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계엄과 내란의 여파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걱정과 불안에 시달리며 머리가 아픈 와중에도 나는 계속 글을 써야 했다.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비자발적 글쓰기의 시간, 자기소개서 쓰기.
창조는 없다. 기존의 양식에 맞게 돌려 쓰고 바꿔 쓰고 순서를 바꾼다. 정성을 기한다면 틀부터 뜯어고쳐야 하겠지만 도무지 손이 가지 않는다. 적당히 써도 나를 좀 알아봐 주길, 이 정도면 뽑아주길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 갈급함이 덜한 것은 아닌데 왜 정성을 더 기울이지 못하는 걸까. 절박함이 아직 부족한 걸까. 몇 가지 키워드를 넣고 챗 gpt에게 맡기면 근사하게 자기소개서가 완성된다는데, 어떤 문장을 뽑아낼지 궁금했지만 아직 시도해보진 않았다. 굳이 머리 아프게 쓸 필요도 없다는데 왜 나는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인가. 아날로그가 좋은 건지, 새로운 것에 대해 익숙지 않은 나는 이게 변명인지 핑계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한 곳의 채용이 확정되었지만, 더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 다른 학교들도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솔직히 '다 되면 어떻게 골라갈까'라는 희망 회로가 무색하게 연이어 생각지 못한 불합격에 하루하루 마음이 상했다. 화기애애한 면접 후 곧 합격 소식을 전해줄 것 같던 학교도 답이 오지 않으니 속이 탔다. 십여 년 넘는 베테랑 강사들도 면접 때마다 뒤숭숭하다던데, 이제 겨우 초짜 티를 벗은 나는 오죽할까 싶어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딱히 방법이 없다.
그렇게 간간히 서류를 넣고 면접을 보러 다니는 동안 귀신같이 알아챈 뱃속에서 위염 증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약을 먹어도 두통이 가라앉지 않고 임신 초기처럼 연신 메슥거리고 울렁거린다. 이번에는 특히 국가적 비상 상황과 맞물리어 증상이 두 세 배로 커졌다. 더구나 오늘 아침, 기막힌 헛소리 담화로 뒷목을 잡은 상태에서 속으로는 욕을 하며 썼더니 저절로 분노의 타이핑이 되었다. 무지렁이에게도 화가 나고, 답답한 마음까지 발사되어 순식간에 남은 지원서 하나를 마저 전송했다.
이번에도 탈락하면 자기소개서는 챗gpt에게 맡겨보리라 마음먹는다. 생계형 글쓰기 말고 나를 위한 글쓰기도 쉬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