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벅선생 Jan 04. 2024

이유 없는 우울증은 없다

우울증에 걸린 이유

우울증이 심각할 당시에는 정말 사소한 이유로도 금방, 통제할 수 없는 우울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심지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머릿속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곤 했다. 하지만 내가 원래 그런 성향이었던 것은 분명히 아니다. 난 원래 꽤 긍정적이고 감정 기복이 크지 않은 편이었다.


나의 가정환경은 좋지 않았다. 밥을 굶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가난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부모는 자주 말다툼을 벌였고, 아버지는 자주 술에 취한 채 귀가해 큰소리를 냈다. 그렇지만 나는 그와 별개로 책을 좋아했고, 공부를 곧잘 했다. 학원 같은 곳에 다닐 돈은 없었지만, 학교 공부가 어렵지 않았고, 친구들은 나를 '공부 잘하고 조용하고 착한 아이'로 생각했다.

나는 아마 공부를 잘한 덕분에 꽤 자존감 높고 긍정적인 상태로 학창 시절을 보낸 것 같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가난했던 우리 집이 더욱 가난해졌다. 그런 것도 모르고 나는 사립대학에 들어갔고, 첫 등록금은 엄마가 이모에게 빌린 돈으로 해결했지만, 1학년 2학기 등록금부터는 아빠와 함께 무슨무슨 캐피털이라는 곳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했다. 지금이야 네이버에 검색하면 많은 정보가 나오고, 유튜브엔 그무엇에 대해서든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당시에 나는 스무 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배운 것 말고는 누구에게 무엇도 배울 기회가 없었으므로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의 상태였다. 그저 학교에 다니기 위해 아빠가 시키는 대로 그것이 무슨 행위 인지도 모른 채 대출 서류에 서명을 했다.


그러고 나서 2학년 2학기부터는 아예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아빠가 첫 학자금 대출 이후 내 신분증과 도장을 가지고 이런저런 캐피털을 여러 곳 찾아가 많은 대출을 받았다. 아빠는 초등학교 공부 말고는 어떤 공부도 해본 적이 없고 컴퓨터도 잘 다룰 줄 몰랐지만 용감무쌍하게도 내 학자금 대출금을 가지고 주식 투자라는 이름의 도박을 감행했다. 그렇게 내 이름 앞으로 어느새 5천만 원이라는 빚이 생겨 있었다. 2001년, 2002년의 일이다. 그 당시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당시에 나는 어떻게 그렇게나 무지했는지 모르겠다. 나한테 5천만 원이라는 빚이 생겼다는 것도, 내가 신용불량자가 되었다는 것도 나는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았다. 그렇게 나의 삶은 몇 년 사이 나락으로 떨어진 듯했다. 나는 신용불량자가 된 것보다 (더 이상의 학자금 대출이 불가능했으므로) 학교에 다닐 수 없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슬펐다. 그렇다면 내 공부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내 취업은, 내 미래는, 내 꿈은,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건지 도대체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고시원 방에 살며 갖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이마트에서 일했고 그다음엔 고속버스 터미널의 커피숍에서 일했고 학원 교재를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은행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했다. 돈을 아끼려고 참치 하나 또는 김 한 봉 사서 고시원 밥통에 든 밥과 함께 하루에 한 번만 배를 채웠다. 한 번은 은행에서 전단지를 자르다가 손가락을 커터칼에 크게 베였다. 하지만 고시원 침대에 누워 붕대 감은 손가락을 바라보면서도 나는 울지 않았고 언젠가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다리에 화상을 입어 응급실에서 처치를 받은 바로 다음날에도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놓칠까 한쪽 다리에 붕대를 감고 목발을 짚은 채 은행에 일하러 나가면서도 나는 울지 않았다. 나는 그래도 꽤나 긍정적이고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처음 우울증이라고 할 만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몇 년 만에 아빠에게 처음으로 빚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날이었다. 자꾸만 집으로 날아오는 빚 독촉장에는 자꾸만 새로운 빚이 추가되고 있었기에 나는 큰 용기를 내어 아빠가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갔다.(그렇다, 아빠와의 대화는 언제나 내게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아빠, 이런 게 자꾸 날아오는데 도대체 빚이 얼마인 거예요? 빚이 얼마인지라도 알아야 갚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빠는 "내가 어떻게 알아?"소리치며 버럭 화를 냈다. 그것은 정말이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그순간 아마 나는 요새말로 멘털이 붕괴되었던 것 같다. 내가 아무리 무지한 어린애였어도 그 대답은 정말로 부당하다고, 아빠가 나에게 이래서는 안 된다고 느꼈다. 사과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설명은 해 줄 줄 알았는데... 그제야 나는 화가 났고, 무너졌고, 죽고 싶었다. 그 이후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빠는 물론 가족 누구에게도 그 일에 대해 위로를 들어본 적이 없고 그 빚은 오로지 나만의 문제였으며 바로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시련이자 우울증의 시발점이었다. 아빠가 내게 화를 낸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우지끈 소리와 함께 부러져버린 것 같다. 미안하다는 한 마디만 들었어도 그렇게 아픈 세월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모든 것을 용서했고 아빠를 미워하지 않지만, 그 빚을 다 갚은 10년 후까지 이 일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할 정도로 나는 아주 많이 아팠다.

작가의 이전글 우울증에 걸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