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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성의 불량이 Nov 13. 2023

처벌과 관계개선 어떤 걸 원하는가?

학교 폭력과 갈등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

 아이가 학교에 내려간 뒤 2주쯤 뒤였던 것 같다.  메시지가 날아왔다. 빨래 건조대 파손으로 예비비에서 인출하신다는 선생님의 메시지였다. ‘장난치다 망가졌나?’라고 생각했다. 원래 장난이 심하진 않았고 싸움을 안 하는 아들이다.  어렸을 때 거친 아이와 싸움이 일어날 때면 투닥거리다가 "차라리 죽여라 죽여"라고 크게 소리를 질러대며 상대 아이가 도망 가게 만들었다.

가정에서나 부부도, 형도 그런 일이 없는데 어디서 그런 걸 배웠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갈등을 종식시키거나 불편한 부분을 밖으로 표출해 해소하는 아이였다. 그런 부분이 아들과 많이 달라서 크진 않지만 고집을 피우거나 자잘한 사고를 치지만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려는 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예비비 인출' 또 비슷한 메시지가 왔다. 궁금해서 연락해 봤더니 친구와 다투다가 서로 밀치고, 넘어지며 파손 됐다고 하신다. “안 다쳤으니 다행이지”하고 넘어가려 했다.

 아이가 다니는 금산간디학교는 기숙형 대안학교다. 요즘처럼 한 가정에 한 명의 자녀만 있는 가정이 많은 시대에 자기 혼자 방을 쓰던 아이들이 기숙사에 와서 많게는 서넛이 한방을 쓴다는 것은 많이 힘든 일이다.

 그런데 아이가 집에 오는 주말에 '책임활동'을 해야만 해서 학교에서 늦게 출발한다고 한다. 학교 학생회에서 학교에서 비속어나 규칙을 어기는 일이 일어나면  그에 합당한 책임활동을 학생들이 정해서 그걸 하도록 하고 있다.

 인간은 본성에 의해 위계와 서열을 세우려 한다. 특히 수컷은 더욱 본능적으로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 질서는 처음 한 번만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수시로 확인하고 싶고 자신의 서열을 조금이라도 올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한참 몸이 성숙해지며 호르몬 분비가 활발한 때의 수컷은 신체에 비해 성숙하지 못한 정신의 크기로 인해 더욱 거칠고 충동적이어서 이런 일은 입학과 동시에 일어나며 남, 여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며 육탄전이 벌어져 싸우는 남학생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할 정도다. 여학생의 경우 정치력, 사회성이 총동원된 전쟁이라고 한다. 며칠에서 길게는 일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런 일은 계속 벌어진다. 

 한 반에 60명씩 있었던 옛날에야 학교에서 싸우면 일단 이유를 불문하고 똑 같이 반성문을 쓰게 하고 거의 강제로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악수하고 서로 미안하다고 말해야 교무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물론 나오면서 문이 닫히자마자 선생님과 서로에게 쌍욕이 하며 다음 전투를 기약하거나 싸움으로 정해진 서열을 확인하고 끝이 난다.

 "싸웠으면 화해하고 넘어가면 되지"라는 생각은 "문제가 발생했고 그 문제를 해결했어"라는 단순한 논리로 접근했다. 너무 단순하게 선생님의 입장에서만 해결된 것이지 거기에 아이들은 없었다.

요즘은 어떠한가? 선생님이 누가 잘못했는지 파악하고 선생님 선에서 간단히 끝나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한 경우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릴 것이다. 위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군가는 피해자이고 누군가는 가해자가 된다. 이 순간 학생 간의 갈등이 아닌 학부모간의 갈등이 혹은 선생님과 학부모의 갈등이 되어버린다.

 큰 아들이 중학생 시절이었다. 학교에서 학폭위가 열렸고 가해자 중 한 명으로 우리 아이가 지목되었다. 키가 크고 덩치가 큰 아이라 항상 뒷자리에 주로 앉는다. 같은 반에 수업시간 화장실을 자주 가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 학생이 화장실을 갔다 왔는데 그날 문소리가 컸는지 몇몇 남학생이 쳐다봤다고 한다. 그에 모멸감을 느낀 학생이 선생님께 이야기했고 그래서 학폭위가 열렸고 반성문과 사과하라는 결과가 나왔다. 아이는 못하겠다고 버티다가 학생부에 남는 것이 걱정스러운 선생님과 우리의 설득으로 사과의 뜻으로 몇 줄의 반성문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걸 아이를 납득시키기 어려웠으며, 그 후 당사자인 아이들은 학기가 끝나도록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누구에게 잘못이 있고 누가 피해자냐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왜 아이들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했고, 해결방법에서 아이들의 의견이 반영되었는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갈등이 해소되었는가? 30년이 훨씬 지났지만 학생이 60명 일 때의 예전이나 지금이나 "문제가 발생했고 그 문제를 해결했어"라는 인식은 변화가 없다.

 갈등이 발생했을 때  대부분의 아이들은 처벌을 해결책으로 뽑지 않는다. 어른의 시선이 바라보니 빨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경우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문제해결의 결과가 관계개선을 바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당사자들에 대한 이해와 근본적인 원인 파악이 전재가 되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나라 교육은 그럴 시간을 주지 않는다.

아이들의 갈등뿐 아니라 아이들과 선생님의 갈등도 부모 간의 문제 혹은 선생님과 부모의 문제가 되면서 아이들은 사라진다. 이제부터는 누구의 목소리가 크고 누구의 사회적인 역량이 크냐를 경쟁하듯 서로에게 공격적으로 변하고, 법적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가장 중요한 아이들은 상처만 더 생기고 갈등이 심화되며 힘의 논리를 배우게 된다. 교육도 없고 평화도 없다.


 간디학교에서는 입학하자마자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들까지 회복적 서클(대모임)에 대해 배우고 이게 대한 서약서를 쓰고 있다. 그리고 각 학년별로 비폭력 평화교육(HIPP-Help Increase Peace Program)을 외부 활동으로 배우기도 한다.  

 대표적인 갈등 해소 방법인 회복적 대화모임은  서로가 진짜 전하고자 했던 마음을 전하여 상호 이해의 시간을 갖음으로써 대한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해결 방법과 폭력과 갈등의 뿌리까지 보아 긍정적인 변화와 성장을 촉진하는 기회를 갖는다. 구체적으로 갈등 당사자 중에 한 명이 대화모임을 신청하게 되면 갈등에 영향을 주고받는 당사자들이 대화모임에 참가하여 상호 이해의 기회를 갖는데 여기서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말할 기회를 갖게 되고, 또한 상대방의 이야기를 반영해 준다. 이렇게 반영되기로 한  합의는 약속한 시일까지 이행하며 정해진 시일에 다시 만나 약속실행 결과에 대해 서로 만족도를 확인한다. 이 과정은 두 사람에 국한된 활동이 아닌 같은 학급의 학생들도 참여하여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고 ‘집단지성의 힘과 자신의 행동 결과를 이해’하게 된다. 모든 활동은 회복과 관계개선에 중심을 두고 공동체가 함께 노력한다. 여기서 선생님은 진행자로서 자신의 발언을 최소화하여, 갈등 당사자들이 갈등에 직면하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촉진자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런 후에 필요시 학부모의 역할도 요구될 수 있다.  이런 아주 기본적인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우리 아이들만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배워야 하고 실천해 나가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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