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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독임 Nov 23. 2024

중2 에게 혼공이란

시행착오가 필요한 시간

D-26


기말고사가 한 달 채 남지 않았다.

엄마는 중2 아들이 슬슬 기말고사 준비를 시작하길 기대하지만 기대는 실망을, 실망은 잔소리를 낳는 법.

지금도 글을 쓰며 아들의 시험 준비를 너그럽고 차분한 마음으로 지켜볼 것을 다짐한다. 책상 꼬락서니가 저 모양이더라도, 꾸물꾸물 공부 흉내만 내는 듯하지만 일단 공부하겠다는 의지에 가만히 숨을 죽인다.


1은 자유학기제다 보니 시험일정이 학교마다 다른데, 아들의 학교는 1학년 2학기에 첫 시험을 치렀다. 첫째인 데다 나름 똘똘하단 소리를 들었던 아이의 중학교 첫 시험을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두근두근 내심 기대한 엄마는 혼신의 힘을 다해 시험 뒷바라지를 했었다.

책상 정리는 기본이요, 때마다 맛있는 식사와 간식,  스케줄러와 암기용 체크펜도 들이밀고, 제각각 널브러진 학습지도 모아 챙겨주고, 시험 범위를 안내한 가정통신문도 책상에 붙여줬다.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과목별 문제집을 사다 배치하고, 과목별 공부 진도를 체크했다. 사회, 한문 등의 암기 과목 공부는 어떻게 하는지 30년 전 노하우도 자랑했다.


신나게 충고를 쏟아놓던 중, 영혼 없이 대답만 하던 아들의 얼굴을 본 순간 얼굴이 홧홧해지는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내 시험도 아닌데 왜 내가 필기를 돕고 있는가. 공부는 자기가 하는 거라며 고상하게 자기 주도 혼공을 주장했으면서 정작 실전에서는 어떻게라도 도와주고픈 엄마의 퇴행 교육, 도움을 가장한 집착이었다.


첫 시험날엔 아이가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OMR카드에 구멍이 날 만큼 컴싸(컴퓨터 사인펜)로 답을 열심히 후벼 팠더랬다. 급기야 답안지 교체까지. 다음 기말 때는 6페이지에 달하는 수학시험지의 마지막장을 뒤늦게 확인해 식은땀을 닦으며 풀어내기도 했다. 두 개의 답을 골라야 하는데 하나만 마킹해서 틀리는 것 정도는 예삿일이다.


첫 시험을 치른 이후 아들이 뭔가 다른 공부법을 찾았나 기대했지만 그다지 눈에 보이는 없었다. 여전히 프린트는 너울너울, 교과서는 너저분 하지만 수업시간에 집중하고 제 공부를 하려고 하는 그 모습에 칭찬하기로 했다. 저보다 잘하는 친구들을 보며 건강한 자극을 받고 용기를 내는 태도에 박수도 쳐 주었다.

그래도 불안한 엄마는 수학이라도 잠깐 학원을 다녀볼까 물어봤지만, 아들의 무심한 대답에 뜨끔하고 말았다.

 -시험문제 내는 건 학교 선생님인데 굳이 왜? 학교 수업 잘 들으면 괜찮아.



사춘기에 들어선 이후부터 부모의 불필요한 개입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아이가 정말 필요로 할 때 내미는 도움은 서로에게 득이 되는 좋은 일이겠지만, 엄마 만족을 위한 이기적인 도움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어쩌다 수학 오답노트 만드는 걸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면 기특한 마음에 얼씨구나 한달음에 달려가 문제집 pdf 파일을 찾아 예쁘게 편집해 주었는데, 그런 도움은 윈윈 아니겠는가.


이렇게 머리로는 알면서도 내가 아직 아들의 시험에 전전긍긍하는 이유는, 사교육 없이 아직은 혼자 공부하는 아이라서다. 양치기 훈련과 각종 자료의 혜택을 받는 학원의 도움이 없기에 아이 혼자 해내야 한다. 일단 하루 일정 시간을 공부하기로 약속한 아이의 우직한 다짐을 믿어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40만 원 가까이의 학원비도 부담스럽고, 내가 불안해 보내놓고선 높은 점수로 되갚아라 요구하는 악덕 채권자가 될까 두려웠다.


중2, 한창 달려야 하는 때라고 말한다.

저마다 다른 아이에게 한 가지 정답은 없다. 확실한 건 지금은 혼자서 이리저리 공부해 보는 시행착오의 마지노선이라 생각한다. 답을 밀려 쓰는 시행착오조차 허용된다- 생각은 지만, 실제로 닥친다면 심히 괴로울 것 다. 수많은 교육전문가들의 조언처럼 중학교 때는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스스로 고민하고 찾아가는 골든타임이라 생각하며 매번 마음을 다잡는다.


공부 시행착오의 마지노선

배우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골든타임.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필기를 하며 무엇을 들었는지,

어떻게 계획을 세우며 공부할지 고민하는 시간.


공부는 오롯이 아이의 몫이다. 엄마와 아빠는 그저 든든한 응원군이 되어야 한다고 매일 되새긴다.


특목고 입시가 아니라면 중학교 성적은 아무리 뛰어난 들 예쁜 쓰레기라고 한다. 진짜 입시의 시작은 고등부터니까. 고등학교 가면 깜짝 놀랄 점수와 등급을 맞닥뜨린다지만, 혼공을 통해 배운 시행착오와 공부 방법, 남이 떠민 계획이 아닌 진짜 자기 주도의 의지만큼은 어떤 일타강사도 주지 못하는 가르침이리라. 지금부터 좋은 점수를 받아보자고 독려하는 이유도 성취의 경험이 장차 아이의 공부 정서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혹자는 겁을 주기도 한다. 아들이 나중에 왜 학원 안 보냈냐고, 좀 더 선행시켜 주지 그랬냐고 뒤늦게 원망수 있다면서. 하지만 그런 철없는 소리로 부모에게 책임을 전가하아이가 되지 않도록, 우리 부부는 성실하고 믿음직한 부모가 되어 아이의 인성과 정서를 보살피는 데에 집중하기로 했다.


은 이래도 사실 이번 시험만큼은 1등을 해봤으면 하는 검은 속내가 가득하다. 지금 상태에서 학원의 세심한 관리까지 더해지면 더욱 옥석같이 빛나리라는 기대도 있어서 매번 갈만한 학원들의 리스트를 살펴본다. 생각만 해도 흐뭇한 상상을 그릴 때마다 날아오는 남편의 일침.


-마음을 비워. 기대가 높으면 나중에 더 실망해.

-잘하면 좋고, 못해도 괜찮아.


아, 꿈에서 깨고 만다.

정말 시험 때마다 찾아오는 내적 갈등으로 엄마는 공부도 안 하면서 괜스레 괴롭다. 


바른 태도와  책임감과 성실함을 길러주고 자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덕목 중 최고 가치입니다.


 - 아이를 위한 사교육은 없다 中 <김현주/ 청림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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