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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May 23. 2024

나의 언어를 찾는다는 것

나만의 감정 사전 만들기

딸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할 때, 그녀의 입술에서는 향기로운 꽃이 피는 것 같았다. 그 조그만 입술에서, 세상에 없는 아름다운 꽃들이 마구 피어났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말로 우리를 껄껄 넘어가게 했고, 때로는 나이를 초월하는 표현으로 우리를 놀라게 했다. 맛없는 음식을 “맛이 안 들어간 음식”이라고 표현했고, 내 피부에 코를 박고서는 “엄마 살에서는 매일 꽃바람이 분다.”고 했다. “엄마를 지나온 바람이 닿으면, 꼭 엄마 품에 안긴 것 같다.”고 했고, 특별한 날, 힘을 주어 잔뜩 꾸미기라도 하는 날에는 “공작새가 날개를 활짝 편 것 같다.”며 엄마의 외모를 치켜세웠다. 그녀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언어로 죽어있던 감정을 펄떡이게 했다.      




감정이 어떤 말을 통해 표현되는지에 따라, 일상적인 순간들이 의미 있는 사건이 되기도 한다. 감정과 언어는 서로 깊이 상호작용한다.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이라는 그림책은 우리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에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서로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해준다. 책은 한마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17개국의 71개의 단어로 소개하고 있다. 언어를 통해 각 나라를 여행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책은 감정과 언어가 우리 삶과 얼마나 깊이 연관되어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동시에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다른 언어를 쓰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삶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는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전하고 있다.      


작가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단순히 기쁨, 슬픔, 분노, 두려움 같은 기본적인 몇 가지 감정만 있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면 그것이 더 구체적이고 명확해진다. 때로는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우리의 감정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핀란드 어의 ‘뮈오타하페아(myotahapea)’처럼 ‘다른 사람의 우스꽝스럽고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내가 느끼는 수치심’을 의미하는 용어를 알게 되면, 그 모호한 감정의 본질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생각과 감정을 적절한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작가는 다양한 문화와 언어 속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감정 표현을 통해 우리의 감정이 얼마나 다채롭고 깊은지 이야기하고 있다.


때로 우리는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힘겨운 감정의 늪에 빠지곤 한다. 이는 하나의 상황에서 여러 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다양한 감정의 이름을 모르기 때문이다. 감정의 다양성을 인지하고 그것들을 구체적으로 이해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 감정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최근 몇 가지 중요한 업무를 마무리한 후, 성공에 대한 기쁨도 느꼈지만 동시에 피로와 불안도 함께 몰려왔다. 단순히 ‘기쁘다’거나 ‘힘들다’라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내가 겪고 있는 복잡한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감정에 좀 더 구체적인 이름을 붙이자 상황이 더 명확해졌다. 처음에 기쁨이라 불렀던 것은 ‘성취감’이었다. 피로는 ‘번아웃’이었고, 불안은 더 정확하게는 ‘다음 업무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감정에 구체적인 이름을 붙이면 그 감정이더 진해지고 뚜렷해진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이해되고 표현된 감정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의 감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여 번아웃을 해소했고, 다음 업무를 미리 계획함으로써 불안감을 줄였다. 감정에 구체적 이름을 붙이는 것은 우리가 감정을 이해하고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로써 우리의 삶은 보다 균형 잡히고 안정될 수 있다.      


말로써 표현되지 않는 감정은 이해되기 어렵다. 언어는 우리의 감정을 전달하고 소통하는 핵심적인 수단이자 연결고리이다. 포르투갈어의 ‘사우다드(saudade)’는 ‘깊이 사랑했지만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 버렸거나 더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한 찬란한 슬픔’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움 이상의 감정을 담고 있는 이 단어는, 잃어버린 시간과 장소 또는 사람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단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을 훨씬 뛰어넘는 도구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우리의 깊은 감정적 뉘앙스를 포착하고 전달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단어들은 서로의 깊은 곳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고, 보다 깊은 감정적 차원에서 연결되게 한다.      


