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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현 Jan 27. 2024

퇴원

최고의 선택을 선물한다는 것

“선생님~ 저 오늘 퇴원해요! 드디어 집 갈 수 있다고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동남권 원자력의학원에서 동계 서브인턴십 프로그램을 한지 벌써 7일째이다. 예과 1학년 때 단국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로 서브인턴을 2주간 다녀온 후 실제 임상 현장을 체험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임상에서의 영감을 얻으면서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하며 살아갈지 계획할 수 있어, 내 미래를 그려볼 기회를 꾸준히 가져야겠다고 다짐해 예과 2학년을 마치고 이번 겨울방학 때 또다른 서브인턴을 하러 이곳으로 왔다.

실습 5일차 금요일,

금요일 오전에 교수님을 따라 혈액종양내과 회진을 하러 갔다. 암 환자만 치료하기에 외과보다 더 힘들고, 돌어가시는 환자분들을 가장 많이 보는 과 중 하나라고 매체에서 많이 접해 들었다. 회진을 가기까지 걱정이 많이 되었다. 너무 아파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고통으로 침상에서 누워계시는 환자들의 힘듦이 병동 전체에 안개처럼 퍼져있을 줄 알았다. 그런 분들을 뵈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서 일종의 회피 기제로 혈액종양내과 환자들을 보는게 썩 내키지는 않았다.

병동으로 들어가 첫 환자를 맞이했다.

항암제를 투여하여 물을 마시지 못해 입이 건조하다며 힘들어하시는 환자와 옆에서 간병하고 있는 딸로 추정되는 보호자도 지쳐있지만 억지로라도 안간힘을 써 정신을 바짝 차리며 버티시는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었다. 그런 환자분께 상냥하고 친절한 목소리로 잠은 잘 잤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곧 집에 갈 수 있다며 따뜻하게 말씀해주시는 교수님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생각했던 것보다 덜 침울한 분위기의 병동은 교수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로 만든 것 같았다. 계속해서 20명의 모든 환자들께 정성을 다해 소통하며 회진했다.

이번에 본 환자는 긴 시간 동안 항암치료를 받고 상태가 호전돼 내일 퇴원하시는 분이었다. 내일이면 퇴원할 수 있다는 말에 어린 아이처럼 해맑게 좋아하시는 환자분을 보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환자분,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힘차게 잘 버텨준 덕분에 내일 퇴원하시는 거에요. 우리가 언제부터 치료했었죠? 작년부터 시작해서 딱 1년 됐네요. 앞으로 이제 외래에서 봐요.”

“교수님께서 저를 잘 치료하고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께서 더 수고 많으셨어요. 이제 퇴원한다니깐 그냥 좋기만 하네요.”

두 사람 사이에서 대화가 오간 사이 내 눈은 꽤나 젖어있었다. 우리가 지난 1년부터 치료해 이제 집에 간다는 말, 서로에게 수고했고 고맙다는 말을 듣자마자 눈가가 촉촉해졌던 것 같다.

병실에서 나와 다른 병실로 회진하러 가다가 한 환자가 어린 아이처럼 교수님을 향해 해맑게 뛰어 오시며 말씀하셨다.

“선생님, 저 오늘 퇴원해요! 드디어 집 갈 수 있어요! 그동안 너무 감사했어요.”

콧대를 따라 손으로 마스크를 올리는 척 하며 계속해서 나오는 눈물을 닦았다. 병원에서 오랜 기간의 입원을 마치고 퇴원하는 것으로 행복해하는 환자를 보니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긴 시간을 함께 하며 든 정으로 이별하기엔 아쉬워 마냥 좋아하지만 않는 모습을 보니 마음 속이 착잡해져갔다.


​​

오늘 회진을 하며 느꼈다.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길 참 잘한 것 같다.

암에 걸렸다는 절망감으로 삶을 포기하기 직전의 사람들이 한줄기 희망을 갖고 나에게 찾아오면, 오랜 시간동안 내가 직접 보살피고 함께 동고동락하며 치료한다. 상태가 호전되면 퇴원이라는 기쁜 소식을 들고 찾아가 다시 일상으로 보내드리는 암 전문의. 퇴원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눈이 희번득해지고 그 말을 듣는 날만을 기다리는 암 환자들에게 삶의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의사가 되리라고 다짐했다.

지난 외상센터의 실습 때 외상 뇌출혈 응급 수술로 환자를 직관적으로 살려내는 뇌혈관외과 전문의의 매력에 빠졌는데 이번에는 뇌종양외과 전문의의 모습에 반했고 앞으로 이 일을 반드시 하며 살고 싶다고 마음 먹었다. 더 건강히, 오래 살고 싶어 자신의 목숨을 나에게 맡겨주시는 암 환자들을 위해, 신경외과 뇌종양 전문의가 되어 손으로 치료하는 의술만이 아닌 따뜻한 말과 마음으로 함께 치료하는 의사가 되리라고 굳게 결심하고, 힘차게 나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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