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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고등 엄마의 자아 성찰

엄마 학원은 어디 없나요

by 다독임

어수룩한 모양새로 교복을 입고 중학교 입학을 한 아이는 이제 두 달 후면 졸업이다. 지난주에는 중학교 마지막 지필고사가 끝났고, 다음 달이면 고등학교 지원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비장한 각오로 아이의 학업 성취를 위해 두 주먹을 불끈 쥐던 초보 학부모도는 어느덧 예비 고등의 문턱에 서 있다. 학교 설명회, 입학 설명회 소식에 괜스레 싱숭생숭한 요즘이다.


공부는 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는 신념, 잘하면 좋고 못해도 상관없으니 네 좋을 일을 찾으라는 배포-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서서히 희미해지고 있다. 대입이라는 현실적 관문에 가까이 다가가기 때문이리라. 빵빵한 정보력도 없고 일이 백만 원 호가하는 사교육 뒷바라지도 부담스러운 나는 가끔 초라함을 느낀다. 점점 더 벌어지는 사교육 격차 뉴스를 보면서 씁쓸함을 느낀다. 노후를 저당 잡아 학원비로 쏟아붓는 이들의 한탄을 들으면서도 가끔은 그 마음이 이해된다. 아, 우리 애는 좀 밀어붙이면 잘할 것 같은데?!


입시를 앞두고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명목 하에 무수히 안내 문자가 쏟아지고 있다. 겨울방학 준비를 알리는 학원 문자들을 한번 힐끗하며 확인하지만, 섣불리 차단하지 않는 이유는 언젠가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일 것이다. 일종의 점검과 확인을 위한 통상적 절차로써 레벨테스트를 봐야 한다는 합리적 결론에 이르지만, 이 결과를 불쏘시개 삼아 마침내 불안의 불씨가 활활 타오를 걸 알고 있으므로 실행에 옮기진 못한다. 요즘 세상물정 입시현실 하나 모르는 엄마라 해도 할 수 없다. 내 딴엔 지금까지 지내온 게 최선이었으니.


지난 주말에는 대입과 고등 학업에 대한 정보를 얻어보자 싶어 한 학원 설명회를 다녀왔는데, 역시 기가 죽고 말았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하면서 들었지만 후반부 학원 강의 소개에서 나도 모르게 귀가 얇아지는 것은 불가항력적이었다. 같이 참석했던 엄마는 국, 영, 수 수강에 방학에는 풀코스 윈터 스쿨까지 등록할 기세였다. 뭐 그게 정답이 아닌 걸 안다. 하지만 왠지 그렇게 하면 도움이 될 것 같은 희망 회로가 가동되기 시작하면 웬만한 정신력 아니고는 벗어나기 쉽지 않다. 그래도 그 집 아들보단 우리 애가 좀 더 잘한다며 속으로 자존심을 세워보지만, 사실 부러운 마음이 조금 들었다. 그냥 아이와 상관없는 나만의 자격지심 속에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앞날의 상황 속에서 나는 지지리 궁상을 떨었다. 다 학원의 상술이고 괜히 애들을 볼모 삼아 돈을 번다는 남편의 말에 "옳지"하며 이성의 끈을 잡다가도, 왠지 모르게 갑자기 서운하다.


이런 자괴감 수렁에 빠진 내가 한번 더 휘청했던 것은 어제 아들 담임과의 통화였다. 다음 달 고입 선택을 두고 의견을 듣고자 전화상담을 신청했었다. 나름 모범생이어서 별다른 소리를 잘 안 들어온 고슴도치 학부모는 어제 마음이 몹시도 쓰리고 아팠다.


학교라는 사회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제삼자 담임 선생님의 시선은 엄마의 눈과 사뭇 다르고 객관적이었다. 또래보다 의젓하고 예의바르다는 것은 또래의 장난기 많은 아이들과 때로는 선을 긋는 태도가 되었는데, 그 선은 보이지 않는 경계가 되어 아이들과 잘 섞이려 하지 않는 성향으로 나타났다. 본디 저와 맞는 소수의 친구와만 어울리는 아들의 성향은 가끔 걱정스러웠지만 내향형 아빠를 닮아 그러려니 했다. 강한 책임감과 우직한 소신은 때로는 분노 폭발로 나타났고 타인의 부족함을 여유롭게 봐주지 못하는 꼬장꼬장함이 될 때도 있는 것 같았다. 이번 학기 생애 처음으로 반 회장이 되어 기특하고 자랑스러웠는데, 리더와 독재자의 차이를 구분 짓는 아량과 융통성이 부족한 것도 알았다. 학원을 안 다니고도 혼자서도 잘한다는 자기 주도력과 자부심은 어쩌다 보니 과한 자만으로 이어진 허세처럼 보이기도 했다. 성적도 살짝씩 우하향.


그동안 내가 생각해 온 아이의 장점이 어느 곳, 어느 순간에서는 단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아이의 좋은 점만 보느라 부족한 점은 차마 보지 못했거나 애써 외면하려 했던 나를 마주했다. 아이의 장점들을 학업의 면모로만 투사하며 스스로 만족하지 않았었나. 아직 한창 마음이 자라고 있는 아이에게 자꾸만 보채고 실망하고 욕심부렸던 나의 모습도, 결국은 대입과 학업을 걱정하며 아이에게 압박을 넣는 내가 참 별로라고 느껴진 날이었다.

뭐 갑자기 심각해질 게 뭐 있나, 우당탕탕 이런저런 시행착오도 겪으며 자라는 거지 싶으면서도 어딜 가든 사랑받았으면 하는 게 엄마의 마음 아닌가. 아이는 잘 크고 있으며 다듬어져 가는 과정인데, 아이의 부족하고 모자란 점에 또다시 혼자 걱정한다. 이 순간 아이를 가장 못 믿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아닐까.


지금 화려한 사교육 커리큘럼을 들여다보고 전전긍긍할 게 아닌 것 같다. 나도 아직 마음 돌봄과 정신 수양이 필요한, 한참이나 부족한 엄마라는 것을 간과하였다. 어디 속성 코스가 있다면 배우고 싶은데.


그나저나 고입 선택을 앞두고 다시 도돌이표 고민이 시작됐다. 여학생들과 좀처럼 평화롭게 지내지 못하는 아들의 성격과 좋은 면학 분위기를 고려해 남고를 가야 한다는 담임과 교과 선생님들의 의견 때문이다. 그러나 인근의 남고는 가깝지도 않고 자사고와 일반고뿐인데, 둘 다 대학 입결 순위에 항상 상위권에 랭크되는 곳들이다. 그 학교 아이들은 학원 대여섯 개가 기본이라던데, 그러면 사교육은 또 어쩌지, 아이가 이 무시무시한 입시전쟁에서 버틸 수 있나, 옆에서 자존감을 지키도록 도와주는 게 부모의 역할 아닌가... 그래도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나 홀로 무한 도돌이)


이틀 연속 휴교해서 기분 좋을 금요일 밤에 아들에게 맛있는 거 먹이면서 온갖 사심과 욕심을 내려놓고 진실되게 이야기해 봐야겠다. 모든 계획과 결정의 당사자는 아들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지.


이런 고민도 다 한낱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는 걸 알면서도, 이러는 내 모습을 보노라니, 내 코가 석자다 싶다. 이래서 글을 써야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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