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에 몸이 움츠러드는 어느 주말, 실내 나들이 장소를 검색하다 인천 검단선사박물관을 방문했었다.
검단선사박물관은 최근 조사된 검단신도시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한국의 선사시대 생활상을 다양한 디오라마로 재현해 놓았다. 또한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돌널무덤을 이전 복원하여 이 지역 청동기 문화를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음은 물론 선사문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좌)박물관 외부 전경 (우)특별전시실
(좌)제2상설전시실, (우)꼬마 고고학자들
내 눈길을 끈 곳은 제2상설전시실.
동양동과 원당동에서 발굴·조사된 청동기시대 주거지를 발굴 당시 모습 그대로 이전 복원해 놓았는데, 조사자와 발굴현장의 모습이 현실과 너무 비슷해 깜짝 놀랐다. 아이들은 "우와"를 연신 외쳐댔고, 모자와 조끼를 착용하며 진짜 고고학자가 된 듯 신나 했다. 꼬마 고고학자들을 사진에 담으면서 나는 잠시 추억에 잠겼다. 10여 년 전, 더울 때는 더운 곳에서 일하고 추울 때도 추운 곳에서 일하던 발굴현장에서의 그때를.
문화재 발굴현장에서의 일은 땅을 관찰하여 유구를 찾고 조사 전 사진을 찍고 실측하고, 조사 중 사진을 남기고, 조사 완료 사진을 찍고 실측하면 현장 조사가 끝난다. 그러나 발굴조사의 진짜 마무리는 발굴조사 보고서의 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과 실측 자료들, 출토 유물을 정리하여 유구와 유물의 시대와 특징, 유적의 학문적 성격을 밝히는 발굴조사 보고서를 쓰는 것은 발굴기관과 조사원의 주된 업무이다.
이번 발굴조사를 정리하고 다음 발굴을 시작하듯이 우리도 인생의 여러 과정을 겪으며 나름의 정리를 하는 것 같다. 비록 눈에 띄는 정리를 하지 못한다 해도 한 과정을 겪으며 배운 것들은 자기 안에 남아 다음 일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때는 한꺼번에 여러 과정을 겪어 정리를 미루기도 하면서 다음 일을 맞이한다. 이 모든 것이 '인생 보고서'가 아닐까? 한 과정을 마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를 반복하며 그 보고서의 질이 높아지고 양이 늘어갈 테다.
발굴기관에서의 시간은 나를 학문적, 업무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게 했다. 발굴조사와 보고서 작업,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논문을 완성하는 과정을 통해 유적과 유물의 학문적인 파악과 검증, 자료를 정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배웠다. 대학원 공부와 업무를 병행하며 고단했으나 끈기와 노력의 가치를 몸소 배우며 20대의 ‘인생 보고서’를 마무리했다. 육아와 재취업은 나에게 세상과 사람을 알려주는 보고서를 쓰게 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가 아닐는지. 아이들과 밀착할 수밖에 없는 육아는 정신적·육체적으로 최고의 난이도를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닐까 종종 생각한다. 성향이 다른 남매를 양육하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고자 애쓰며 사람과 세상을 넓고 깊게 보는 능력을 습득하고 있다. 재취업하여 근무한 전시관은 내 전공과 다른 곳이었기 때문에 유연한 사고로 기관장이 알려주는 방식을 익히기 위해 노력했다. 더불어 세밀하고 꼼꼼하게 소장 자료를 정리하는 업무에 임했다.
문화재 발굴현장, 육아와 전 직장에서 작성한 보고서가 쌓여 지금은 글쓰기라는 보고서를 쓰는 중이다. 애쓰고 애쓴 것들은 세밀한 관찰과 깊이 있는 사색, 유연함, 끈기로 내 안에 남았고, 이는 글쓰기의 귀한 자산이 되고 있다.
요즘 나는 단조로운 일상을 희망으로 채우는 보고서를 작성 중이다. 브런치를 통해 그 보고서의 질을 높여 평범한 삶을 반짝이는 특별한 순간들로 붙잡아 두는 ‘인생 보고서’를 쓰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