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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싸이먼 Jul 26. 2023

의사가 컨설팅펌으로 간 까닭은?

삶은 어떻게 꼬이는가?

1. 의사가 컨설팅펌으로 간 까닭은 1 - 삶은 어떻게 꼬이는가?


컨설팅 회사에 간다고 하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2가지입니다


거기 뭐하는 곳이에요? 우리 병원 옆에도 컨설팅 회사 있는데!
(제가 일하던 병원 원장님의 질문... 기억은 잘 안나지만 인테리어 컨설팅 업체가 병원 바로 옆에 있었음)
(의사 안하고) 왜 컨설팅 회사를 가셨어요?


1번 질문은 여기까지 찾아오신 분들이라면 생략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2번 질문에 대한 답은 2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제가 갖고 있는 목표에 컨설턴트라는 커리어가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컨설턴트가 기능적으로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첫번째인 제 목표를 이해하기 위해서 저의 배경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컨설팅펌을 알게 된 계기는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본과1학년 때였습니다. (저는 의전원에 진학하기전 모 대학의 생명과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의전원에 오기 전부터 저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어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의전원에 진학은 했지만 그 때부터 의사 할 생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왜 의전원을 굳이 갔지?’ 라고 생각하실만 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반적으로 경제와 경영을 좋아했습니다. 제약회사를 경영하고 신약 개발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었지만 선명하지는 않았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신문 경제면을 뒤적거리거나 관련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정도가 고작이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김치원 선생님 블로그 글을 읽으면서 컨설팅펌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막연하게 컨설턴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의사들이 진출 할 수 있는 진로가 병원, 제약회사 또는 복지부 이외 없다고 생각하던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막연하게 컨설턴트라는 이름이 단지 멋있어 보였고, 여의도에서 양복 입고 출근 할 것만 같은 이미지를 동경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동경이 특히 심해진 계기가 있었습니다. 본과 3학년 여름(2016년 즈음으로 기억하는데 확실하진 않습니다.) 맥킨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problem solving bootcamp를 운영하였습니다. 어느날 단톡방에서 캠프 링크를 우연히 본 기억이 납니다. 캠프에 신청서를 내고 합격을 해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해당 캠프에서 맥킨지의 워크 프로세스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특히 7 step problem solving process와 MECE, logic tree라는 개념을 처음 배운 것이 기억납니다. 처음 MECE라는 개념을 배우고 나서 너무 신박해서 흥분한 나머지 집에 와서도 계속 공부한 기억이 납니다. (공돌이 출신 눈에는 이게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우연히 전해진 링크가 병원 밖으로 나가게 만들었다.



  전략케이스와 오퍼레이션케이스를 변형한 게임을 그룹으로 참여해 경쟁한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컨설턴트들이 서로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이나 분석적으로 대화하는 모습이 맥킨지에 대한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특히 연대 의대 출신 컨설턴트분을 만나서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의사출신 컨설턴트의 커리어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나 동경은 군대, 병원 수련, 대학원 같은 문제들 때문에 마음 한구석에 넣어두었습니다. 졸업을 하고 병원에서 수련을 받을지 고민하던 시점에 문득 제약회사를 경영하고 싶다는 옛날 꿈이 생각났습니다. 당장 경영이나 전략 컨설팅 보다는, 연구를 먼저 한번은 배워야겠다고 생각해 대학원을 알아봤습니다. (어차피 군대 때문에 당장 회사를 가기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질병과 치료제에 대한 연구에 관심이 이어져 동기들 중 유일하게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대학원 생활은 희열과 후회와 의문의 나날들이었습니다. 대학원 과정 중에 좋은 논문을 쓰고 무사히 졸업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였겠지만, 연구에 대한 저의 부족함을 깨닫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스스로 연구로는 대성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90%의 대학원생들은 비슷한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하는 사람들의 연구방법론과 논리, 사고방식, 의사소통 방법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연구로 밥 먹고 살기보다, 대학원에서 배운 것들을 활용할 수 있는 진로를 탐색하면서 바이오, 헬스케어 산업 쪽 커리어를 알아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졸업하고 연구 고만하고 회사 가려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던 중 학부 시절 동기를 연구실 앞에서 걷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본인이 연구했던 현미경과 관련된 주제로 의료기기 스타트업을 만들었습니다.


  해당 스타트업은 좋은 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마땅한 자신들의 기술을 이용할 시장과 적응증을 찾지 못해 고민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친구와 이야기 하면서 회사의 기술을 적용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시장과 적응증을 찾고자 했었습니다. 회사 일을 도우면서 느낀 것은, 시장이나 전략과 같은 경영적 요소들이 기술보다 훨씬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오래전 꿈인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원 4년차에 컨설팅 펌을 가야겠다고 잠정 결심합니다.


다음 글에서 결심 이후에 한 일들에 대해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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