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다녀온 함부르크 출장은 내 인생에서 평생 잊지 못할 출장이 되었다.
함부르크에 가면 줄곧 중앙역 근처에 호텔을 잡곤 한다. 이번에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전에 세 번정도 묵었던 호텔에 예약했다. 숙박 첫날, 나는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커피를 늦게 마신 탓인지 자꾸 뒤척였고, 잠자리가 뜬 탓인지 몸이 근질거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근질거림이 두 번, 세 번 반복되자 느낌이 이상했다. 불길한 예감에 불을켰고 침대에 있으면 안 될 것들을 발견했다. 바로 말로만 듣던 그 악명 높은 '베드버그(빈대)'였다. 심지어 한 두 마리가 아니었다. 작은 새끼부터 통통한 성체까지 대충 봐도 약 10마리, 이건 하루이틀 사이에 생긴 크기나 양이 아니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바로 리셉션에 연락했다. 직원은 '그럴 리가 없는데..'라는 말을 연발하며 방을 바꿔주었다. 그리고 새 방에서 또 빈대를 발견했다. 그렇게 나는 약 3시간 동안 방을 두 번이나 바꿨고, 방을 바꿀 때마다 샤워를 다시 하고, 옷을 빨았다. 세 번재 방에 들어가서 상황이 일단락된 시각은 새벽 4시 반이었다.
너무나 지치고 스트레스가 극심한 나머지, 마지막 방은 이상이 없었으나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다음날 리셉션 직원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클레임 및 조기퇴실과 환불을 요청하러 내려갔다. 하지만 직원들은 리셉션 바로 앞에 서있는 나를 마치 유령취급했다.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그렇게 20분쯤 지났을까, "오늘 숙박료 환불 했으니까 퇴실하세요."라는 짧은 말을 던졌다. 참다못한 나는, "고객인 내 말은 하나도 듣지 않고 바로 환불얘기를 하냐, 어제 그 일 때문에 잠을 못 잤으니 어제 숙박료도 함께 환불해 달라"라고 했다. 얼굴 표정 하나 안 바뀌며 내 말을 들은 직원은 "지배인이 9시 넘어서 출근하니 그때까지 기다리든 메일을 쓰든 알아서 하라"고 했다. 이 상황이 벌어지는 동안 '미안하다'는 사과는 밤에 방을 바꿔준 파트타임 직원에게 지나가는 말로 딱 한 번 들었다.
호텔 지배인에게 메일을 넣어두고, 나는 먼저 함부르크 보건당국(보건청)에 상황을 알렸다. 보건청에 공식 해충 담당 부서가 있고 베드버그를 신고하라는 안내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메일을 받은 해충부서는 "우리 담당이 아니"라며 감염부서에 넘겼다. 감염부서는 "베드버그는 그냥 기분 나쁜 벌레일 뿐이다. 방이 감염된 것이지 사람은 감염된 게 아니고 물린 것일 뿐"이라는 신기한 말과 함께 24쪽 분량의 <베드버그 안내서>를 첨부파일로 보내주었다. 그리고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아. 독일식 일처리의 전형이다. '방이 감염되었다'는 논리면, 세상 모든 바이러스도 장소가 감염된 것이고, 사람은 감염된 게 아니라고 할 건가? 본인이 직접 물렸어도 그저 '개인적인 사정'으로 치부했을 것인가?
보건청의 대처에 매우 실망한 나는 일단 다른 투숙객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구글에 리뷰를 올렸다. 그리고 호텔 독일지사에 메일을 썼다(베드버그가 나온 호텔은 전 세계에 지점이 굉장히 많은 체인호텔이다). 내가 이런 액션을 취하는 동안 호텔에서는 어떠한 연락도 없었다.
그렇게 3일이 흘렀고, 모르는 곳에서 메일이 한 통 왔다. 호텔 지배인이었으며, 그는 내 전화번호를 물었다. 꼭 전화로 설명해야 한단다. 드디어 사과를 하려나 보다는 생각으로 나는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지난 숙박 기간 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 사과하고 설명하려고 전화했습니다."라는 지배인의 말로 시작된 전화는 45분이나 이어졌다.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라고 할 줄 알았지만 그의 태도는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아래 나오는 대화는 길이상 요약되었다는 걸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바란다.
