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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독임 Nov 26. 2024

때아닌 겨울 홍수, 학원 특강 문자

줄기차게 쏟아진다

겨울방학을 한 달 여 앞두고 후두둑 안내 문자들이 쏟아진다.

발신처는 강남구 대치동 유수의 학원들.




이른 학교는 12월 말, 늦은 학교는 1월 초면 겨울방학이 시작한다. 겨울 방학을 앞두고 학부모는 긴 시간을 어찌 보낼지 마음이 급해진다. 어디라도 가지 않으면 집에서 뒹굴거릴 아이의 게으름이 선명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겨울 특강은 '겨울방학'이라는 한정된 간 동안 학습의 초석을 다져야 한다며 학부모를 끊임없이 유혹한다. 전문가들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설명회는 기본, 다양한 커리큘럼으로 학부모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연말이 다가오니 이제는 현 학년이 아닌 예비 중1, 예비 고1 등 저마다 진급한 학년의 이름을 붙인다. 내 아이는 중2지만, 예비 중3이라는 이름이 붙으니 갑자기 고입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서게 됐다. 맞는 말이지만 이로써 엄마의 불안과 조바심은 더욱 높아졌다.


홈쇼핑처럼 들뜨는 학원 쇼핑

나는 일단 설명회의 날짜를 보고 참석 여부를 고민한다. 고교학점제로 달라지는 교육과정에 대한 정보 만이라도 들어볼까 싶다가도 또 고민한다. 학원 설명회는 결국 학원 등록을 부추기는 것임을 아니까 스스로 불안의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는 것 같아서.

하지만 문자 메시지에 첨부된 시간표를 클릭하는 순간 내 마음은 훅 들뜬다. 요일과 시간별로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수업들, 세심한 진도 카테고리. 마치 홈쇼핑 광고처럼 엄마들의 시선을 강력하게 사로잡는다. 지금 사지 않으면 마감될 것 같은 불안. 지금 등록하지 않으면 마감될 것 같은 불안이다. 이것뿐인가. 이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해내기만 한다면 단기간에 한 학년 마스터 혹은 성적 상승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두근거림과 기대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사교육 안 한다면서 나에게 문자가 쏟아지는 이유는 뭘까. 나 역시 유명하다는 대형학원에 한 번씩 레벨테스트와 상담 이력을 거쳤으니 그들의 데이터에 내 번호는 고스란히 남아있다. 덕분에 중간, 기말고사마다 방학마다 쏟아져오는 문자 폭탄의 대상이 됐다. 스팸 문자라고 지칭하지만 이들을 쉽사리 차단하지 못하는 건 건, 나도 언제고 그곳으로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3당2락의 비애

과거에는 '4당 5락', 즉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말이 있었다면 요즘은 '3당2락'이라고 다. 3백만 원 쓰면 붙고 2백만 원 쓰면 떨어진다는 말이다. 사교육에 비용을 얼마나 투자하느냐에 따라 입시가 좌우된다는 그런 말씀. 오죽하면 사교육비 지출이 부의 척도를 가늠한다는 말도 있을까. 사교육에 넉넉한 비용을 댈 생각도, 자신도 없는 나는 마냥 씁쓸하다.


학원비를 고마워할 줄 아는 아이로

별 부담 없이 아이의 실력과 필요에 맞게 다양한 학원을 고르는 이들도 있을 테다. 내가 자기 주도니 혼공이니 외치는 건 학원을 보내지 않기 위한 궁색한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다. 지금도 우리 아이는 알아서 잘한다는 말을 둘러대며 애써 자기 방어를 한다.

하지만 나는 학원비 40만 원을 떠올리면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무수한 선택지가 떠오른다. 외식 4번, 1박 2일 여행 1회, 겨울 코트 1벌, 자동차 보험료 납입, 부모님 용돈 등등.  뭣보다 학원비 내주면서도 고마운 소리 듣지 못하는 부모가 되기 싫다. 부모를 위해 다녀준다며 도리어 거꾸로 생색낸다는 황당한 경우도 들었다.


가성비를 추구하는 나는 어제 3만 원의 교육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하루 1문제씩 수학 심화문제를 푸는 챌린지인데, 문제풀이에 성공하면 리워드 1천 원 적립이니 얼마나 괜찮은가. 웬만한 강제가 없음 풀기 싫은 심화 문제도 의무적으로 풀고, 하루 10분 정도니 부담도 없고, 상금도 챙길 있고 얼마나 좋아!

은근슬쩍 아들에게 들이밀었는데 단칼에 거절당했다.


사춘기의 가장 흔한 말 #내가 알아서 해


아, 내일까지 등록마감인데, 오늘 고기 먹이고 기분 좋을 때 다시 한번 꼬셔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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