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시>
누구나 한 번쯤은 유년 시절의 향수에 잠기거나, 과거의 실수를 떠올리며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영화 속 주인공에게 스스로를 투영하며, 현재에 충만한 삶을 살라는 따뜻한 교훈을 얻거나 결국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허무주의를 경험하며 각자의 시각으로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열망을 해소하곤 한다.
하지만 영화를 사랑한다는 자부심이 무색하게도 내게는 시간여행 영화에 있어서 흥미를 느끼기보다 회피를 하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영화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시간여행이라는 설정에 대한 의문들로 인해 몰입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시간여행은 가능할까? 해당 영화의 시간여행 설정은 기존의 다른 영화들과 어떤 점에서 차별화되어 있을까? 시간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본래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 물체 사이의 관계를 인식함으로써 존재한다고 여기는 것일까? 신적인 존재 또는 운명론을 가정해야만 시간여행이 가능할까? 그중 가장 몰입을 방해했던 질문은 ‘주인공에게 시간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라는 철학적 의문이었다.
영화에서 부자연스러운 설정은 주인공의 초능력, 대표 세계관 등 누구든 인지하도록 투명하게 공개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악당에게 쫓기고 있는 주인공이 축지술을 사용하거나 투과능력을 사용하여 벽을 뚫고 10층에서 1층으로 이동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예외상황을 만들기 때문이다. 어떠한 영화도 세계관으로서 명시되지 않는 한 일반적인 통념과 법칙을 따를 것이 기대되기 때문에 이러한 ‘타임머신’이라는 기기 이면의 예외적인 설정에는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 있다.
인과관계에 대한 정의와 그 적용에는 다양한 해석이 있겠지만 ‘특정 행동이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문학에서는 보편적이다. 즉 작품속에서 결과가 나타났다는 건 곧 그에 따른 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타임머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알아보자. 시간여행을 가정해 보자. 주인공이 특정 조건을 충족해 타임머신을 찾고(결과), 이를 통해 과거로 돌아가 시간여행에 성공한다. 그런데 타임머신이라는 장치는 본질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역전시켜 기존 시간선상의 행위와 결과를 무효화하는 도구다. 따라서 타임머신을 발견하고 사용하는 행위(요건)가 과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는 시간여행의 정의 자체와 모순된다.
이러한 모순을 해소하려면, 시간여행을 통해 되돌아간 과거조차도 타임머신을 발견하고 사용한 행위의 연속으로 간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는 순간, 타임머신을 발견하고 사용했던 과정조차도 새로운 시간선상에서는 과거의 일부로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인공은 단순히 기기를 통해 과거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시간관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타임라인을 경험하며, 다른 사람들은 이를 망각하고 주인공 혼자 인식해야 한다는 2가지 부자연스러운 설정들이 부수적으로 따르게 된다.
이러한 의문점은 멀티버스의 출현으로 해소될 수 있다. 멀티버스란 "우리가 현재 사는 우주 외에도 다른 우주들이 존재한다는 개념으로, 그 우주에서 각각의 '나'가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이 무한하고, 존재가 유한하다면 무한한 시간 동안 동일한 양자 상태가 무한히 반복된다. 이 반복은 단일 우주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물리적 조건을 가진 우주들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나타나 멀티버스의 토대가 된다.
현실적으로 이것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관해서는 확률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답할 수 있다. 닫힌 시스템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엔트로피가 증가하여 무질서의 상태에 도달하게 되지만 충분히 긴 시간 동안에는 확률적 변동에 의해 엔트로피가 일시적으로 감소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루트비히 볼츠만은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질서 있는 우주가 사실은 무한한 시간 속에서 일어난 거대한 엔트로피 변동의 결과일 수 있다는 볼츠만 우주(Boltzmann Universe)를 주장한다. 이는 단순히 우리가 사는 우주의 반복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완전히 다른 물리적 법칙과 조건을 가진 우주가 존재할 가능성도 내포한다. 시간이 무한하다면 엔트로피 변동은 다양한 스케일에서 무수히 반복되며, 우리가 경험하는 우주와 유사하거나 전혀 다른 우주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볼츠만의 이론은 멀티버스의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멀티버스에 의하면 다른 버전의 ‘나’가 존재하는 세상은 무한하다. 내가 현재 앉아있는 자리에서 샤프를 내려놓을지 결정하는 상황이 있다면 내가 샤프를 내려놓는 우주 1과 샤프를 계속해서 들고 있는 우주 2, 다르게 행동하는 우주 3, 4, 5,… 가 이론적으로 존재한다. 즉 사람들의 모든 사소한 행동들은 일종의 분기점이 되어 행동을 하는 우주/ 행동하지 않는 우주/etc로 분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멀티버스의 개념에 착안하여 타임머신은 특정 시점 A까지는 동일한 사건들이 반복되어 왔다고 가정하고, A부터는 분기점이 다른 우주관으로의 이동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해소방법에도, 그렇다면 원래세계 사람들은…?이라는 윤리적인 부자연스러움은 존재한다. 그건 줄거리 밖 스토리이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는 응답을 할 수밖에 없다,,,
주인공에게 시간여행능력이란 즉슨 다른 우주관으로 이동하는 것이라는 멀티버스 해소방식이 내게는 통념에 맞아 이전보다는 영화에 잘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타임머신의 설정상 오류를 고민한다면 타임라인상 예외적인 설정과 윤리적으로 부자연스러운 멀티버스 설정 중 취향에 따른 선택은 개인의 몫인 것 같다.