"당신이 머물렀던 3개의 방을 방역업체를 불러 확인한 결과, 첫 번째 방에서 베드버그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생긴 지 얼마 안 된 것이었다. 우리 이런 일 처음이다. 네가 숙박하기 전날까지도 아무도 클레임 하지 않았다. 두 번째 방은 베드버그가 아니라 좀벌레였다. 네가 잘못 본 거다. 그리고 세 번째 방은 완전히 깨끗했다. 우리가 결론적으로 문제없는 방을 제공했으므로 원래는 둘째날 숙박료를 환불해줘야 할 이유가 없다. 규정을 위반하면서까지 환불해 준 이유는 니 상황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거짓과 진실을 교묘히 섞고, 약간의 가스라이팅을 더하여 사건의 책임을 은근히 고객에게 미루는 <전형적인 독일식 대화법>이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네가 숙박하기 전까지 클레임 없었다"는 말은 곧, "네가 벌레를 들고 온거 아니냐"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의 말이 명백히 거짓인 이유는, 방에서 발견된 베드버그는 결코 얼마 안 된 게 아니었다. 크기가 손톱만 한 게 최소 8마리 이상이었고 이 정도면 벌레가 생긴 지 적어도 한 달 이상 되었다는 소리다. 또한 나는 모든 물건을 책상에 펼쳐놓을 수 있을 정도로 짐이 적었고, 방에 도착하자마자 옷과 캐리어를 닦은 후 짐을 풀었다. 또한 샤워하고 잠옷을 입기 전까지는 침대에 앉지도 않았다. 두 번째 방의 벌레가 좀벌레라는 말도 거짓이다. 좀과 베드버그는 생김새가 180도 다르다. 저런 말을 할까 봐 사진도 찍어두었으며 단언컨대 좀벌레가 아니었다.
나는 이러한 내용을 말하며, "당신 같으면 벌레가 득실대는 방에서 자고 싶겠냐. 환불은 성의가 아니라 당연한 절차이고, 잠을 못 자고 일정이 변경되어 신체적, 정신적, 여행에 피해를 입었으니 첫날(벌레 나온 날) 비용도 당장 환불하라."라고 덧붙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미 두 달 전에도 베드버그가 나왔다고 리뷰를 적은 외국인 고객이 있었다. 즉, "처음이다"라는 말도 거짓이었던 거다.
그리고 이어진 지배인의 발언은 더 기가 막혔다.
"나는 호텔업계 비즈니스에 오래 몸담아온 사람이다. 모든 비즈니스는 파트너십 그리고 기브앤테이크다. 호텔과 고객도 이러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내가 너한테 첫날 숙박료를 환불해 주면, 너는 구글 리뷰를 지워라. 그러면 내 입장에서는 매우 fair(공정한) 거래다."
지배인의 전화를 받기 전 나는 실제로 이러한 대화를 상상했다.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서비스업에서 고객이 입은 심각한 손해를 얘기하는데, 설마 리뷰 가지고 고객이랑 딜을 하려고 할까. 그 정도로 바닥은 아니겠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 일이 벌어진 것이다. 독일에선 목소리를 키우거나 인맥을 내세우는 식으로 싸우는 건 아무 소용없다. 상대가 자신의 의견을 결코 관철시키지 못하도록 따박따박 대응해야 한다.
"당신의 제안은 결코 fair 하지 않다. 나는 고객이고, 고객으로서 실제 겪은 일을 리뷰에 적는 건 엄연히 내 권리다. 리뷰는 공익을 목적으로 어떠한 비난이나 욕설 없이 100% 사실만을 적었다. 나는 당신 호텔에서 명백히 피해를 입었고, 이에 대해 환불을 요청하는 것도 정당한 행위다. 병원비와 벌레로 인해 버린 물건들의 손해배상도 말하고 싶지만 일단 숙박료부터 환불하라."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어떻게든 나를 설득해서 리뷰를 지우게 하려고 긴 연설(?)을 이어갔다. 자기 자녀 학교에서 유행하는 머릿니 얘기부터(독일 학교에선 지금도 주기적으로 머릿니가 유행한다), 방역업체가 해준 말, 베드버그의 특성 등등. 그는 ohne Punkte und Komma(마침표와 쉼표 없이) 말을 끊지 않았다. 내가 들어야 할 말은 "죄송하다" 한마디인데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말꼬리 늘리며 잘못을 회피하는 독일식 대화법을 이미 많이 겪어봤지만 정말이지 그럴 때마다 진절머리가 났고, 이번에 그 정점을 찍었다.
"당신이 사과하고 방역조치한 내용을 추가해줄 수는 있지만 리뷰는 절대로 지우지 않겠다"는 내 말에 그는, "지워주면 매우 고마울텐데 수정이라니 Schade(아쉽다)"는 표현을 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첫날 숙박료의 환불을 기다리는 중이다. 리뷰를 안지워서 앙심을 품고 환불을 못 받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지우지 않을 것이다. 고객을 베드버그 가져온 범인으로 몰아가는 것도 모자라, 돈 몇 푼에 리뷰나 지워주는 사람으로 만들려는 호텔은, 서비스는커녕 고객응대 자체를 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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