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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오전

아이들이 등교한 시간

by 캐서린의 뜰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우리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엄마는 뭘 하며 지내는지.


내가 엄마가 되어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엄마는 뭘 하며 지내셨을지. 매일 점심은 뭘 드셨을지. 아침에 우리 도시락을 싸고 남은 반찬을 드셨을까. 도시락 통에 더는 들어가지 않아 남긴 핑크색 소시지 서너 개나 모양이 안 예뻐 남긴 계란말이의 끝부분 같은. 아니, 그건 내가 어쩜 아침에 먹었을지 모르겠다. 그랬담 멸치볶음이나 콩나물 정도만 남았을 텐데.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남은 시간엔 뭘 하셨을까. 그땐 종편도, 유튜브도 없던 시절이라 10시 반 화면조정 시간 이후 드라마 좋아하는 우리 엄마는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셨을지. 방과 후 교실이나 학원을 다니지 않아 우리의 하교 시간은 꽤 일렀을 텐데 금방 우리를 등교시켜놓고 나면 아직 개지 않은 빨래가 한가득인 채로 우리가 들이닥쳤겠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우리 걱정일랑 접어두고 집안 일 하다가 잠시 커피 둘, 프림 둘, 설탕 셋 커피를 타 드셨을까. 스마트폰이 없었으니 친구와 톡을 하지 못했을 테고 가끔 전화 통화는 하셨을까. 엄마는 긴 전화 통화를 할 때 옆에 보이는 종이에 의미 없는 선을 긋거나 글씨를 겹쳐 쓰거나 하는 버릇이 있는데… 가끔 그런 낙서가 보이면 엄마가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는 흔적인데 그 조차 흔한 일은 아니었으니 남은 시간 엄마의 자취를 이제와 떠올릴 길이 없다.


내가 엄마가 되자 궁금했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내 생각을 하는지. 양심적으로(솔직히라는 의미로 말했겠지. 학교에서 엄마가 생각 안나는 일이 양심을 내세우면서 까지 고백할 일은 아니니) 딸아이는 엄마가 집에서 뭐 하는지 안 궁금하다 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태권도가 끝나고 작은 아이와 돌아오는 길에 난 가끔 난처한 아이의 표정이 귀여워서 잊을만하면 한 번씩 묻곤 한다. 너 오늘 엄마 생각 안 했지? 그러면 작은 사내아이는 그럴 필요가 없는데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큰 눈을 꿈벅이며 태권도 가는 길에 잠깐 엄마 생각 했었다고 애써 기억을 더듬는다. 근데 태권도 도장에서는 엄마 생각이 안 났다고 조금 미안한 마음을 담아 말 끝을 흐린다. 그래, 잘했어. 태권도장에서 엄마 생각하면 당연히 안되지. 태권도할 때는 태권도 생각하는 게 맞고, 학교에서는 수업 들어야지 엄마 생각 하면 그건 딴생각하는 거니까라고 나는 아이를 안심시킨다. 학교에서 엄마가 생각났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을 테니, 엄마를 생각할 겨를이 없는 학교 생활이 외려 고마울 뿐이다.

이제와 몇몇 단편적인 기억들을 헤집어 보면 학교에서 엄마가 보고 싶었던 순간들은 무섭거나 슬프거나 외로웠던 때였으니까. 전학 간 첫날 마침 학교 체육대회 예행연습을 하던 그 오후, 운동장의 누런 흙먼지 속에서 전 학년 학생이 모두 차전놀이에 열을 올릴 때 나만 홀로 사막 한가운데 남겨져 있던 것 같았던 그때 엄마가 몹시 보고 싶었던 그날처럼.


다음 주 이 시간은 아이들의 여름 방학이 시작된다. 집밖에는 매미가 집안에는 아이들이 찡찡대는 소란함과 북적이는 더위속에서 나만의 고요하고 내밀한 오전은 사라지고, 돌아서면 금세 맴맴거리는 아이들을 위해 점심 상을 차려야 할 오후겠지. 당분간 우린 서로를 생각하거나 보고파하지 않을 테다. 징글맞은 부대낌 속에서 절실히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그리워하겠지. 늦기 전에 이번 주 어느 하루, 고요한 정오에 홀로 머물며 사각 쟁반 위에 한 끼 정성스레 차려주는 식당에 가서 혼밥을 해야겠다. 방학 전 맞이하는 엄마의 마지막 오전을, 비장함을 억누르고 담담히 누려봐야지.



*모든 사진은 핀터레스트에서 빌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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