71개 단어 중에서 단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단어는 프랑스의 ‘주아 드 비브르 (joie de vivre)’이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기뻐할 이유’를 의미한다. 예술, 음식, 문학 등 다양한 측면에서 삶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프랑스 문화가 드러나는 단어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햇빛이 비치는 창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 산책을 즐기며 주변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 등, 모든 것이 ‘기뻐할 이유’이다. 서두르지 않고 순간을 음미하며 주변 사람들과 더 깊은 연결을 느끼게 하는 삶의 태도이다.      


언어란 그 나라의 문화, 역사, 환경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만들어진다. 그림책에 소개된 단어들을 통해 각 나라 사람들의 삶의 분위기와 중요시하는 가치들을 짐작할 수 있다. ‘찬란한 슬픔’을 의미하는 포르투갈의 ‘사우다드 (saudade)’는 과거 포르투갈의 역사적 아픔과 이래에 대한 희망을 담은 복합적인 표현이다. 언어는 우리의 감정과 경험을 반영하는 거울이자, 삶 자체를 품고 있는 서사시이다. 


어쩌면 어떤 단어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 언어로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경험과 감정이 있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에스키모인들은 ‘눈’을 표현하는 다양한 단어가 있다고 한다. 눈 위에 쌓인 눈은 '아푸크', 맑은 날의 깨끗한 눈은 '눈강나르프', 눈의 가장자리에 얼음이 만들어진 것은 '눈시르크'라고 한다. 게다가, 가벼운 눈보라인지, 큰 눈덩이인지, 살짝 녹은 눈인지 등에 따라서도 다른 표현을 사용한다. 그들의 삶이 눈과 밀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눈 하나에도 다양한 면을 관찰하는 그들의 태도들 볼 수 있다.       


과연 내 안에는 얼마나 많은 언어가 있을까? 40년 동안의 다양한 경험과 감정이 쌓여있을 테니, 분명 다양한 언어가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말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기쁨이나 슬픔, 두려움과 같은 일부 감정은 표현할 수 있지만, 더 깊고 복잡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말이 내 안에 없다. 외로움과 고독의 섬세한 차이나 일몰과 일출을 바라볼 때 느끼는 미묘한 감정들이 그렇다. 후회와 아쉬움, 불안과 두려움, 기대와 희망 사이의 간극을 표현지 못하는 답답한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길을 잃는다. 언어의 부재가 이토록 괴로운 것인 줄 몰랐다. 단순히 말을 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니라, 나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나의 언어’를 찾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안타깝게도, 그림책에는 한국어가 소개되어 있지 않다. ‘정(情)’이라는 단어가 있다. 한국인의 감정과 정서를 잘 담고 있는 단어라 생각한다. “정이 들다, 정이 없다, 미운 정, 고운 정” 등 우리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며, 사전적 의미는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이다. 사랑의 한 종류로도 볼 수 있으며, 애정, 연민, 동정, 배려 등의 여러 감정을 포함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오랜 시간 함께한 부부들이 자주 사용하는 “정으로 산다.”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이 표현에는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쌓아 온 진정성과 배려가 묻어있다.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이라는 노래 가사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건, 사랑보다 정’이라고 했다. 사랑보다 더 깊고 진한 게 정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깊어지고, 인생의 희노애락이 녹아 있는 단어이다.      


그림책을 덮을 때 즈음, 우리는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결국에는 공통된 인간성과 보편적 경험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빗어 내리는 일’을 뜻하는 포르투갈어 ‘카푸네(cafune)’나, ‘타닥거리는 모닥불 앞에 앉아 온기를 즐길 때 느끼는 포근함’을 뜻하는 노르웨이의 ‘페이스모스(peiskos)’는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말없이 전하는 사랑의 감정을 전달한다. 이러한 경험은 모든 문화에서 공유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지고 있지만, 공통된 감정적 언어로 연결되어 있다. 공통된 감정 언어를 통해 지구 반대편의 아이의 눈물에 함께 울 수 있고, 그들의 기쁨에 함께 웃을 수 있다. 이 아름다운 특권을 잃어버리지 말아야겠다. 


‘콤무오베레(commuovere)’. 이탈리아어로 ‘누군가의 이야기가 내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린다.’라는 뜻이다. ‘나’의 말이 ‘너’의 말이 되는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엉성한 글을 끄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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