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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레나 Dec 22. 2023

전교 임원선거 도전해 볼까요?

작은 사회 역시 만만치 않더라


“엄마, 나 전교부회장 선거 나갈래!”

어릴 적부터 주목받는 걸 좋아했던 딸이 전교임원선거 공고가 뜨자 도전장을 내민다.


후보등록  & 추천인 명부(20명 이상 30명 이하) & 공약서 제출 - 기호추첨 - 선거 벽보 제출(4절지) - 선거운동(선거운동 도우미 10명까지 신고서 작성하여 제출) - 소견발표 - 투표 및 결과발표


2주가 조금 넘는 기간 동안, 한 단계 한 단계 넘어가며 아이들은 작은 사회 속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경험해 본다. 각 반의 반장들만 모인 전교회의에서 전교회장을 선출했던 우리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추천인 20명 이상만 채우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진다. 6학년 남, 여 전교회장, 5학년 남, 여 전교부회장 총 4명을 선출하는데 5학년 남자후보는 무려 8명, 여자후보는 9명이나 나왔다. 첫 전교임원 선거 출전 기회를 얻은 예비 5학년, 현 4학년 학생들은 의욕이 충만하다.


번호 추첨 날, 딸은 기호 8번을 뽑아왔다. e-알리미로 역대 당선 번호를 보니 거의 1번 아니면 2번이었다. 만만치 않겠구나. 그래도 8월에 태어난 우리 아이에게 8번은 행운의 숫자일 거라며 긍정의 힘을 불어넣어 본다. 인터넷에서 마음에 드는 벽보 검색한 뒤 디자인 정하고, 알파문고에서 마멀레이드지 사다가 정성스레 만들어본다. (학교마다 다르긴 하지만 자체제작 벽보만 가능한 곳도 있는데 우리 아이 학교는 그런 규정이 없어서 업체 제작 벽보를 낸 아이들이 2/3가 넘었다. 선거운동용 피켓까지 합쳐 15만 원이나 들었다는 아이도 있으니, 만만치 않은 학생선거다.) 우리는 대신 사진에 힘줬다. 혹시나 떨어진다 해도 멋진 사진은 남으니. 연설문은 아이의 초고에 엄마의 퇴고, 퇴고, 퇴고. 여러 번 다듬고 완성한 연설문을 들고 강조해야 할 부분, 억양, 목소리 크기 등 연습, 연습, 연습.



선거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화, 수, 목 3일간 등교시간 20분 동안 선거운동하고 금요일 결전의 날이다! 그런데 인생은 만만치가 않더구나. 그 주 월요일, 아이가 집에 와서 저녁 먹으면서 말했다. “점심시간에 나가서 줄넘기하고 있는데, oo이가 남자 5번 뽑지 마! 이러고 다니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렇게 말하고 다니는 거 불법이야! 했더니 째려보면서 갔어. 복도에서 만났는데 계속 째려보더라.” 이 말을 듣고 기분이 쌔~했다. 선생님 앞에서 눈하나 깜짝 안 하고 거짓말하고, 짓궂은 장난이 심하다고 여러 번 이야기 전해 들은 다른 반 여자아이였기 때문이다. “연아야, 그냥 가만히 있지 왜 그랬어. 너한테 기분 나빠진 걔는 8번 조연아 뽑지 말라고 말하고 다닐 애야.”

다음 날, 선거운동을 위해 일찍 등교한 아이는 선거도우미 10명의 아이들과 함께 지정된 장소로 내려갔는데, 학생회 담당 선생님께서 달려오시더란다. “연아야, 큰 일 났어! 네 벽보가 떨어져 훼손됐어!” 방과 후 울먹이며 집에 온 아이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같이 학교에 달려갔다. 훼손된 채 다시 붙어있는 벽보를 보니 가슴이 찢어졌다. 프린트한 공약 글씨는 다 번져 알아볼 수 없었고, 아이 사진에는 발자국이 떡~하니 밟혀있었다. 아무리 전날 밤 비가 왔다고 해도 벽보는 비가 들이치지 않는 곳에 붙어있었고, 20개 넘는 벽보 모두 멀쩡한데 우리 아이 것만 떨어져 밟혀 있었다는 것은 자연의 탓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소행이리라. 학교 측에 cctv 확인 요청하니 그곳에는 cctv가 없고 멀리 있는 거로는 확인이 어렵다는 대답만 들었다. 의심 가는 누군가가 있기는 하지만,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으니 어찌할 방법도 없었다. 거쳐가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기에서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고 한 뒤, 벽보 다시 만들어 다음 날 제출했다.


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일도 겪었지만, 따뜻한 응원도 많이 들었단다. 선거도우미 많아야 5-6명 모으는 대다수의 후보들과 달리, 우리 아이는 친구들이 서로 도와주겠다고 해서 10명으로 추리기가 힘들었다고. “연아야, 내일 연설할 때 떨지 마! 우리가 대신 떨어줄게!” “혹시 당선 안되면 너는 잘했는데 우리 응원이 부족했던 거니까 너무 실망하지 마.” 이런 이야기를 친구들이 해줬다며 아이는 감동했다. 20분 동안 추운데 서서 선거운동 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는데 친구들한테 너무너무 고마웠다고.


결전의 날! 아이는 연설에 자신이 있었다. 나머지 후보들은 무슨 말하는지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목소리가 안 들리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자기는 준비한 대로, 아니 그것보다 더 자신 있게 하고 나왔다고. 끝나고 나오니 다른 후보 중 한 명이 엄지 척하며 “네가 될 거 같아!”라고 했다고 한다. 방송실을 나와 교실 가까이 오니 같은 반 여자 친구들이 다 나와서 한 명씩 꼬~옥 안아주면서 잘했다고! 당선될 거라고 했다나.


거의 2주 간 아무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선거 당일 날에는 같이 조마조마 손 모아 기도했다. 딸보다 엄마가 더 긴장한 것 같다. 나중에 우리 아이 수능 볼 때는 진짜 학교 앞에 같이 가서 엿 붙이고 앉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뉴스에 나오는 엄마들의 모습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개표는 방과 후에 6학년 임원단이 하고 e-알리미로 통보되었다.

결과는? 두둥~~~~ 여자 부회장 기호 8번 조O아!


개표 후 아이 체육 선생님이신 학생회 담당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아이가 확신해 차서 얘기했기에 큰 표 차로 당선되었을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박빙이었단다. 그래도 기호 8번이 된 거 정말 대단한 거고, 연아가 스피치를 잘해서 당선된 거라고 하셨다.

“어머니, 벽보 때문에 마음 고생하셨는데 결과가 잘 나와서 다행이에요. 연아 제가 너무 예뻐하는 아이라 벽보 그렇게 됐을 때 저도 마음이 아팠거든요. 제가 결혼은 아직 안 했지만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 낳으면 연아 같은 딸 낳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친구들 사이에서 신뢰도 많이 얻고, 인기도 많고, 뭐든지 열심히 하는 보석 같은 아이라 어머니한테 어떻게 키우셨는지 나중에 비법 좀 여쭤보고 싶었어요.”


학교에서 수업하다 보면 초롱초롱 예쁘고 바르게 행동해 내 딸도 저런 아이가 되면 좋겠다 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내 딸이 선생님한테 이런 칭찬을 듣다니!


엄마 육아서 하나 내도 되는 거니?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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