과 자신감으로 어깨가 으쓱해 살아가기 마련이다. 성공의 크기가 크든 작든 말이다. 나의 경우 9년 만에 재취업에 성공하고 그것에 우쭐해 SNS에 자랑인 듯 아닌 듯, 결국은 내 성취를 늘어놓으며 사람들의 시선에 도취해 살았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퇴사는 나를 실패라는 늪에 빠트렸다. 그 안에서 허우적대다 뭐라도 잡고 싶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쓰다 보니 이상하게 괜찮아지는 것이 아닌가.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치유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쓰기의 범위를 확장해 보았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넘어 남도 읽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어 블로그에 손을 담갔다.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 김한솔이 작가님의 글쓰기 수업을 수강하였고, 수업을 마친 후에도 글쓰기 수업 동기들과 자발적인 글쓰기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이 글 또한 글쓰기 모임의 숙제로 쓴 글을 수정한 것이다.)
실패 후 지금 가장 할 수 있는 것이 글쓰기라, 나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은 욕망이 나를 쓰게 했다. 나를 쓰게 하는 것은 실패다. 하지만 그 실패가 나를 쓰는 인생으로 이끌었기에 ‘성장을 품은 실패’라 부르고 싶다.


또한 나를 쓰게 하는 것은 질문이다. 바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내 가족 외에는 주변과 타인을 살필 여유가 별로 없다. 호기심과 의문, 문제의식이 생겨도 "원래 그런 거지"라는 말로 억누른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과 현상을 당연하게 여기며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나 또한 그랬다. 당장 할 일이 없을 때 인천시민대학 <내 삶, 쓰고 전자책 출판까지(에세이)> 강의를 들었고 강사님께서 하신 15가지 질문들에 대한 나만의 대답을 엮어 『마흔의 질문들』이라는 전자책을 냈다. 정지의 힘으로 꽃을 피운 강사님의 질문들은 울림이 있었고 마흔이라는 시점에 무엇이 될지,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질문은 글쓰기에 시동을 거는 일이 아닐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예사롭게 넘기지 않고 면밀하게 살펴보고, 내 일이라고 여기며 들여다보면 의문이 생긴다. 그 질문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답을 찾다 보면 한 편의 글이 완성되기도 한다. 문답의 과정을 끊지 않고 이어 나가면 통찰력 또한 생길 테다.

마지막으로 실수를 줄이기 위해 나는 쓴다. 소설가 D.H. 로렌스는 “사람이 두 번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좋으련만. 첫 번째 삶에서는 실수를 저지르고 두 번째 삶에서는 그 실수로부터 이득을 얻도록”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 번의 삶으로는 인생의 의미를 깨닫기 어렵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환생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두 번 살 수도 없고, 한 번의 삶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살 수 있을까? 나는 실수를 하면 그것을 반성하고 다음의 성장을 기약하며 일기를 쓴다. 자기변명과 자아성찰, 앞으로의 다짐을 적으며 나름의 정리를 한다. 언젠가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그때의 정리를 떠올리며 더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
사람이 실수 없이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만이 완벽하며, 인간은 완벽을 소망하고 노력할 뿐이다. 실수를 최소화하여 선택의 순간 현명함의 방향에 서고 싶다. 실수를 줄이기 위한 소망과 노력이 나를 쓰게 한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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