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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숨날숨 Mar 17. 2024

내가 교수가 되고 싶은 이유

힘 있는 목소리로 세상에 선한 변화를 이끌고 싶어서.

오늘은 내 꿈이 변질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긴 이야기를 적고자 한다.


나는 'WHY'병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나는 내게 질문이 많았다.


나는 왜 살고 싶은지

그런 사람이 왜 되고 싶은지

이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이 사람이 왜 좋은지


직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나를 보고 주위 사람들은 왜 그렇게까지 생각하냐며 그냥 돈 벌기 위해 하는 거 아니냐며 말했지만,

내겐 그 이상의 의미가 필요했다.


내가 처음 간호학과에 온 건

문과 출신으로 격한 취업 준비를 겪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입학할 때, 간호사로서 내 꿈은 '정신전문간호사'가 되는 것이었다.

(아 물론, 지금은 아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건 확실히 다르다.)


이유는, 훗날엔 얘기하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심리학 책을 많이 좋아했고(윤사를 좋아했던 건 덤)

유년기 때 나의 결핍과 상처들을 메꾸는 데 헌신하는

10대와 20대 초반을 보냈기 때문에,

나를 더 치유해주고 더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남이 아니라 나를 위한 꿈이었다.


그렇게 1학년을 알차게 보낸 후,


나는 2학년 때 한 번의 위기가 왔다.


간호학과에선, 교내 실습이라고 기본 간호술을 익히는 시간이 있다.


해당 수업이 너무 지루했고

이걸 왜 배워야하고

궁금한게 없어하는 나와 달리

열정적인 동기들을 봤을 때,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걸까 하는 의심이 많이 들었다.

다시 한 번 반수를 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갔었다.


그리고 나의 성품에 대한 의심을 멈출 수 없었다.

간호사에 대한 당시 나의 직업관의 키워드는 다음과 같았다.


'봉사','희생', 그리고 이를 통해 느껴지는 '뿌듯한 감정'


정신전문간호사라는 꿈도 결국은, 나를 위한 것이었기에 이 3가지를 모두 갖추지 않고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고 당시 나의 성품을 시험해보고자 위시엔젤 봉사활동, 농촌의료봉사활동 등에 참여했었다.


그 경험들을 통해, 내게 직업관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이는 곧 내가 줄곧 브런치에서 얘기했던

'효율적 이타주의자'의 삶을 살겠다는

현재 나의 삶 가치관 중 하나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대망의 병원 첫 실습을 나간다는 3학년이 됐을 때,첫 병원 실습을 너무 좋은 곳을 갔었기에,

타 동기들과는 다르게 실습 후 간호사를 해야겠다는 첫 결심을 했었다.


이때까지도, 환자들에 대한 공감보단

skill만 배운다고 생각했던 간호학과 학문의 쓰임을

직접적으로 관찰하는게 너무 재밌었고

더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기도 했었다.


학과에 맘을 붙이기 위해 당시,

학교에서 제공해주는 '학부 연구 인턴생 모집'이라는 기회에 교수님의 추천을 받아 지원했었다.


해당 기회는, 간호학과 보단 타 이공계 친구들 및 자연계 친구들을 위한 기회였고 한 번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도전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지도 교수님은 내게 자신의 학부 연구생을 해보지 않겠냐며 기회를 주셨다.


뭘해도 공부하고 싶은 의지는 강했던 터라 대학원은 꼭 가겠다고 결심했기에, 교수님이 주신 소중한 기회를 덜컥 잡았다.


그리고 이는 곧, 내게 연구를 꼭 하겠다는 결심을 심어줬었다.


해당 연구를 통해 실험자분들에게서 좋은 결과가 도출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을 때,

내가 알지 못하던 것을 알고 나의 why병을 해소할 수 있는 그 연구라는 것에 큰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교수님을 따라 대학원생들의 세미나에 참여하며

임상에서 오래 일한 선생님들의 세미나 발표를 뒤에서 몰래 청강할수록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간호 임상에 대해

처음으로 긍정적인 시각을 갖출 수 있었다.


간호에서 무슨 연구일까라고 했던 내 생각이

바꼈던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해당 경험으로 동기들과 작게 모여

학과 축제인 학술제에 참여하며 소논문을 발표했을 때,

내가 무슨 길을 가던 연구는 꼭 하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당시 주제에 걸맞는 해결 방안까지 조사했었는데,


연구는 선한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이라 느꼈고

그 순간들이 너무 재밌었다.


나는 미지에 대해 알아가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군아를  느꼈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교수님이 직접

교수의 길을 권유했을 때, 미국 대학원을 가는 것도 추천하였을 때 내가 감히 꿔도 괜찮은 꿈일까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내 꿈에 대해 자신있게 발설하는 걸 부끄러워 하는 편이다.


내가 그 꿈에 걸맞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때, 말하기가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성향적으로 염세주의적인 면모가 있었던 터라, 내 꿈에 대해서도 대단히 회의적이었다.


그렇게 4학년이 됐을 땐,

미국 대학원에 간다는 두려움과

취업 준비를 하며 내가 정말 간호사를 하고 싶은게 맞는지에 대해 깊은 고민이 들었었다.


