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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석 Dec 31. 2023

이젠 사라져 가는 물건

옛시대의 유물 - 칠판

2023년 12월 29일로 아이들과 만남은 이젠 안녕이다. 34년의 교직 마무리 한다. 정년까지 가르침을 하고 싶었으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정년 4년 놔두고 명예퇴직을 한다. 


교직 생활 처음 공문을 전동타자기로 쳐서 홀타에 보관하다가 하나문서가 나오더니 새로운 시스템인 네이스로, 지금은 업무포털로 모든 업무나 기록사항들을 컴퓨터에 저장한다. 정말 빠른 세상이다. 학교는 인터넷의 기반으로 연결된 컴퓨터로 교육과 업무의 주체로 자리를 잡았고 인터넷이 없으면 수업이 안될 정도로 교육에 주요 요소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AI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나는, 칠판에다 색분필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려가며 문자와 셈하기를 가르쳤던 자칭 신석기시대의 교사로서의 삶을 살며 변화하는 첨단교육(?) 흐름에 맞추며 살아왔다. 신세대 교사들은 컴퓨터 및 기자재들, 인터넷 자료들을 두려움 없이 잘 찾아내고 다루며 수업을 해 나가고 있지만, 난 기계에 대한 부담감으로 구시대 유물인 색분필과 흑칠판을 이용하여 기계적인 요소를 대체하여 교육하고자 했다. 


 동굴이나 바위 벽에 새겨 놓은 그림들이 구석기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의사소통 방식이였다면, 색으로 흑칠판에 펼쳐진 그림이나 글, 숫자들의 흔적들은 아이들과 배움의 소통 방식이었다. 문자가 존재하지 않았고 잘 몰랐을 당시 신석기시대의 인류에게 문자나 컴퓨터를 이용하여 소통을 시도하고자 했다면 그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색을 이용 벽에다 그림을 그려 놓았을 때 그 그림을 보고 상황을 이해하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였는지를 알았을 것이다.  


 신석기시대의 인류 의식과 비슷한 7-14세 시기의 아이들 주요 배움의 소통요소는 "색"이다. 바로 색을 통해 아름다움을 느끼며 "색"을 통해 "느낌" 이 일어나고 느낌이 생각으로 이어졌을 때 배움과의 소통이 일어난다. 


동굴벽화에 나타난 그림 방식을 배운 인류는 또 다른 곳에서 삶의 흔적을 남겨 놓아 살았가듯  모든 글씨와 그림은 굵은 색연필과 넓적 색 크레파스를 이용하여 공책에 그림적으로 기록하며 배움을 이해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아이들은 배움을 이해하며 살아간다.


 동굴벽화의 그림 그린 전달자는 벽화를 보고 의미를 전달하려면 아주 진지하게 표현해야만 했다. 마찬가지로 칠판그림에 담겨야 할 내용을 교사는 신중하게 상상력 있게 표현해 내야만 했다. 그날 수업에 대한 모든 것이 포함되어야 했기에 흑칠판에 공들이는 시간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칠판에 풀어낸 교사의 모든 것을 통해 아이들은 상상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도 쓰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낸다.


올해 학교는 학급마다 전자 칠판이 들어온다. 굳이 선생님이 칠판에다 무엇을 표현하고 글을 써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 없다. 인터넷에는 그림이나 자료들이 널려 있고 이는 어떻게 이런 자료를 찾아 제때 잘 보여줄까만 고민하면 된다. 신석기시대의 의식을 가진 인류는 훌륭하게 그려진 동굴벽화의 아름다운 그림을 보고 감탄했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선생님에 의해  아름답게 표현된 그림이나 글을 본 아이들 또한 감동하며  더 잘 배우려 할 것이다.


이젠 사라져 가는 칠판. 아이들은 수만 개의 불빛이 내뱉는 화면 속에 비치는 지성적인 것들을 그저 들여다볼 뿐... 배운다는 것이 이런 건가 하며 실망을 하며 배움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흑칠판은 신석기시대의 자료가 되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그런 신석기시대의 자료였던 칠판과 분필 그리고 선생님의 수고와 상상력으로 빚어진 내용들을 더 좋아하며 기뻐한다는 사실. 세계 모든 아이들의 공통점일 것이라 생각한다.   


학교는 천천히 변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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