멀티버스를 가정하지 않더라도 단일우주에서도 시간여행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단일우주에서의 시간여행은 모두 과거로 이동할 수 없고, 미래로만 이동할 수 있다는 일방향성을 띠고 있다. 첫 번째는 상대성이론을 통한 해소방식이다. 빛의 속도는 어떤 위치에서 누가 관찰하더라도 언제나 초속 30만 km로, 자연계에는 빛의 속도를 뛰어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광속에 가까운 속도에 갇혀 있으면 시간도 상대적으로 천천히 간다. 즉 시간여행자 A가 로켓을 타고 빛의 속도로 이동을 하면 로켓 내에서는 시간지연현상이 일어나 시간이 느리게 가지만, 로켓 외부의 관찰자 B에게는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는 것이다. 이것은 A와 B사이에서 상대적인 측면의 시간여행으로, 진정한 정의의 시간여행에 부합하지는 않는다.
두 번째로, 인터스텔라처럼 블랙홀이나 중성자별, 웜홀처럼 강한 중력을 가진 천체와 이 주변에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현상을 이용한 시간여행방식이 있다. 미래로 이동한다기보다 시간의 상대성을 이용한 것으로, 블랙홀 주변에 있다가 다시 밖으로 빠져나오면, 자신의 시점에서는 얼마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 자신을 제외한 세계는 몇십 년이 지나가 있는 것이다. 또 생체 냉동기술을 통한 미래로의 이동과 같은 방법이 있겠다. 시간지연현상, 중력장을 이용한 시간여행과 마찬가지로 생체냉동기술 또한 상대적인 의미에서의 시간여행이니 진정한 의미의 시간여행은 아니다. 멀티버스 또한 다른 우주로 이동하기에 시간/공간적 공백이 발생하는 것뿐이지 진정한 의미의 시간여행은 아니다. 소개한 모든 방법들은 스토리상 시간여행을 구현할 수 있는 설정상 장치들로, 현재의 물리학적 법칙 내에서 타임머신 패러독스가 해결 가능한 다른 방법이 있다면 알고 싶다.
소개한 모든 방법들은 스토리상 시간여행을 구현할 수 있는 설정상 장치들로, 불편함 없이 스토리를 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준의 궁금증 해소방식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시간여행을 자주 경험하곤 한다. 마치 멀티버스처럼 다른 사람의 생각에 투영하는 경험, 추억이 하나의 거대한 실타래인양 시간과 공간이 과거로 이어진 것 같은 경험은 일상 속에서 물리학적인 법칙과 멀티버스적 상상력을 제하고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좋아하는 사람과 걷던 길을 지날 때, 누군가 아끼는 물건을 만질 때, 유년시절의 추억이 담긴 공간에 있을 때, 우리의 뇌는 시공간을 넘어 향수라는 이름으로 과거를 재현하곤 한다. 영화는 그 속에서 몇 번이고 반복되는 '만약에'라는 염원을 충족시켜 준다. 시간여행이라는 설정에는 이러한 과학적으로 흥미로운 구현방식을 제외하고도 주제의식에 따른 숙명론/운명론, 시간여행 방식에 따른 타임워프/타임리프/타임슬립/타임루프 등의 흥미로운 구분법이 있다. 포스팅에서 다시 다룰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2024년 말과 연초는 모두에게 힘든 시기였다. 그래도 2025 연초가 '만약에'라는 회한이 아닌 몇 번이고 상상의 나래 속 여행을 다녀오고 싶을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라며 포스팅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