그리고 2023년, 작년 간호법이 부결되면서

간호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회의적인 면모들이

왕창 터져버렸다.


내 자소서를 읽던 타 분야 대학원생 친구가

너의 직업이, 희생과 봉사를 당연시 여기는게 안타깝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던 거 같다.


적지 않은 경험을 했지만,

나도 MZ라 내 속내는 그런 희생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나이가 어릴 때, 도망가고 싶었기에

경찰대 편입 준비도 깔짝거렸고

약대 편입 준비도 깔짝거렸다.


바뀌지 않겠군아.

봉사/희생에 대한 존경은 바라지도 않겠지만,

정말 바라지도 말아야 할 것이었군아.

라는 소란스러운 감정이 터져버린 것만 같았다.


꾸역꾸역 간호에 맘을 붙이기 위해 노력했었는데,

이를 확실히 부정하고

그 모든 경험과 가치관을 잊고 간호를 부정하는 몇 달을  보냈었다.


그러나 그 때,

간호계에서 한 자리 한다는 교수님들이

직접 간호법 제정을 위해 힘 쓰는 모습을 보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후배들에게 간호법 제정을 아직 하지 못한 것에 대해

교수님이 직접 '미안하다'라는 표현을 쓰셨을 때,

내가 이 길에서 어떤 기여를 해야할지

생각을 정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경험에 남는 실습을 통해

내가 몰래 일기장처럼 적은 블로그들을

다시 정독했을 때,

그 때 환자들과 겪었던 소중한 마음들이

다시 떠올랐었다.

당시 남겼던 글


그리고 나는 내 동기들만큼

열심히 살고 공부하고

봉사심이 넘치고

인간성이 넘치는 친구들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고등학교 시절보다

대학교 시절이 더 편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나는 간호사를 추천한다는 글을 썼지만

아직 대한민국의 간호계는 바껴야 할 것이 많으며

나아갈 곳이 많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사는 내 친구들이 그리고 나도,

간호사 생활 답이 없다가 아닌,

그럼에도 의의를 느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그리고 내 길을 따라올 후배들에게 좀 더

좋은 세상을 주고 싶기에,


이 분야에서 끝을 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세상에 좋은 변화를 주기 위해선, 공부도 공부지만

목소리에 힘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즉, 교수가 되고자 한 이유는


연구와 탐구력이 넘치는 내 성향을 고려한 이유가 첫 번째이며,


그 다음은 세상에 좋은 변화를 다방면으로 이끄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간호 박사 과정이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Ph.D와 DNP로 박사과정이 나누어 진다.


전자는 간호 이론을 후자는 간호 임상 연구 쪽에 더 중점을 둔다.


요즘 간호계는 EBP가 가장 큰 화두에 오르고 있다.

그리고 발전하는 기술에 따른, 디지털 헬스케어는 덤.


재작년 지도 교수님의 연구도 이 디지털 헬스케어를 활용한 연구였고

현재 나 또한, 디지털 헬스케어를 활용한 간호 연구를 통해 임상에 좀 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다.


간호가 연구를 해봤자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해 본 세상에서 연구 분야는 다양했다.


그리고 나는, 임상 경험 없는 간호사는 간호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DNP과정을 목표로 잡고 있다.


이를 위해, 우리보다 더 발전한 기술과 연구 자본이 튼튼한 미국에 가 경험치를 늘려야만 하고


이를 토대로 대학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100% 그 이상이다. 그리고 내가 타 국가로의 간호사를 생각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졸업 후 내가 간호사 임상에서 오래 버티는 건 나의 목표에 대한 과정에 해당한다. 왜냐면, 난 임상에서의 변화를 이끌고 싶어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목표에 대한 당연한 과정은 내가 일을 할 때

큰 버팀목이 되어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내 전공에 대한 목표를 가질 수 있었다.


세상을 좋게 변화하는 데 기여하여

세상을 보호하는 사람(아 참고로 나는 보수 지지자는 아니다.오해할까봐,,)이

되고 싶다는 건

내 직업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내 인생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오늘 이 글은 내가

인종차별과 치한, 그리고 언어장벽이라는

힘든 요소들을 다 고려해서라도

겁을 내지 않고 도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쉽지 않은 길인 것도 알지만

쉬운 것만 찾고 안정감을 추구하는 인생을

살며 경험치를 줄이는 건

내가 원하는 '나'의 삶이 아니기에,


생각이 많다보면 계속 제자리에 발 묶여 있는 것이기 때문이에 미쳤다 생각하고 도전하고 절망하고 또 행복해하면 된다.


절망과 여유, 행복은

도전하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이전 STP전략의 글에서

이 과정까지 약 10년을 보고 있다고 했었다.

10년 후의 내 삶에서,

난 여전히 과정에 있을지

슬슬 변화를 이끌고 있을지

나에 대한 기대감이 넘치는


그런 자기애가 넘치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 글을 적는 본질적인 이유는

내가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 마음을 다시 일깨워줬던 나의 일기들 처럼

내가 나의 마음을 잊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솔직한 글을 적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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